프로야구, '인프라'가 우선되어야 한다
OSEN 기자
발행 2008.01.20 13: 48

[OSEN=이상학 객원기자] 지난 2002년 11월. 박용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3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구장을 모든 구단의 연고지에 건립해야 한다. 구단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구장 건설에 실천적인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외면할 경우에는 지역 구단의 연고지 변경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년이라는 시간이 넘게 흘렀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현대 유니콘스 사태로 말미암아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라운드 개보수로 선수들에 대한 편의는 그나마 나아졌다지만, 고객이 되는 관중들에 대한 편의는 어느 하나 나아진 게 없다. 시대가 변했지만 야구장 인프라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보다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지옥의 야구장 프로야구에서 야구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일상화됐다. 2006년에는 대구구장의 붕괴 위험 소식이 알려져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삼성 선동렬 감독은 “선수들이 생명을 담보로 훈련하는 처지다. 이런 곳에서 운동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에는 악명 높은 광주구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선수들이 차례로 부상으로 쓰러진 것도 경기장 상태와 무관하지 않았다. KIA 선수들은 “원정경기가 더 편하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선수들만큼 팬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더하다. 지은 지 40~50년이 된 구장들은 좌석과 통로가 좁으며 주차시설이나 화장실 등 기본적인 편의시설마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세월이 흐르고 성인 남녀들의 평균 체격도 커졌지만, 야구장의 좌석과 통로는 달라진 것이 없다. 평균 3시간 정도 되는 경기를 보고 나면 허리와 엉덩이가 아플 정도다. 굳이 야구가 아니어도 즐길 여가 컨텐츠가 많은 현대에 팬들이 야구장에 오지 않는다고 한탄할 일이 아닌 것이다. 깨끗한 화장실, 안락한 관람석, 청결한 음식물, 드넓은 통로는 모든 시설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대다수 야구장은 그렇지가 못하다. 지난해 프로야구는 11년 만에 4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인기 부흥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400만 관중을 꾸준히 들어오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본적으로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프로야구에서 3만 관중 수용이 가능한 구장은 잠실·문학·사직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2만 명 이하의 관중 밖에 수용할 수 없다. 하지만 수용인원을 떠나 더 큰 문제는 열악함 그 자체인 야구장의 ‘상태’다. 낡은 구장 외벽은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고, 촘촘하게 박힌 관중석 의자는 그냥 보기에도 불편하다. 여기에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을 피할 재간이 없다. 야구장에 온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마음 먹어야 할 일이 된 것이다. ▲ 새로운 접근 공간이 주는 충족감은 야구장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스타벅스를 찾는 소비자들이 일반 커피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도 공간이 주는 충족감이 크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단 입장에서는 야구장을 찾는 관중들이 곧 그들의 소비자가 된다. 그러나 과연 야구장이 팬들에게 공간이 주는 충족감을 주고 있는 것일까. 최신식 문학구장을 제외하면 이에 대해 자신있게 ‘Yes’라 말할 수 있는 경기장이 없는 것이 프로야구의 냉엄한 현실이다. 3만 관중 수용이 가능한 잠실·사직구장도 궁극적으로 고급 놀이공간이자 고급 문화공간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야구장을 ‘볼파크(Ballpark)’라고 부른다. 야구장이 곧 공원이며 공원은 휴식처를 의미한다. 미국인들에게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람하는 야구장이 하나의 휴식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굳이 큰 마음먹고 경기장을 찾을 일이 없다. 그들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 구단들은 야구장을 하나의 수익창출의 기반으로 생각하고, 야구장을 활용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가 못하다. 공간을 활용할 마케팅 기법을 차치하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에서 경기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곧 수익구조의 개선과도 궤를 같이 한다. 지난해 프로야구의 화제 중 하나가 바로 SK의 ‘스포테인먼트’였다. SK는 무려 98.2%라는 어마어마한 관중증가율을 기록했다. 페넌트레이스 내내 1위로 고공비행한 팀 성적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을지 모르나 팀 성적에 찾아온 관중들을 주고객으로 만들어낸 것은 공간을 활용한 마케팅의 힘이었다. 어린이들을 위해 놀이공원화한 와이번스랜드와 직장회식 및 가족공간으로 활용된 스카이박스는 관중증가의 큰 힘이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식 가로전광판으로 볼거리와 광고수입까지 챙겼다. 모두 문학구장이라는 현대식 구장이 하드웨어로 뒷받침한 덕분이었다. 야구장이라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마케팅과 충족감은 프로야구단 수익구조의 대안이 될 수 있다. ▲ 쉽지 않은 인프라 이제 시대가 변했다. 단순히 야구경기 자체만으로 관중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야구장이라는 공간을 활용한다면 야구장을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지방구단들 입장에서는 발품을 팔아도 관중을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프로야구를 지배한 무사안일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방식을 벌이려 해도 경기장이라는 하드웨어가 전혀 뒷받침되지가 않고 있다. 없는 관중을 탓하지 말고, 야구경기를 보다 프로답게 관람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 위기의 프로야구를 구해낼 대책이지만 지자체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다행히 지난해 5월 경기도 안산시가 KBO와 돔구장 건설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최근에는 대구광역시가 여러 차례 공수표를 남발한 최신식 돔구장 건설에 나설 채비를 다시 차리고 있다. 야구장 신축은 프로야구단이 성적 외적으로 관중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다. 1986년 부산 사직구장을 개장한 롯데는 전년도보다 38.4%의 관중증가율을 기록했다. 전년도 롯데의 성적은 6개팀 중 2위였으나 1986년에는 7개팀 중 5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관중을 동원했다. 또한 SK도 인천 문학구장을 개장한 2002년 관중증가율이 무려 125.4%였다. 팀 성적은 고작 7위에서 6위, 한 단계 상승이었다. 모든 프로스포츠 산업의 기반은 많은 관중을 동원해야 한다는 점이다. 프로야구단 수익창출의 하나인 중계권료도 경기장에 관중이 가득해야 값이 올라간다. 그 관중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경기장 인프라가 최우선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관중들이 프로에 걸맞는 공간과 서비스를 누린다면, 프로야구의 관중모으기와 수익구조 개선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그러나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KBO와 구단은 지자체의 도움이 없으면 야구장 신축이 어렵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지자체에 왜 프로야구와 야구장 신축에 투자를 해야하는지 설득하겠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태생부터 정치적으로 태어난 프로야구는 이 탓인지 모든 일들을 정치적으로 처리하려 했다. 구단들은 구단경영을 모기업 홍보효과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홍보효과를 위해 팀 성적에만 목을 매며 스스로 적자구조를 만들어버렸다. 오히려 수익의 기본이 되는 팬서비스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시설 확충에는 너무 무심했다. 수익창출의 밑바탕이 되는 흥행의 가장 큰 요소가 팀 성적만큼 인프라라는 사실을 KBO와 구단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