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영, '한국판 나카무라' 될 수 있을까
OSEN 기자
발행 2008.01.25 14: 07

[OSEN=이상학 객원기자]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최고 화제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육성군 출신' 나카무라 노리히로(35)의 화려한 재기였다. 지난해 시즌 전만 하더라도 나카무라는 오갈 데 없는 초라한 신세였다. 육중한 체구와 파이터를 연상케 하는 외모 탓인지는 몰라도 한때 K-1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카무라는 그대로 맥없이 무너지지 않았다. 야구로 패한 그는 야구로 승부를 보고 야구로 재기해 일본시리즈 MVP에 올랐다. 7년 만에 부산항에 돌아온 '롯데의 마포(馬砲)' 마해영(38)도 나카무라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의지다. 나카무라의 재기는 대성공 후 끝없는 추락이라는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마해영과 꼭 닮아있다. ▲ 나카무라의 재기 나카무라는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3루수 겸 거포였다. 긴테쓰 바펄로스(현 오릭스) 시절 퍼시픽리그 홈런왕 1회, 타점왕 2회를 차지할 정도로 위력을 떨쳤다. 지난 1992년 드래프트 4순위로 긴테쓰에 입단한 나카무라는 2005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잠깐 활약한 시기를 제외하면 2006년까지 줄곧 한 팀에서만 뛰었다. 통산 319홈런 961타점을 쓸어담은 거포이자 해결사였다. '모 아니면 도'에 가까운 나카무라의 스윙에 공이 걸리면 제 아무리 큰 구장이라도 담장을 넘어가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나카무라의 호쾌한 스윙에서 나오는 홈런은 눈이라도 한 번 깜빡이면 놓쳐버릴 것 같은 기막힌 광경과 같았다. 하지만 나카무라에게는 이미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그를 서서히 덮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04년 당시 퍼시픽리그에서 가장 많은 5억 엔이라는 연봉을 수령한 나카무라는 그러나 이듬해 긴테쓰와 오릭스의 합병이 본격화되고 또 현실화되자 강하게 반발하며 "풀스윙하겠다"는 말과 함께 메이저리그로 뛰어들었다. 즉흥적으로 내린 메이저리그 진출은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결과만을 남기고 말았다. 나카무라가 메이저리그 17경기에서 남긴 성적은 39타수 5안타, 타율 1할2푼8리밖에 되지 않았다. 홈런은 없었고 타점은 3개에 불과했다. 2006년 긴테쓰와 합병된 오릭스로 복귀했으나 타율 2할3푼2리 12홈런 45타점으로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2006시즌 후 오릭스는 나카무라에게 연봉을 2억 엔에서 대폭 삭감된 1억2000만 엔을 제안했다. 자존심이 세기로 소문난 나카무라는 이를 거부하고 오릭스를 뒤로 했다. 그러자 오릭스도 나카무라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사실상 방출이었다. 이후 어느 팀도 나카무라에게 손을 뻗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부터 나카무라는 매년 기록이 하락할 정도로 정점을 지난 선수였다. 그것이 나카무라의 현실이었고, 나카무라의 상황 판단력은 겉보기와 다르게 빨랐다.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높은 콧대를 스스로 꺾고 연봉 400만 엔을 받는 조건으로 주니치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무려 96.7%가 삭감된 계약안으로, 그야말로 나카무라의 굴욕이었다. "야구만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던 나카무라는 결국 주니치에서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시즌 개막을 앞둔 3월 육성선수에서 보유선수로 승격, 연봉이 600만 엔으로 올라갔다. 나카무라는 시즌 개막 후에는 기어이 주니치 주전 3루수 겸 중심타자 자리를 꿰찼다. 허리 통증에도 무려 130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9푼3리 20홈런 79타점으로 활약했다. 게다가 일본시리즈에서도 5경기서 2루타 4개 포함해 18타수 8안타 4타점으로 맹활약하며 53년 만에 주니치를 일본 정상으로 이끈 뒤 당당히 MVP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시리즈 직후 나카무라는 "제로 상태에서 MVP가 됐다"며 사나이의 뜨겁고 진한 눈물을 보였다. 시즌 종료 후 나카무라는 무려 733.3%가 인상된 연봉 5000만 엔에 재계약했다. 주니치 구단 사상 최고 인상률이자 일본 프로야구 역대 3번째로 높은 연봉 인상률이었다. 등번호 205번으로 입단해 시즌 들어 99번을 달고 인간승리를 일궈낸 나카무라에게 올 시즌에는 조금 더 가벼운 번호가 주어질 것이다. 나카무라도 "돈은 상관없다. 2년째 승부를 걸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 마해영, 재기의 꿈 마해영은 나카무라와 닮은 점이 많다. 마해영도 일본 프로야구를 호령한 거포였던 나카무라처럼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슬러거였다. 이승엽, 타이론 우즈와 함께 3년 연속으로 30홈런 이상 기록한 3명의 선수 중 하나가 바로 마해영이다. 통산 258홈런으로 이 부문 역대 6위에 올라있는 마해영은 통산 타점도 955개로 당당히 역대 4위에 랭크돼 있다. FA 계약기간이었던 지난 4년간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성적을 올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 이전까지 마해영이 얼마나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 실적을 올린 타자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5000만 원으로 떨어진 마해영의 연봉은 통산 성적이 지금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카무라와 마찬가지로 마해영도 지난 4년간 꾸준하게 하락세를 보였다. 출장 경기수도 지난 4년 연속해 124-94-80-11경기로 줄어들었다. 나카무라가 구단과 마찰을 빚은 것처럼 마해영도 구단 및 코칭스태프와 갈등의 골이 깊어져 온전하게 야구에 전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카무라는 주니치에서 실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마해영과 달리 나카무라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주니치에서 당당히 성공했다. 지난 4년간 타향살이에 어려움을 겪은 마해영에게 정신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고향팀이라는 점은 나카무라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굉장한 호재다. 야구선수, 특히 타자에게 정신적인 면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마해영의 의지는 충분하다. 지난해 4억 원이라는 고액 연봉을 받은 마해영은 5000만 원이라는 비교적 헐값에 군말 없이 도장을 찍었다. 마해영도 나카무라처럼 계약을 앞두고 2주간 사실상 연습생 신분으로 테스트 기간을 거쳤다. 마해영을 '롯데의 전설'이라 추켜세워주었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그의 정신력과 도전정신이 마음에 든다"고 평했다. 처음부터 마해영은 "연봉과 보직에 연연하지 않고 야구만 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물론 이제부터 마해영에게는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살얼음 경쟁이 시작된다. 나카무라는 공수양면에서 맹활약하며 기존 3루수 모리노 마사히코를 외야수로 밀어냈다. 지난해 주니치는 나카무라에게 처음부터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주니치 역시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나카무라를 이미 한 물 간 선수로 취급했다. 하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은 '실력주의자'답게 편견을 버리고 나카무라를 기용해 대성공했다. 로이스터 감독도 마해영에 대한 편견이 없다. 그저 선수로만 바라볼 뿐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베테랑 선수로서 그 경험을 높이 사고 싶다. 그런 경험을 그라운드에 쏟아붓는다면 팀 전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젊은 선수들이 많지만 확실한 베테랑이 없는 팀 사정상 마해영은 충분한 필요한 카드다. 마해영의 특성상 코칭스태프가 믿음을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마해영은 데뷔 첫 9년간 겨우 8경기밖에 결장하지 않는 근면 성실의 대명사였으며, 그만큼 두터운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공했다. 나카무라는 주니치에서 육성선수로 입단한 이후 보유선수로 승격되자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해영도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고향팬들의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으며 롯데의 전설이 롯데의 연습생으로 재입단한 것도 드라마틱하다. 지난 4년간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하며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마해영이지만, 부산 고향팬들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나카무라처럼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면 된다. 물론 38살의 베테랑 선수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습에는 한계가 있지만, 팬들은 그 과정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역시 돈으로는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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