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최강군단 SK는 일찌감치 독주체제를 굳히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흥행군단 롯데는 관중동원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화도 무시할 수 없다. 경기력과 재미가 절묘하게 교집합을 이루고 있는 몇 안 되는 팀이기 때문이다. ‘한화 열풍’이 프로야구를 강타하고 있다. 시즌 전 좋게 봐야 4강 턱걸이 후보로 전망된 한화는 24승20패로 단독 3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적이 아니다. 웬만한 미니시리즈 뺨치는 드라마 같은 명승부로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대표적인 비인기구단이었던 한화는 이제 프로야구 전체를 좌우할 만한 블루칩으로 재탄생했다. 야구의 꽃 한화의 꽃 야구의 꽃은 홈런이다. 한화의 꽃도 홈런이다. 올 시즌 한화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이름값을 완전히 되찾았다. 44경기에서 47홈런으로 이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팀 타율(0.252)·출루율(0.331) 7위에도 불구하고 가공할만한 홈런포로 팀 득점에서는 당당히 전체 1위(216점)에 랭크돼 있다. 홈런의 힘이다. 한화는 팀 득점의 무려 39.4%를 홈런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나머지 팀들과의 비교로 확인할 수 있다. 나머지 7개 구단들의 득점에서 차지하는 평균 홈런 비율은 21.3%. 수치에서 나타나듯 한화는 홈런으로 대동단결한 팀이다. 한화의 홈런포는 전국을 가리지 않고 있다. 물론 홈구장인 대전구장에서 가장 많은 25개 홈런을 뽑았고 ‘제2의 홈구장’ 청주구장에서도 홈런 4개를 터뜨렸다. 이외에도 광주구장(6개)·잠실구장(5개)·사직구장(5개)·대구구장(1개)·문학구장(1개)에서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목동구장에서만 홈런을 때리지 못했다. 롯데 손민한이 전국구 에이스라면 한화는 전국구 홈런구단이다. 구장 효과를 논할 수도 없다. 한화의 평균 홈런 비거리는 116.1m로 LG(117.3m) 다음으로 길다. LG는 한화보다 홈런이 25개나 적다. 게다가 대전구장에 부는 맞바람을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다. 유지훤 수석코치는 “대전구장에서는 야간경기에 맞바람이 강하게 분다. 홈런이 절대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3~6번으로 이어지는 막강 클린업 쿼텟(quartet)에서 홈런포가 쏟아지고 있다. ‘슈퍼맨’ 덕 클락(13개)을 필두로 김태균(12개)·김태완(9개)·이범호(8개)가 홈런랭킹 상위권에 다수 포진해 있다. 팀 홈런 47개 가운데 42개를 이들이 합작해내고 있다. 홈런의 영양가도 만점이다. 42개 중 무려 40개가 3점차 이내 접전 상황에서 터진 알짜배기 홈런들이었다. 이 가운데 7개는 승부를 결정지은 결승홈런이었다. ‘해결사’ 김태균이 결승홈런을 3개나 기록 중이고, 클락(2개)·이범호(1개)·김태완(1개)이 뒤를 따르고 있다. 폭발적이고, 영양가 듬뿍 담긴 홈런포에 팬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다. 김인식 감독은 “홈런이 많이 나오니 관중이 늘고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한화는 지난 10~11일 창단 후 처음으로 페넌트레이스 2경기 연속 만원사례를 이뤘다. 짜릿한 역전 드라마 요기 베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올 시즌 마무리 불신 시대의 도래로 베라의 명언은 한국프로야구에 딱 씨가 되는 말이 됐다. 올 시즌 한화는 뒤집기에서 단연 돋보이는 팀이다. 7회 이후 승부를 뒤집은 경기가 무려 8차례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팀이 두산과 LG의 4차례라는 것을 감안할 때 한화는 뒤집기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팀으로 자리리매김했다. 올 시즌 팀이 거둔 24승 중 8승이 7회 이후 뒤집은 경기이니 24승이 그냥 24승이 아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주장 김민재는 팀 분위기가 좋은 이유에 대해 “역전승이 많으면 팀 분위기가 당연히 좋아지는 것 아닌가”라고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9회 이후 뒤집은 승부가 무려 5차례나 된다는 점이다. 지난달 17일 청주 우리전, 23일 잠실 LG전, 27일 대전 두산전 그리고 이달 6일 사직 롯데전과 20일 잠실 두산전까지 9회에만 집중타로 승부를 확 뒤집으며 팬들의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청주 우리전에서는 ‘청주의 배리 본즈’ 이도형이 대타로 등장해 기다렸다는듯 끝내기 안타를 터뜨렸고, 잠실 LG전에서는 9회초에만 안타 5개와 볼넷 2개로 대거 6득점하며 상대를 넉다운시켰다. 대전 두산전에서는 김태균이 끝내기 홈런으로 만세를 불렀고, 사직 롯데전에서는 임경완의 ‘레이업’ 실책에 편승했다. 잠실 두산전에서는 대타 송광민이 극적인 역전 결승타로 포효했다. 홈런포를 펑펑 터뜨리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한화지만, 사실 9회 경기를 뒤집을 때에는 홈런보다 집중타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복싱으로 치자면 잽부터 원투스트레이트에 이어 훅과 어퍼컷까지 날리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실제로 한화의 9회 역전극 5차례 모두 볼넷과 사구에서부터 역전극의 서막이 시작됐다. 꼭 필요할 때 몰아서 터지니 이보다 더 효율적일 수 없다. 김인식 감독도 “투수들이 점수를 적게 주면 꼭 일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송광민조차도 “팀원들을 보고 있으면 지고 있어도 진다는 느낌이 안 든다”고 말할 정도다. 마무리투수들에게 한화는 이제 공포의 대상이다. 마무리(Closer)가 아니라 패배자(Loser)가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구호는 전국의 산뿐만 아니라 한화 경기에도 필요해졌다. 신구의 조화와 재미 홈런과 뒤집기가 한화의 전부는 아니다.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열정과 투혼을 불사르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스포츠 사상 첫 20년차 선수로 등록된 송진우는 경기출전 자체가 역사다. 모든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물론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가 바꾸고 있다. 그렇다고 자리만 쭉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당당히 제5선발로 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송진우는 “내가 팀에 부담을 주면 자칫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다. 시즌 마지막까지 무조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사상 첫 2000탈삼진을 눈앞에 둔 송진우는 사상 첫 3000이닝 돌파를 올 시즌 목표로 설정했다. 코흘리개 시절, 젊은 날 송진우를 보고 자란 팬들은 이제 어엿한 가장이 되어 황혼의 송진우를 보고 있다. 자식들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3년 전, 장종훈의 성대한 은퇴식을 치른 바 있는 한화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송진우에게 구단 사상 가장 화려하고 성대한 은퇴식을 마련할 계획이다. 비단 송진우 하나뿐만이 아니다. 송진우의 기록을 차근차근 뒤따르고 있는 정민철도 한화의 노장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다. 정민철은 최다승과 투구이닝에서 모두 역대 2위에 랭크돼 있다. 톱타자 이영우도 한화의 무서운 힘이다. 모두가 군제대 후 감각을 잃은 그에게 고개를 저었지만, 한화는 믿고 기다려줬다. 올해 리그 최정상급 톱타자로 재탄생했다. 물론 두 선수도 선수로서 큰 꿈인 FA 자격을 포기할 정도로 위치를 파악하고 팀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두 선수는 각각 1972년·1973년생으로 30대 중반 노장이지만, 한화에서는 아직 한창 나이다. 1969년생으로 우리나이 마흔이 된 구대성의 존재감도 여전하다. 김인식 감독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만큼 젊은 선수들이 성장세가 더디고 구단 투자가 다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 감독도 심심찮게 “쪽수가 부족하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윤규진·안영명·양훈·유원상 등 젊은 투수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특히 류현진·이범호·김태균·김태완 등은 명실상부한 중심이 됐다. 류현진은 “선배님들께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배울 게 많다”며 최정상급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4번 타자 김태균은 머리를 짧게 깎고 각성한 모습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낼 태세다. 이범호는 어느덧 604경기 연속출장, 이 부문 역대 4위에 올라있다. 곧 2위 진입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한화의 숨어있는 기록 사나이가 바로 이범호다. 추승우와 이여상 같은 이적생들도 빠르게 한화에 물들고 있다. 추승우는 지난 20일 잠실 두산전에서 1루수로 나와 난데없이 2루로 가는 타구에 다이빙캐치하는 김태균 뺨치는 몸개그로 한화에 녹아든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한화는 경기당 평균 실책도 0.48개로 두 번째로 적다. 괜히 뒷목 잡을 일도 없다. 우울증을 앓거나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한화 경기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한화 야구에는 꽃과 드라마가 있고 역사와 인생이 있다. 결정적으로 재미가 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