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야구선수라는 직업은 칭찬만 먹고 살 수 없는 운명이다. 6개월 동안 매일매일 경기를 치르는 야구선수들은 영웅이 됐다 역적이 되기도 하고 오늘 울다 내일 웃기를 반복한다. 칭찬이 곧 날이 선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것도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차라리 무관심보다는 낫다.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욱 비범한 선수가 바로 우리 히어로즈 외야수 전준호(39)다. 전준호는 지난 7일 대전 한화전에서 1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출장,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20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2000경기의 위대함 한화 이범호는 지난 4일 광주 KIA전에서 연속출장기록이 615경기에서 마감됐다. 이범호는 “앞으로 8년을 다시 뛰면 1000경기 정도를 채울 수 있다”고 웃었다. 그러나 데뷔 후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 이범호도 통산 출장경기수는 아직 927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범호는 “2000경기라, 참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말이 없다”고 말했다. 1950경기 출장으로 지금도 이 부문 2위를 마크하고 있는 한화 장종훈 타격코치도 같은 반응이었다. “참 대단한 기록이다. 경기출장이 그냥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말처럼 쉬운 게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126경기로 경기수도 적다”고 강조했다. 전준호 스스로도 인정했다. 전준호는 “2000경기는 숫자상으로도 의미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베테랑으로서 의무감과 사명감을 갖고 해온 것이 2000경기 출장 기록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준호는 “2000경기까지 18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마산고-영남대를 졸업하고 지난 1991년 롯데에서 데뷔한 전준호는 이후 17년간 3년(1994·2000·2005)을 제외한 나머지 14년은 모두 100경기 이상 출장하는 꾸준함을 과시했다. 전준호는 “큰 부상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도 꾸준한 자기관리의 비결 중 하나다. 전준호는 2000경기 동안 선발출장 경기가 무려 1816경기나 된다. 주전·비주전을 떠나 1816경기 이상 출장한 선수도 전준호를 포함해 단 5명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2000경기 동안 전체 출장경기의 64.8%에 해당하는 1295경기에 1개 이상의 안타를 때려냈다. 2000번째 경기가 된 날에도 전준호는 첫 타석에서부터 깨끗한 좌전안타를 터뜨렸다. 개인통산 2000경기 이상 출장은 메이저리그에서는 211명, 일본프로야구에서는 38명이 기록했다. 그러나 이제 겨우 27년째를 치르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에서는 기념비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전준호도 이제 역사다. 톱타자는 조연이다 전준호는 1991년 데뷔 첫 해부터 1번 톱타자 자리를 꿰찼다. 특히 1993년에는 해태 이종범과 함께 사상 첫 70도루 시대를 열어젖히며 생애 첫 도루왕(75개)을 차지했다. 한 해 걸러 1995년 생애 두 번째 도루왕(69개)에 오른 전준호는 2004년에는 35살이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53개 도루를 기록하며 이 부문 1위를 또 다시 거머쥐었다. 역대 최고령 도루왕이었다. 불혹이 코앞으로 다가온 나이지만 여전히 전준호는 루상에 나갈 때마다 상대 배터리를 진득하게 괴롭히는 성가신 존재다.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롯데)도 가장 까다로운 타자로 전준호를 주저없이 꼽는다. 이에 대해 전준호는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가 그렇게 말을 해주니 영광이다. 나도 (손)민한이가 많이 까다롭다. 하지만 만만한 투수는 어디에도 없다. 전부 다 어렵다”고 말했다. 전준호는 대도이기 전에 최고 톱타자다. 물론 전성기 이종범도 최고 톱타자로 명성을 떨쳤지만 순수 톱타자로 제한하기에는 보여준 것이 너무 많은 5툴 플레이어였다. 전준호는 예나 지금이나 고전적인 의미의 톱타자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장타를 생산할 파워는 없지만 정확하고 꾸준하며 매우 진득한 타격을 펼쳤다. 통산 타율 2할9푼2리는 전준호가 얼마나 정확한 컨택 타자인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3할 타율을 6시즌이나 기록했고 2할6푼 밑으로 떨어진 시즌이 딱 한 시즌밖에 없을 정도로 꾸준했다. 지난해에도 3할에 가까운 2할9푼6리를 때렸고, 올해에도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3할5푼8리로 맹타를 치고 있다. 하지만 전준호는 “톱타자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다”고 강조했다. 전준호는 “중심타자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톱타자의 역할이다.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지 못 받았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다. 톱타자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18년차가 된 전준호는 톱타자로 가장 많은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른바 ‘맨 먼저 전준호’이다. 올 시즌에도 톱타자로 18경기에 출장했다. 전준호는 “사실 톱타자로 이렇게 오래 뛰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그답지 않게 자부심도 짐짓 드러냈다. 1번 타순은 전준호라는 영혼의 영원한 전쟁터이자 안식처다. 집중력 그리고 열정 전준호는 집중력이 매우 좋은 타자다. 팀 후배 이택근은 “야구장 안팎에서 여러모로 배울 것이 많은 선배다. 특히 야구장에서 집중하시는 모습이 대단하다. 그런 모습을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선수 클리프 브룸바도 “평소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당연한 결과”라고 동조했다. 김응국 타격코치도 “(전)준호는 공을 보는 눈이 지금도 살아있다. 특히 선구안이 좋다. 그것이 지금 나이에도 잘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전준호는 통산 볼넷도 836개로 이 부문에서 역대 5위에 랭크돼 있다. 안타로 치고 나갔을 뿐만 아니라 많이 볼넷으로 걸어나갔으며 집중력으로 베이스를 훔쳤다. 통산 도루 1위(537개)면서 도루성공률도 72.2%로 높다. 올해 18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노리고 있다. 집중력의 힘이다. 하지만 전준호는 집중력보다 더 열정을 강조하고 있다. 전준호는 “후배들에게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이 열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선수로서 그라운드에 보여주는 열정,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가 결국은 꾸준함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준호는 지난 18년간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플레이한 선수다. 젊은 시절부터 빠른 발과 순발력으로 먹고 살았지만 지금도 그 분야에서 정상급을 다투고 있다. 전준호는 “유연성·순발력으로 지금까지 왔다. 요즘도 유연성을 기르고, 순발력을 키우는 운동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웨이트 트레이닝 기법과 현대의학의 발달로 선수생활이 길어졌지만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건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몫이다. 전준호는 “팀 성적이 좋았으면 기록 달성이 더욱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준호는 가장 기뻤던 일로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들을 꼽았다. “1992년 롯데에서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않았나. 우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라는 것이 전준호의 말이다. 그러고보니 전준호는 5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1992년 롯데와 1998·2000·2003·2004년 현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는 톱타자 전준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삼성 박진만(45경기) 다음으로 가장 많은 한국시리즈 출장기록(41경기)을 갖고 있지만 간과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전준호는 “기량에 비해 많은 사랑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팬들은 기량에 비해 적은 사랑이 미안할 따름이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