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박한이, 시련 딛고 화려한 부활
OSEN 기자
발행 2008.07.22 07: 38

[OSEN=이상학 객원기자] 지난 겨울 가루가 되도록 모진 질타받은 두 선수가 있었다. 한화 4번 타자 김태균(26), 삼성 톱타자 박한이(29). 지난 2001년 프로무대 입단동기로 첫 해부터 신인왕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인 두 선수는 이후 비슷한 행보를 보이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두 선수는 지난 몇 년간 나란히 하락세를 보이며 동병상련을 겪었다. 하지만 올 시즌, 약속이라도 한듯 시련을 딛고 화려하게 부활하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신인왕 2001년 신인왕 레이스는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박한이의 독무대였다. 이정호·김희걸·김주철·이동현 등 고졸투수들이 집단부진했지만 동국대를 졸업한 국가대표 출신 박한이는 한화와의 개막전 첫 타석부터 기습번트 이후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출루하며 삼성이 그토록 바라던 1번 톱타자 면모를 보여줬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입단한 김태균은 2군에 있었다. 국제대회에서 실력이 입증된 대졸신인과 달리 아직 보여준 것이 없는 고졸신인에게 개막 엔트리 진입은 언감생심이었다. 박한이는 개막전부터 톱타자로 출발해 꾸준하게 활약했다. 하지만 후반기부터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장종훈의 부상을 틈타 1군에서 기회를 잡은 김태균이 가공할 만한 파워를 뽐내기 시작한 것이다. 박한이가 크게 눈에 띄지 않고 꾸준하게 활약했지만 김태균은 야구의 꽃인 홈런으로 어필했다. 8월 8홈런으로 폭발하더니 한화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바짝 기세를 올렸던 9월에도 5홈런을 터뜨렸다. 9월 5홈런 가운데 결승홈런이 2개였으며 결승타도 4개나 될 정도로 해결사 면모를 발휘했다. 삼성이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하고 한화도 막차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신인왕 향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박한이는 페넌트레이스 1위 팀에서 붙박이 1번 타자로 130경기에 출장한 것을 무기로 삼았다. 김태균은 88경기에서 무려 20홈런을 터뜨린 장타력으로 승부했다. 당시 김태균은 1994년 LG 김재현 이후 만 20세 이전 20홈런을 돌파한 첫 선수였다. 승자는 ‘홈런소년’ 김태균이었다.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태균이 신인왕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박한이는 통음했고, 김태균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엇갈림은 그 때 그 순간 뿐이었다. 이후 김태균과 박한이는 스타일은 상반되지만, 서로를 의식하듯 함께 상승하고 하락하며 웃고 울었다. 시련 김태균과 박한이는 간판타자로 활약하며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김태균은 2002년 극심한 2년차 징크스에 시달렸지만 3년차가 된 2003년 타율 3할1푼9리·31홈런·95타점으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포스트 이승엽으로 주목받았다. 2004~2005년에도 2년 연속으로 20홈런-100타점을 돌파해 성장세를 멈추지 않았다. 박한이도 2003년 170안타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하며 3할2푼2리의 타율을 기록했고 2004년에도 3할1푼 타율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후 두 선수에게 예기치 못한 어두운 그림자가 아주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김태균은 ‘1982년생 동갑내기 친구’ 이대호(롯데)가 잠재력을 터뜨린 2006년부터 갑작스런 부진에 빠졌다. 부진은 2년 연속 이어졌다. 이대호가 리그를 대표하는 톱클래스 타자로 자리매김했던 지난 2년간 김태균은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정확성이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파워가 증가한 것도 아니었다. 별명만 많고 상대에게 자비를 베푸는 ‘웃기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박한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4년을 기점으로 매년 떨어진 타율은 지난해 2할6푼7리까지 하락했다. 선구안은 나쁘지 않았지만 도루도 10개를 겨우 채울 정도로 느려졌다. 최악의 시즌을 마친 후 돌아온 것은 연봉 삭감이었다. 2년차 시절 부진으로 3년차 때 연봉이 깎인 것을 빼면 매년 연봉에서 상승곡선을 그릴 정도로 한화의 황태자 대접을 받았던 김태균은 결국 3억1000만 원에서 2억9000만 원으로 연봉이 깎였다. 그사이 이대호는 3억6000만 원에 계약하며 김태균을 따돌렸다. 박한이도 사정은 비슷했다. 2억7000만 원에서 2억4300만 원. 데뷔 후 처음으로 연봉 삭감이라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한 번 부진은 용납된다. 그러나 두 선수는 약속이라도 한듯 매년 부진을 거듭한 바람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부활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김태균과 박한이는 끊임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군말이 없었다. 김태균은 장종훈 타격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홈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950g 이상으로 쓰던 방망이 무게를 930g 이하로 제한하기로 결심했다. 김태균은 “일단 타율을 3할 이상 치는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욕심을 버리고 변화를 택하기보다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박한이도 시작은 불안불안했다. 선동렬 감독은 신인 외야수 허승민과 이영욱 등을 시범경기 때부터 중용하며 박한이를 끊임없이 자극으로 몰아붙였다. 벼랑 끝으로 떨어뜨려 올라오는 자식만 키우는 사자의 방식이었다. 절치부심의 결과는 성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김태균과 박한이는 오랜 시련을 딛고, 올해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김태균은 올 시즌 83경기에서 타율 3할3푼3리·26홈런·80타점으로 그간의 설움을 한꺼번에 털어내고 있다. 홈런·타점 1위. 공교롭게도 친구 이대호가 최악의 부진을 보이고 있어 대조된다. 홈런·타점뿐만 아니라 장타율(0.688)도 1위를 달리고 있고 타율도 공동 4위. 그동안 개인 타이틀이 하나도 없었던 김태균은 이제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노린다. 박한이도 72경기에서 타율 3할2푼1리에다 출루율 4할2푼4리로 각각 8·4위에 랭크돼 있다. 달려라 하니는 이제 추억이지만 대신 상대팀을 괴롭히는 천방지축 하니로 돌아왔다. 박한이는 못난 사람은 아니지만 종종 너무 급해 허둥지둥할 때가 있다. 하지만 박한이가 살아야 삼성이 사는 건 매우 당연한 명제다. 올 시즌 두 선수의 활약이 더욱 빛나는 것은 부상이라는 악재를 이겨냈다는 점 때문이다. 김태균은 오른쪽 옆구리부터 왼쪽 새끼손가락과 손등 그리고 무릎과 허벅지까지 몸 어디에도 안 다친 곳이 없다. 박한이도 오른쪽 새끼손가락부터 허리·무릎 등을 차례로 다쳐 두 차례나 2군에 다녀올 정도로 고생했다. 하지만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질주하고 있다. 김태균은 “모든 것은 후반기까지 가봐야 안다. 지금까지 활약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박한이는 “지난해 너무 부진해서 전지훈련을 열심히 소화했는데 이제야 효과를 보는 것 같다. 2군까지 경험하며 신인의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내년 시즌을 마치면 나란히 FA가 되는 두 선수. 진짜 실력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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