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2010 V리그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4위권으로 평가받던 삼성화재가 정규시즌과 챔피언전서 통합 우승을 거머쥐며 저력을 과시했다. 일부에서는 '캐나다 거포' 가빈 슈미트의 '몰빵 배구'라며 깎아내리기에 바빴지만 30대 선수들이 주축인 삼성화재의 우승은 피땀으로 만들어낸 달콤한 열매였다.
V리그 네번째 우승과 대회 3연패라는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던 성과 뒤에는 바로 명조련사 신치용(55) 감독이 있었다. 국가대표팀과 삼성화재 두 팀의 훈련을 모두 관리하는 상황이고 FA 영입 문제까지 겹치면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는 신치용 감독을 지난 27일 오후 남자배구 대표팀이 훈련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삼성 휴먼센터 내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나봤다.
"대표팀에 소속팀에 거기다 강연까지. 아, 정말 정신없네요. 오랜만이에요. 여기서 바로 시작할까요". 신 감독을 만나자 마자 기관총에서 총알 쏟아지듯 들은 말이다. 바쁜 건 분명하지만 특유의 맺고 끊음을 알 수 있는 한 마디였다.

▲ 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감독의 책무
용인 삼성휴먼센터 내에 위치한 트레이닝센터에서는 오전과 오후 번갈아 삼성화재 선수들과 대표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임도헌 코치, 대표팀은 신영철 대한항공 감독이 코치직을 수행하면서 신치용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신치용 감독은 유능한 코치들이 감독을 도와준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신 감독은 감독의 책무에 대해 논하면서 시즌 시작 전이지만 벌써부터 삼성화재의 5번째 우승에 대한 밑그림을 설명했다.
"네 번째 우승을 했지만 더 열심히 해서 우승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죠. 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다음 시즌은 더 많은 준비를 통해서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우승을 많이 했든 못했든 그건 결과이지만 감독의 책무는 좀 달라요. 항상 철저하게 감독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프로배구 원년 우승 이후 김세진과 신진식 등 대표적인 거포들을 은퇴시킨 뒤 신 감독이 얻은 성과는 리그 3연패. 자신의 손으로 키운 제자를 내보내는 것은 마음 아프지만 프로세계에서 가장 큰 미덕은 '실력'이라는 사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째 시즌과 세 번째 시즌을 현대캐피탈에 내준 뒤 (김)세진이하고 (신)진식이를 차례로 보냈죠. 잘 했다. 못했다는 문제를 떠나서 감독으로서 판단할 수 밖에 없었죠. 프로는 결과를 가지고 말하니까요. 삼성화재는 앞으로 몇 년 간 힘들 거라는 주위의 예상을 뒤로 하고 지금 3연패를 했잖습니까. 결과적으로 잘 된 판단인 거죠. 선수들이 미워서,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었어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는 은퇴가 필요했던 거죠. 선수들의 기량의 한계가 있었고 팀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판단이었습니다. 선수들도 그런 부분은 은퇴할 때는 섭섭했겠지만 지금은 이해한다고 봅니다".
한창 말을 이어나가던 신 감독은 FA 계약과 관련해서 청산유수와 같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좋은 선수를 데리고 와야 하는 것은 감독의 책무이기 때문에 박철우 영입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 신 감독의 딸인 신혜인과 박철우가 연인 사이라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선수 영입에 사심이 들어가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과 사는 분명하게 구분해 박철우라는 '선수'의 필요성에 대해 명확한 신 감독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아주 기본적인 사실이죠. 좋은 선수를 데리고 와야 한다는 건 삼성화재 구성원들을 봤을 때도 당연한 겁니다. 데리고 올 수 있는데 안 데리고 온다면 그거야말로 감독의 책무를 못한 겁니다. 사람들이 지금 다른 시각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조건만 서로 맞는다면 데리고 와야죠. 선수 영입에 개인적인 문제는 있을수도 없고요. 지금 전 박철우가 아니라 다른 선수라도 데리고 와야 해요. 지금은 그 대상이 박철우일 뿐이죠".
2009-2010 V리그 개막에 앞서 삼성화재는 분명 4위권 정도로 평가받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신 감독도 본인 생각에도 4위 정도가 답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마법이 삼성화재를 우승으로 이끌었을까?
"우리 선수들이 100% 실력을 냈기 때문이에요. 다른 팀 선수들은 100%를 못 낸 거고요. 지금 우리 팀은 다른 팀에서 FA로 관심 가질 선수가 1~2명에 불과해요. 한전에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문성민을 2-1 트레이드로 데리고 오고 싶어해도 우리에게 데려갈 선수가 없어서 트레이드 자체가 안되니깐요. 그래도 우리가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거죠. 또 우리 팀 컬러가 달라졌어요. 용병 공격 의존도가 높아졌지만 조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수비 배구, 팀웍 배구가 가능해진 거죠. 있는 선수를 안 쓸 수는 없고요. 최선을 다해서 경기력을 극대화시킨 겁니다".

▲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목표는 금메달
소속팀 삼성화재 못지 않게 신 감독의 두통거리는 바로 대표팀. 주 공격수 박철우가 챔피언결정전서 당한 왼쪽 손가락 골절 수술로 제외됐고, 세터 권영민(기흉) 센터 이선규(무릎) 하경민(발목)도 엔트리에서 빠져나가면서 온전한 전력의 대표 소집에 실패했기 때문. 불행 중 다행인 사실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전에는 팀을 정상화시킬 수 있지만 눈 앞에 닥친 월드리그는 분명 난관임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배구 선수들에게는 비시즌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에 급작스러운 소집으로 인해 여건도 좋지 않아 신 감독은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표팀의 목표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죠. 모든 초점을 그쪽에 맞출 수 밖에 없어요. 이번 월드리그를 통해서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목표나 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이외에 다른 메달은 필요없잖아요. 그전에 닥친 월드리그서 우리가 네덜란드 불가리아 브라질과 같은 조인데 지금 우리 경기력으로 과연 몇 경기나 따내느냐가 문제인 셈이죠. 내년도 출전권을 따려면 좋은 경기를 해야 하나 우리 조에서 쉽게 이길 수 있는 팀은 객관적으로 없어요. 홈에서 하는 4경기에서 3승 정도는 해야겠다는 목표죠. 최악의 여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해서 2~3승은 해야겠습니다".
신 감독은 월드리그를 통해서 팀 컬러를 잡겠다는 의지를 설명했다. 세계 배구의 추세가 빠르다고 하지만 꼭 빠른 배구만이 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오히려 구성원들에 맞춘 균형있는 배구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빠른 배구는 사실 한전 코치 시절인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해봤어요. 세계화 추세가 빠르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흉내내기죠. 지피지기를 못하는 겁니다. 무조건 빠른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선수 구성원에 맞추는 배구를 해야 합니다. 배구는 수학적으로 한다고 해결되는 운동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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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용인=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