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WC 돋보기]정대세, 유럽 빅리그의 관심 끌기에 충분했다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10.06.16 10: 09

[6월 16일 브라질-북한(G조), 요하네스버그]
한국으로서는 이 경기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곧 펼쳐질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경기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미와 아시아의 경기라는 점, 1700m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한 경기장이라는 점, 양 팀 선수의 기량이 차이가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한국은 이 경기를 통해 전술적으로 큰 도움은 얻지 못할 것 같다. 북한과 같은 수비 전술을 택하기에는 한국이 갖고 있는 많은 장점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깝고 또 90분 내내 수비만 해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같은 팀을 막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결과는 브라질의 승리였지만 북한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상당히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전반을 0-0으로 막아냈을 때는 대회 최고의 이변 가능성까지 생각하게끔 했다.
정대세를 제외한 9명의 선수가 수비에 포진하면서 네덜란드를 상대할 때 덴마크를 능가하는 촘촘한 수비 진영을 구축해 밀집 수비의 진수를 보여줬다. 홍영조와 문인국은 북한 선수로서는 보기 드문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정대세에게 볼을 연결했고 정대세는 세계 최고의 브라질을 상대로 위력적인 드리블 돌파를 선보였다.
하지만 단순한 압박과 밀집수비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경기 관전평에서 언급했듯 이러한 밀집수비가 3선에서 구축된다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공격 전환 시 공격수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다.
어쨌든 이날 경기는 승패를 떠나 관중들에게 상당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브라질은 현란한 개인기를 선보였다. 특히 북한의 터무니없을 정도의 밀집수비를 뚫어낸 마이콘의 슈팅과 호비뉴의 절묘한 스루패스에 이은 엘라누의 슈팅은 FIFA 랭킹 1위의 명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었다.
반면 북한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은 한국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전반서 북한은 세계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브라질마저 어쩔 도리가 없는 촘촘한 수비를 선보였고 후반 두 골을 허용한 다음에도 끝까지 경기에 집중해 결국 그림 같은 만회골까지 기록했다. 
브라질과 현저한 개인 기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북한 선수들의 모습을 한국 선수들도 아르헨티나와 경기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이 경기서 호비뉴와 정대세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호비뉴는 브라질 리그로 돌아간 후 오히려 기량이 발전한 듯한 모습을 보여 이번 월드컵에서 활약이 기대되고 정대세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유럽 빅리그의 많은 스카우트의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정대세는 이미 독일 분데스리그 관계자들이 집중 관찰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인 루시우를 상대로 보여준 정대세의 볼 키핑력과 돌파 능력은 세계 정상급 공격수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또한 후반 막판 만회골을 기록한 지윤남에게 떨궈 준 정대세의 헤딩 패스는 수비수를 끌어내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이상적인 원톱의 모습이었다.
감독의 용병술 대결 또한 상당한 묘미가 있었다. 북한은 브라질을 상대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3선에서 밀집 수비는 아쉬운 점은 있지만 개인 기량이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정대세 문인국을 활용한 빠른 역습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브라질의 둥가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경기의 템포를 빠르게 바꿈으로써 북한의 수비진을 허물었다. 아르헨티나는 나이지리아전에서 베론의 패스를 받은 공격수가 개인 돌파나 2대1 패스 등 개인 기량으로 공격을 진행했지만 브라질은 둥가 감독의 전술 아래 조직력 있는 공격 스타일을 보이는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 사람의 관중으로서 축구의 매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경기였고 또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경기였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사진> 요하네스버그=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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