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축구계에도 능력있고 훌륭한 분들이 많다. 국내 유능한 분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끈 허정무(55) 감독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후임 자도 국내 지도자였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허정무 감독은 남아공월드컵에서 그리스를 2-0으로 꺾고 첫 원정 승리를 이끌며 16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하는 지도력으로 연임이 유력했지만 결국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며 2년 6개월 동안 잡았던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내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을 앞두고 있는 만큼 조만간 기술위원회를 열고 허정무 감독의 후임을 결정할 예정이다. 정해성 수석코치와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다음은 허정무 감독과 일문일답.
- 전체적인 소감은.
▲ 그 동안 믿고 맡겨주신 조중연 회장님 이하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입장을 분명히 정리하는 것이 차기 감독 인선에 부담을 덜고 불필요한 오해나 혼선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기 대표팀 인선에서 물러남을 말씀드린다. 2년 6개월 동안 잘못했던 점 등을 되짚어보고 재충전할 기회를 갖고자 한다. 나 말고도 축구계에 능력있고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이 계시고, 능력과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시 한 번 물신양면으로 지원해준 분을 비롯해 붉은 악마와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해주신 국민들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 드린다.
- 사임 결정 시기는 정확히 언제이고 그 이유는?
▲ 어떻게 보면 멀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고 여러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 같아 오늘 서둘러 발표하게 됐다. 월드컵 예선과 본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코치진들에게 이번 월드컵 결과에 관계없이 시간을 갖겠다고 이야기해왔다. 대회 이후 협회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물러날 때라고 생각했다.
팬들의 비난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니고 부족한 점을 충전하고 싶어서다. 가족들의 반대가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가족들이 너무 신경써서 몸이 변할 때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들과 의논을 했고 못해줬던 것을 이제는 잘해주고 싶다.
- 향후 계획은?
▲ 어떤 형태로든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 기여하고 싶다. 남미를 비롯한 세계 강국들이 벽이 됐고 ,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생각을 나눴다. 체력적, 정신적, 조직적인 면에서 뒤지지는 않지만 가장 부족한 점은 기술적인 부분이다. 기초가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연구해야 한다. 축구를 통해 너무 많은 혜택을 받았고 큰 빚을 졌다.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여러 방향이 있다. 어떤 형태로든 현장에 몸을 담고 10년 후 미래를 위해 봉사를 하는 등 축구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은 생각이다.
- K리그 복귀설이 있는데
▲ 아직 젊으니 불러준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축구 발전을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근본적인 밑바탕이 미흡하다. 충족될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모든 면에서 기여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해줬으면 좋겠다.
- 후임 감독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능력이 있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한눈 팔지 않고 보다 높은 곳으로 정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후임 감독으로 국내 혹은 외국인 사령탑 중 누가 적합할까?
▲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이야기하기 민감한 부분이다.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 축구계에도 능력있고 훌륭한 분들이 많다. 국내 유능한 분들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국내 감독 혹은 외국인 감독 중 누가 나은지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가 결정되든 지나치지 않는 범위에서 돕고 싶다.
- 행복했던 순간과 후회했던 순간 및 꼭 해보고 싶은 것은?
▲ 2년 반 동안 안 좋았던 것보다 좋았던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좌절을 잘 느끼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중국에 0-3으로 지고 아르헨티나에 1-4로 패했지만 어느 나라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월드컵에서 그리스에 이겼을 때와 16강이 확정됐을 때 너무 기뻤다. 우루과이전에서 비록 지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을 봤을 때 정말 고마웠고 행복했다. 꼭 해보고 싶은 것은 축구쪽으로는 유럽도 그렇지만 남미팀을 뛰어넘었으면 좋겠다. 축구 외에는 가족들과 조용한 곳에 가서 쉬고 싶다.
- 선수와 감독으로서 태극마크를 마감하게 됐는데 만감이 교차하지는 않는지?
▲ 월드컵에 선수와 코치로 나갔을 때 항상 후회스러웠기에 이번에는 후회없이 잘해보자는 생각으로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끝나니 후회스럽고 아쉬운 것이 현실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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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영민 기자ajyou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