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네덜란드-브라질(8강전), 포트 엘리자베스]
흔히 축구에서는 강한 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팀이 강한 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공격력은 유지한 채 수비력을 강화한 둥가 감독의 브라질은 약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팀이었다.

물론 네덜란드가 약한 팀이 아니기에 이변이라고는 평가할 수 없겠지만, 브라질의 패배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브라질은 4백 수비와 3톱 공격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브라질은 수비 시 4백의 수비와 3명의 미드필더만 3선까지 내려온다. 3명의 공격수는 하프라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브라질 공격수의 개인 기량이라면 3명만으로도 충분히 골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상대팀은 공격에 전념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7명의 수비와 미드필드진의 간격은 상당히 촘촘하고, 협력 수비, 커버 플레이가 유기적이기 때문에 역습을 대비한 채 공격을 해야 하는 상대팀으로서는 이를 뚫기가 쉽지 않다.
브라질은 오른쪽 풀백인 마이콘이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데 이때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그의 자리를 커버해준다. 마이콘은 오른쪽, 왼쪽의 모든 코너킥을 전담할 정도로 킥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스피드까지 있어 상대 수비수로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일단 상대팀 선수가 2선에서 스피드를 살려 침투하면, 수비수는 뒤로 물러나며 수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크가 쉽지 않은데 마이콘은 그 스피드를 살려 바로 논스톱으로 슈팅까지 연결하는 능력이 있다. 게다가 상황 판단력과 볼 키핑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는 이번 대회에서 오버래핑의 교과서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브라질은 전반전 선취점을 득점한 후 역전골을 허용할 때까지 그들의 페이스로 경기를 끌어갔다. 사실 네덜란드의 동점골, 역전골은 그 어떤 완벽한 수비전술을 갖고 있는 팀이라해도 막을 수 없는 득점이었다. 네덜란드의 승리를 향한 집념의 결과이고 약간의 운도 따른 골이었다. 역전골을 허용한 후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기에 브라질은 충분히 따라갈 여력이 있었다.
때문에 브라질로서는 펠리페 멜루의 퇴장이 패인이라 할 수 있다. 펠리페 멜루의 자책골은 사실 축구 경기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자책골 이후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파울을 저지름으로써 퇴장을 당했고, 팀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중시하는 브라질로서 리드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명의 공백은 치명적이었다.
브라질의 3선 라인은 페널티 에어리어 부근에 형성된다. 동시에 1선은 중앙선 부근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브라질의 수비진이 탄탄한 것을 감안하면 상대팀으로서는 득점을 하기 위해서는 팀의 전반적인 라인을 올릴 수 밖에 없다. 브라질은 볼을 빼앗는 순간 바로 대기하고 있는 1선에 볼을 연결하기 때문에 수비를 하는 것 자체가 공격의 한 방법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이런 선 수비, 후 역습의 축구를 하는 브라질이 역전골을 허용한 후 공격축구를 할 수 밖에 없게 됐고 기존의 전술이 아닌 임기응변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 명의 선수까지 퇴장을 당하자 아무리 브라질이라 해도 마땅한 활로를 찾을 수 없었다.

네덜란드는 로벤이 살아나면서 조별 리그보다 활기를 띠는 모습을 보였고, 그 무엇보다 승리를 향한 집념이 강했다. 전술적인 면이나 선수들의 기량 등 모든 면에서 브라질이 한 수 위였고 무엇보다 브라질이 선취점까지 기록하면서 네덜란드의 4강 진출은 힘들어 보였다.
그러한 네덜란드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동점골을 기록하고 역전승까지 거둬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정신력이다. 흐름의 스포츠인 축구에서 정신력은 실력의 격차를 메꾸고 남을 만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역대 월드컵을 통틀어 가장 밸런스가 좋은 완벽한 축구를 선보였던 브라질의 축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네덜란드는 이날 승리를 충분히 자부할 만한 자격이 있는 경기 내용을 보였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사진> 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송석인 객원기자 song@osen.co.kr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