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WC 돋보기]마라도나의 '고집', 독일의 '조직'에는 안 통했다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10.07.04 10: 32

[7월 3일 독일-아르헨티나(8강전), 케이프타운]
 
브라질이 4강 진출에 실패한 뒤라 이날 경기는 사실상 결승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럽팀 중 가장 좋은 밸런스를 보이고 있는 독일과 전통적인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의 대결은 두 대륙의 스타일을 확연하게 보여줬다.

혹자는 수비축구로 전환한 브라질을 기준 삼아 남미 축구가 재미없어졌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날 경기를 지켜본 후라면 그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날 아르헨티나가 보여준 전술이 바로 공격 축구의 대명사인 남미 축구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축구의 흐름을 거부한 채 공격 축구를 고집한 마라도나 감독의 선택이 이날 경기의 패인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은 묵직한 축구로 아르헨티나를 침몰시켰다. 90분 내내 페이스를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내는 모습은 장엄해보이기까지 했다.
1선과 3선의 간격을 좁히고, 유기적인 협력 수비와 커버 플레이, 왕성한 기동력이 전반적인 현대 축구의 흐름이다. 독일 축구는 이러한 현대 축구 전술에 독일의 전통적인 단단함을 접목시켜 예전보다 세련된 축구를 선사했다.
일단 수비에서 독일의 3선 라인 조절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후반 중반 아르헨티나의 골이 오프사이드로 판정됐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1초의 틈만 있어도 독일의 3선은 라인을 재정비할 수 있는 호흡을 갖췄다. 이러한 라인 조절 능력은 아르헨티나의 공격이 골을 기록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공격의 차이점은 공격 템포에 있다. 브라질은 인터셉트를 하자마자 중앙선에서 대기하고 있는 1선 공격수 3명에게 빠르게 볼을 연결하고, 그들은 2선의 서포트를 기다리지 않은 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신속하게 공격을 진행한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1선에서 볼을 잡은 후 2선의 지원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독일의 수비진은 조금만 시간을 벌면 라인을 정비할 수 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브라질과는 다르게 공격을 지체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 골을 넣지 못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공격을 지체하는 현상은 아르헨티나가 공격 전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볼을 잡으면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약속된 전술이 없으면 볼 처리 속도가 지연될 수 밖에 없다. 마라도나 감독은 선수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전술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독일의 조직력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기량으로 극복할 수 없었던 벽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공격 역시 수비와 마찬가지로 1선과 3선의 간격을 좁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간격이 좁기 때문에 1선과 2선이 동시에 공격에 참여할 수 있고 이는 수적 우위로 이어진다. 물론 이는 상대 수비진이 진영을 갖추기 전에 빠르게 역습으로 이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의 공격 전술은 측면 공격에 이은 크로스다. 이는 독일과 같은 팀에는 매우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인 공격이다. 독일은 다른 팀들과 다르게 중앙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말은 중앙에 마크가 없이 크로스를 받을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측면 돌파만 성공한다면 골로 연결될 확률이 매우 높은 패스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르헨티나는 메시와 공격진이 고군분투했지만 골키퍼 노이어를 비롯한 독일의 수비가 너무 탄탄했고 무엇보다 현대 축구에서 특별한 공격 전술 없이 선수들의 개인 기량만으로 독일과 같이 완성된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수비를 뚫는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독일은 스페인과 4강전에 뮐러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1명의 선수의 결장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뮐러는 외질과 함께 독일의 공격을 이끌어 가고 있는 핵심적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외질이 뮐러보다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외질은 뮐러와 다르게 저돌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면에서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뮐러의 결장은 독일의 공격력에 있어 상당히 큰 타격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독일은 뢰브 감독을 중심으로 조직력이 상당히 견고할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를 연달아 큰 점수 차로 격파하고 4강에 진출했기 때문에 그 기세를 몰아간다면 스페인을 상대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사진> 케이프타운(남아공)=송석인 객원기자 song@osen.co.kr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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