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스페인-네덜란드(결승전), 요하네스버그]
월드컵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축구 대회다. 대륙 예선에서 시작해 조별리그, 토너먼트를 거쳐 세계 최고에 오르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력이나 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다는 것은 축구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일 것이다.

유로 2008을 제패한 황금 세대가 절정의 기량을 맞은 스페인은 화려한 공격 축구를 선보이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스페인 선수들은 그 어느 팀도 따라할 수 없는 유기적인 전술을 보였고 비록 많은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어느 팀보다 많은 찬스를 만들어냈다.
이날 경기에서도 라모스가 끊임없이 오버래핑에 나섰고 세트피스 찬스에는 푸욜과 피케까지 공격에 나섰다. 사비 이니에스타 페드로 비야는 공격에 비중을 두고 경기에 임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사비 알론소와 부스케츠의 유기적인 커버플레이가 스페인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후반 중반까지는 핸드볼 게임을 연상하게 할 만큼 많은 파울이 나왔다. 이는 스페인과 네덜란드 모두 탄탄한 수비를 갖추고 있고 속공과 지공에 모두 능하며 볼 점유율을 중시하는 축구를 하기 때문이다. 한 팀이 본연의 플레이를 하기 위해선 상대 팀이 볼을 점유하지 못하게 방해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의 볼 점유를 저지하기 위해 많은 파울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무려 14장의 경고 중 네덜란드가 9장을 받았는데 이는 스페인의 실력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장전에서 헤이팅아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파울이 없었다면 네덜란드는 연장전까지 경기를 끌고갈 수 없었을 것이다. 네덜란드로서는 결정적인 몇 차례의 찬스를 놓친 것과 경기 막판 5분을 버티지 못한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파울은 후반 중반까지 집중됐는데, 다음 경기가 없는 만큼 퇴장만 당하지 않는다면 경고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효과적인 전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미드필드서부터 강한 전진 압박을 가함으로써 스페인의 패싱 게임 봉쇄에 나섰다. 특히 스페인이 볼을 패스하지 않고 키핑하고 있을 때는 어김없이 경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파울로 위협을 가함으로써 스페인이 본연의 플레이를 할 수 없게끔 흐름을 깨뜨렸다.
네덜란드는 로벤이 빠른 스피드와 위협적인 슈팅을 앞세워 고군분투하며 공격을 이끌었지만, 수비에 많은 비중을 뒀기 때문에 스네이더 등이 평소의 공격력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모든 선수들이 1선에서부터 강하게 스페인을 압박함으로써 대등한 경기 내용을 보여줄 수 있었다.
스페인은 경기 초반부터 3선라인을 공격적으로 올리며 골에 대한 의지를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잦은 패스 미스를 보이며 경기를 지배하지 못했다. 이는 네덜란드의 거센 압박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스페인이 볼을 키핑할 때면 어김없이 네덜란드가 파울로 끊으며 흐름을 가다다듬을 여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후반 중반 이후 네덜란드의 선수 대부분이 경고를 받아 더이상 마음 놓고 파울을 범할 수 없게 된 후부터 스페인의 패스워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스페인으로서는 토레스 등의 타겟형 스트라이커가 없어 비야를 십분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것이다. 비야는 1선과 2선을 넘나들 때 그 위력이 배가되는데 토레스가 있어 비야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었다면 사비나 이니에스타도 조금 더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연장 후반까지 진행된 체력전을 결정지은 것은 벤치 멤버의 역량 차이였다고 볼 수 있다. 월드컵 내내 조커로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네덜란드의 엘리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로벤의 활동량이 평소보다 많았기에 엘리아는 교체 투입된 선수답게 로벤의 체력적 부담을 덜어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돌적인 돌파를 보여주지 못했다.
반면 스페인은 유기적인 전술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비 알론소를 빼고 파브레가스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파브레가스는 위협적인 돌파에 이은 슈팅을 선보이며 교체 카드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스페인은 카시야스 골키퍼를 비롯해 전 선수가 고른 활약을 펼쳤는데 비야의 득점왕 도전을 무산시키면서까지 투입된 토레스가 최악의 부진을 보인 것이 옥의 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유독 많은 오심 논란이 일어났다. 혹자의 주장처럼 촬영 기술이 발달해 오심이 많이 눈에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뒤집으면 과학의 발전을 활용해 오심을 없앨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스포츠의 '인간적인 관행'을 유지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선사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오심 뿐만 아니라 역사 상 최초로 고지대의 아프리카에서 대회가 열렸고, 부부젤라의 소음과 공인구 자블라니의 과도한 탄성, 우승 후보국들의 조기 탈락, 클럽팀에서 피로 누적 등 온갖 악재가 넘쳤음에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현대 축구의 전술 발전을 감상할 수 있었다.

3선과 2선의 간격을 좁힌 스위스와 덴마크의 촘촘한 수비, 공격수 3명을 하프라인에 배치한 후 마이콘의 오버래핑 등을 활용해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을 선보이는 동시에 수비축구를 지향한 브라질의 실리축구, 전통적인 공격 축구를 보여준 아르헨티나와 칠레,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강한 조직력의 독일과 네덜란드, 패싱 게임의 절정을 보여준 스페인 등 그 어느 대회보다 다양한 전술이 쏟아져나왔던 대회였다.
이번 월드컵이 유럽의 승리였다고 하지만 남미 역시 5개 출전팀이 모두 16강에 진출하며 축구 대륙으로서 면모를 보였다. 다음 월드컵은 브라질에서 열리는만큼 이번 대회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번 월드컵을 그리워하며 되새기는 사이에 다음 월드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4년 후를 기대한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사진> 요하네스버그(남아공)=송석인 객원기자 song@osen.co.kr
■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이번 남아공 월드컵 대회 기간 동안 OSEN에서 해설을 맡았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하면서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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