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어떻게 보였어요?"
2010년 8월. SK 에이스 김광현(22)의 변신과 진화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매년 꾸준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류현진(23, 한화)이 이미 완성된 '괴물'이라면 김광현은 매 시즌 커가는 '성장형'이라 할 수 있다.
김광현은 11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LG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7피안타 1볼넷 8탈삼진으로 1실점해 시즌 14승에 성공했다. 팀의 5-1 완승을 이끈 김광현은 2연패 뒤 2연승을 달린 것은 물론 KIA 양현종과 함께 다승 부문 공동 2위로 올라섰다. 평균자책점은 3경기 연속 내려 2.33까지 떨어뜨렸다.

1회와 4회만 제외하고 5차례나 선두타자를 내보내며 불안했다. 그 중 6회는 박용택에게 2루타, 박경수에게 적시타를 맞고 간단하게 실점했다. 하지만 매 이닝 삼진을 잡아내는 등 고비마다 상대 타선을 범타로 유도해냈다. 총투구수는 92개였고 직구는 최고 151km였다.
김광현은 예상대로 에이스답게 승리를 챙겼다. 하지만 지난 3일 대구 삼성과의 원정경기에서 김성근 감독에게 들은 조언을 다시금 마음 속에 새기며 마운드에서 변신하고 있다. 진정한 '괴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뜻이 있는 볼을 던져라
지난 3일 김 감독은 자신의 호텔방을 찾은 김광현을 세워 놓고 1시간 반에 걸쳐 "뜻이 있는 볼을 던져라"고 강조했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김 감독은 얼굴 표정부터 피칭, 멘탈, 세세한 움직임까지 투수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들을 열거했다.
김광현은 이를 지난 6일 문학 넥센전에서 처음으로 시도해 보였고 7이닝 무실점으로 13승을 거두면서 첫 테스트를 기분좋게 통과했다. 경기 후 김광현은 "감독님이 말씀 하신 내용을 다 실천해 보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노력을 감독님도 보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 감독은 이날 김광현에 대해 "김광현이 프로가 된 후 마운드에서 보여준 매너는 오늘(6일)이 최고였다"면서 "김광현은 프로다. 투수라면 마운드에서 속 표정을 쉽게 드러내서는 안된다. 이제 차분해져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작아진 마운드에서의 행동 반경
딱 꼬집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김광현도 "저 어떻게 보였어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행동반경은 분명 작아졌고 보는 이로 하여금 '차분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 것은 확실했다.
김광현은 다이내믹한 피칭폼을 가졌다. 역동적인 킥킹과 높은 타점에서 내리 꽂는 스윙은 넓은 그라운드에 여러 명이 서 있서도 시선을 단번에 끌었다. 더불어 멀리서도 김광현의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을 만큼 큰 몸짓이 인상적이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주먹을 불끈 쥐거나 빈 스윙을 해본다든가, 마운드 흙을 차내는 행동만 봐도 김광현의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오히려 이렇듯 쉽게 흥분하고 표현하고 또 금방 풀이 죽는 김광현 자체가 또 다른 매력이었다.
하지만 지난 6일 넥센전에 이어 이날도 김광현은 잔잔했다. 미동은 있었으나 요동 치지 않았다. 다운돼 보였지만 완전히 가라앉지도 않았다.
김 감독은 김광현에게 "피칭과는 상관없이 마운드에서의 모션을 작게 하라"고 당부했다. 이는 불필요한 체력소모를 막으라는 뜻이었다. 먼 장래를 내다 본 것이었다. 김광현이 앞으로 10년 이상 마운드에서 볼을 뿌려야 하는 만큼 지금부터 불필요한 에너지량을 줄이도록 연습하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모든 것은 내 속에서 시작되고 결정되더라
마운드 반경은 작아졌지만 또 다른 깨달음이었다. 김광현은 11일 경기 후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모든 징크스를 만드는 것은 나다. 그리고 그것을 깨는 것도 결국 나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지난 6일 경기를 마치고 마운드에서의 첫 변화에 대해 "아직 좀더 있어야 봐야겠다"고 평가를 보류했던 김광현이었다. 이제는 스스로의 변화를 인정하는 모습이다.
김광현은 그동안 결과에 집착했다. 과정을 떠나 이기면 무조건 좋았다. 하지만 지면 낙담하고 실망했다. 이에 따른 표정 변화도 여실하게 드러났다. 또 주위의 평가에 일희일비했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신경이 쓰였다.
"그런 부분을 고치려 노력하고 있다"는 김광현은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다르다"면서 "예를 들어 그동안 항상 화요일 등판 때 좋지 않았다고 느꼈다. 실제로도 좋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 밸런스와 컨디션의 페이스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화요일'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무리 상대 팀이나 타자가 약해도 내 몸 상태가 좋고 그만큼 볼 컨디션이 좋으면 통하기 마련이다. 해보니까 되더라"면서 "징크스를 내가 따르려 하지 말고 상대팀이나 선수 혹은 징크스가 나를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해진 '결과'에 울고 웃는 데서 경기 내용 속에서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김광현으로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다. 2010년 여름 김광현은 미래의 큰 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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