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들과 야구팬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광주 신구장 건립이 삽만 뜨는 일만 남았다. 지난 14일 강운태 광주광역시장과 서영종 기아자동차 사장이 만나 300억 원 투자협약식을 가졌다. 정부, 광주시, KIA가 분담하는 1000억 원 재원 마련에 성공하면서 공사에 필요한 중요한 절차는 마쳤다. 내년 5월 설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건립공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광주 신구장 건립은 거의 10년의 꿈이었다. 지난 65년 건립된 현 무등야구장이 낙후돼 신구장의 건립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2002년 광주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광태 후보자가 공약사업으로 신구장 건립을 내세웠다. 그러나 당시 700억 원에 이르는 재원 가운데 국비 뿐만 아니라 시비 조달이 어려워 번번히 건립은 좌절됐다. 이후로 여러차례 공약 단골메뉴로 나왔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야구장의 '야'자만 나와도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2008년 박광태 시장은 민선 4기 하반기 공약사업으로 또 다시 야구장 건립을 공언했다. 이것도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되더니 2009년들어 갑자기 돔구장 건설론을 내세워 광주 지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포스코 건설이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돔구장을 지어주는 빅딜이었다.

그러나 돔구장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놓고 반대 여론이 거셌다. 도심 공동화와 미분양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특혜시비마저 일어났다. 여론의 역풍속에 포스코가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돔구장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 더욱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선이 유력했던 강운태 후보의 반대로 돔구장 사업은 물거품이 됐다.
공교롭게도 돔구장 논란과 함께 개방형 신구장 건설론은 이제 메가톤급 공약사업으로 탄력을 받게 됐고 거의 불가능으로 여겨진 야구장 건립과정이 현실화 된다. 각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신구장 시민추진위원회는 돔구장 대신 2만5000석 규모의 개방형 구장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건립추진 과정을 살펴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야구장 부지와 재원 마련 과정이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첫 번째는 후보지 결정문제였다. 광주 무등경기장 부지와 5.18 민주화 운동 국립묘지의 맞교환이 토대를 마련했다. 원래 무등경기장 부지는 국가소유였다. 반면 5.18 국립묘지의 부지는 광주시의 소유였다. 지난 2009년 국가와 광주시가 서로 두 땅을 맞교환하면서 무등경기장이 광주시 소유가 됐다.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금액이 소요된다. 소유주들을 상대로 매입을 하더라도 투기세력들이 달려들면 시간이 소요될 수 없다. 한때 후보로 떠오른 평동과 대촌 등 후보지는 시 소유 땅이 아니어서 천문학적인 매입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등경기장이라는 후보지가 자연스럽게 생기면서 물꼬가 트게 됐다.
▲관련법 개정…토토금고를 열다
또 하나의 재원마련에 필요한 관련법의 개정이었다. 지자체가 경기장을 건설하면 국가는 법적으로 부담 책임이 없다. 자치시대이기 때문에 해당 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해야 된다는게 중앙정부의 기본 방침이었다. 때문에 지자체가 예산에서 재원을 조달하는 도리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차체 예산이 빠듯해 수 백원을 빼낼 형편이 아니다.
처음부터 문화관광부는 광역특별회계에 무게를 두었다. 이는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별도로 편성해 일괄적으로 16개 단체에게 지급하는 예산이다. 문광부는 이 돈을 사용토록 권고했고 법률적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지자체로선 다리와 도로건설 등 긴급한 현안사업에 필요한 예산이어서 전용이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 9월 국민체육진흥법(대통령령)이 개정됐다. 개정된 주요 내용에 따르면 20년 이상 노후된 체육시설은 개·보수에 한해 토토 이익금 5% 가운데 30%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광주시는 이 조항을 적절하게 적용했다. 만일 현 축구장을 개보수한다면 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문광부는 신청 당시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으나 검토 결과 법적인 테두리안에서 공사한다면 문제가 없는쪽으로 입장을 선회한다.
이후 문광부는 대구, 대전, 광주의 체육지원 실무자와 논의를 거쳐 광주 신구장에 토토자금을 지원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300억원의 토토 이익금 지원이 성사됐고 최대의 걸림돌인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구와 대전은 새로운 부지에 건설을 추진해 개보수가 아닌 신축의 개념이다. 때문에 향후 신축시에도 토토재원 지원이 가능하도록 법개정이 필요하다.
▲야구장을 만든 사람들
야구장 건립을 이끈 공로자들도 많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시장후보로 나선 강운태 후보는 중요 공약사업으로 신구장 건설을 내세우고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강 시장은 당선되자마자 적극 추진해 정부(토토 자금 300억원)와 KIA 구단(30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시민추진위원회를 통해 개방형 구장으로 결정하고 부지결정(무등경기장 종합경기장)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부치는 등 남다른 추진력을 과시했다.
또한 KBO의 측면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유영구 총재는 박광태 시장과 두 차례 회동을 통해 구장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른바 정부-지자체-야구단이 건립 비용을 분담하는 '3-3-3' 분담론을 만들었다. 아울러 대학스포츠연맹과 접촉을 통해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야구가 시범경기로 채택되도록 막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든 셈이었다.
이상국 특보는 유총재의 추진력으로 밀어부친 인물이다. 해태단장 시절 맺은 광주의 인맥을 통해 구장 건설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국회의원과 시 체육회를 설득을 통해 지원을 부탁했다. 아울러 돔구장 사업이 자칫하면 미궁에 빠질 것으로 판단하고 반대 여론을 이끌어냈다. 조희준 KBO TF 부장도 실무 담당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문광부, 광주시, 기획재정부, KIA 구단 인사들과 수시로 접촉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고 구장 건설로 가는 길을 닦았다. 신구장의 모델인 히로시마 마즈다 줌줌스타디움의 견학을 추진하기도 했다.
▲KIA 그룹의 전향적인 결단
KIA 그룹에서도 큰 결정을 했다. KIA 구단의 몫 300억 원 투자는 유영구 총재가 서영종 대표를 투자를 권유하면서 해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영종 사장이 결단을 내렸고 김조호 단장은 투자 이득을 면밀히 검토했다. 25년 임대 기간 안에 투자비용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는 내부 결론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김 단장은 관계자들과 전방위적인 만남을 통해 투자를 이끌어냈다.
사실 일반 회사조직이 300억 원의 거액을 선뜻 투자하기는 어렵다. 야구단은 300억 원이지만 금융비용, 유지비용, 인건비 등까지 합하면 대략 7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저할 수도 있지만 KIA 그룹은 전향적으로 투자를 결정했다. 야구단의 수입증대와 그룹의 브랜드 가치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KIA 구단은 이제 전용구장 뿐만 아니라 함평 전용훈련장까지 함께 보유해 명문구단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지난 2005년 말 일본의 히로시마도 광주와 비슷한 처지였다. 당시 히로시마 구단은 90억 엔의 건립비 가운데 40억 엔을 먼저 지불하면서 신구장 건립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구단은 영구임대권과 구장 명칭권을 보유했다. 새로운 구장을 마련한 히로시마는 관중이 50% 이상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각종 구단 수입도 불어나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야구장 건설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어떤 야구장을 짓느냐에 달려있다. 선수들이 최적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야구장을 지어야 한다. 관중들은 편안한 상태에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완벽한 시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좌석 크기, 좌석간 넓이가 중요하다. 아울러 히로시마 구장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광주가 표방하는 문화수도에 걸맞는 이미지도 만들어야 한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주차장과 소음문제이다. 수 천대의 주차장을 야구장내에 건설할 수는 없다. 한꺼번에 차들이 몰릴 경우 극심한 교통제증이 예상된다. 광주시측은 야구장 인근 주택지를 매입해 주차면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도로망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인근 지역 소음 피해도 예상된다. 2만5000석의 야구장 규모를 감안한다면 소음은 심각할 수 있다. 인근 아파트 단지와 주택단지에서 민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계과정에서 소음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고 인근 주민들과 설득과 소통작업이 필요하다. 향후 확대 개편되는 시민추진위원회에서 정밀한 기본계획을 짜야 된다.
조희준 부장은 "이번 광주 야구장 건립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정부와 광주광역시, KIA그롭, KBO가 모두 합심해서 이루어냈다. 광주 야구장의 건설과정은 하나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전과 대구 구장 건설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다. 이제 시작인 만큼 앞으로 좋은 야구장을 짓도록 야구팬들과 광주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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