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 류이슬 이대 총학생회장
“적립금 7389억원 등록금 인상 부당”
채플 거부에 학교 측 이례적인 대화

절반의 성공…“우리 힘 처음 알았다”
[이브닝신문/OSEN=김미경 기자] 88만원세대는 요즘을 사는 청춘들의 이음동의어다. 세대 간 무한경쟁에 놓여 있으면서도 경제구조상 비정규직에 머물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20대를 지칭하는 말이 됐다. 기성세대들이 쳐놓은 바리케이드에 젊은 세대들이 구속당한다는 느낌이다. 올봄 대학가가 심상치 않다. 곳곳에 투쟁의 기운이 감돈다. 일부 대학에서는 그동안 없었던 학생총회가 열리고 꺼져버린 듯했던 저항과 연대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몇몇 대학교 현수막에서는 춘투(春鬪)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4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개교 125년만에 처음으로 ‘채플거부운동’이 벌어졌다. 이대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이화, 다른 이대의 모습이 펼쳐지는 셈이다. ‘채플거부’라는 카드를 꺼내든 학생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지난 25일 류이슬(24·정치외교학교 4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교내 학생문화관에서 만났다.
▲개교 125년만에 채플거부운동
4일 오전 10시께, 이화여대 대강당 앞 계단에서 채플 수업 진행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각 대학에서는 살인적 등록금을 인하하라는 학생들의 시위가 날마다 계속되던 때였다. 이화여대 학생들도 이날부터 일주일간 필수 과목인 채플(기독교 학교의 예배모임) 수업을 거부하며 등록금 인상 철회 등을 요구했다.
앞서 이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24일 △등록금 인상철회 △장학금 확충 △자치공간 확충 △수업권 문제해결 △학점 적립제 도입 등 5대 요구안을 제시했지만 학교 측은 ‘앞으로 협의해 나가자’는 말뿐이었다. 이에 학생들은 31일 5년만에 학생총회를 열고 요구안 관철을 위해 채플거부 운동을 공식 결의했다. 총회 참석 인원은 정족수인 1557명(재학생의 10분의 1 참석)을 훌쩍 뛰어넘는 2001명. 채플 거부 운동을 찬성한 학생 수도 1300여명에 달했다. 그리고 이날 채플수업거부운동이 공식 선언됐다.
▲배경_학생 요구에 귀 막은 학교
류이슬 이대 총학생회장은 “그동안 수차례 학교 측에 등록금 인상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채플거부 운동을 대대적으로 하게 됐다”며 그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채플거부운동 첫날인 4일에는 400여명의 학생이 대강당 앞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중간에 비가 와 집회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많은 학생들이 동참해 등록금 인하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독교 학교인 이대는 교칙상 채플수업을 ‘훈련학점’으로 규정해 학부생은 8학기동안 수강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
이화여대는 올해 재학생 등록금을 동결했지만 신입생 등록금은 2.5% 인상했다. 약대는 9% 가량 올랐다. 과·단대별 등록금 차등 책정도 지적되고 있다. 학교 측은 등록금을 더 내는 만큼 혜택을 받게 된다고 하지만 학생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혜택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학이 적립금을 풀고 등록금 세부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학생들이 등록금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와 학생은 절대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등록금의존율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는 “대학 운영비용 가운데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인 등록금의존율의 경우 이화여대는 현재 54%로 서울 시내 다른 사립대학에 비해 낮은 편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화여대 적립금이 7389억원으로 전국 1위인만큼 신입생 등록금 인상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진행_대학연대 투쟁으로
서울 시내 각 대학캠퍼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의 강도는 확실히 예년과는 달랐다. 과거 총학만이 주도했던 분위기는 아니었다. 학기가 시작되자 이대는 물론 고려대, 서강대, 경희대, 우석대 등을 비롯해 전국 각 대학에서 등록금문제를 이슈로 수년만에 학생총회가 성사됐다. 재적 학생의 7분 1인 대체로 1000명 이상이 모여야 총회가 성사되는 만큼 이번 학생들의 성토는 뜨거웠다. 여기에다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공약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 등 각 대학생들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학교 본관 앞에서 등록금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등록금 동결을 위한 투쟁에 접어든 것. 이번 투쟁은 대학생들뿐 아니라 시민단체 및 각 정당들의 선거를 앞두고 정치투쟁으로까지 발전되는 모습이다. 이번 연대의 첫 희망의 끈은 경희대가 끊었다. 이미 3% 인상된 등록금을 다시 동결하기로 한 것은 전국 대학 가운데 경희대가 처음이었다.
“변화에 대해 자각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투쟁 방식의 자리가 학생총회였고 이제 더 이상 기성세대와 정치권에 기대할 것이 없었다. 학생들의 분노가 인내심의 한계점을 넘어선 셈이다.”
▲결과_인상분 절반 장학금 책정
채플거부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요구안에 대해 묵묵부답이던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에 답변을 내놓기 시작한 건 채플거부 이후였다. 젊은이들의 빛나는 집단 지성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언론의 관심과 학생들의 거부 운동에 학교 측이 실제로 크게 압박을 느낀 듯하다. 지난 15일 비상전학대회 직전 학교의 최종답변을 받아냈다.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지만 1년 인상분 총액 8억원의 1/2을 장학금으로 확충하겠다는 대답을 얻었다. 학교 측이 학생들과 대화 자세로 나온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투쟁의 중심에 있었지만 학생들의 힘이 이렇게 큰 파장으로 불러일으킬지 미처 몰랐다”고 강조했다.
▲투명한 대학 토론의 장 꿈꾸다
학생들이 바라는 대학은 무엇일까.
류 회장은 “대학교육이 일종의 서비스 상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일부 대학은 효율성과 성과를 앞세워 마치 기업처럼 운영되고 있다”며 “스펙 쌓기의 무한경쟁, 패자부활전 없는 낙오의 위기로 학생을 몰아가는 학교가 아니라 토론이 있는 대학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등록금 운영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대화와 답변이 오고가는 소통의 공간이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돈과 명예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 땅의 젊은이들은 그것들로부터 정녕 자유롭기를, 또 서로의 정직한 선생이 되길 바라본다. 봄날 반짝하는 ‘개나리 투쟁’이 아니다. 대학과 학생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kmk@ieve.kr /osenlife@osen.co.kr
<사진> 인터뷰한 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바빴다. 중간고사 기간이 맞물렸고 전국 대학교마다 등록금 투쟁에 열을 올리는 시점이었다. 인터뷰 응답을 기다리던 중 학교 측의 최종답변이 나왔고 변화에 대해 자각하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청춘의 힘은 세상을 바꿀만큼 셌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 자라나는 청춘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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