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애니 만든 게 성공 열쇠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5.16 18: 36

- ‘뽀통령’ 뽀로로의 아빠 아이코닉스 대표 최종일
직장 10년 다니다 IMF 탓 창업…첫 작품 실패
두 번째 ‘뽀로로’ 언론 홍보도 안 했는데 ‘대박’

파생상품만 1300종…악영향 주는 사업은 ‘No’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드디어 대통령에 등극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된 것이다. 만으로 7살, 우리나이로 9살된 펭귄. 추운 극지방에서 북극곰 포비, 여우 에디, 공룡 크롱을 비롯해 다양한 동물 친구들과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며 산다. 명랑하고 돌발적인 성격이지만 나이답지 않게 꽤나 의젓한 그의 이름은 ‘뽀로로’다. 아이들의 대통령 ‘뽀통령’ 뽀로로의 인기가 거세다. 탄생 이후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언론을 상대로 한 홍보를 한 적이 없다는 뽀로로는 발걸음만 떼도 수많은 매체에서 앞다퉈 행보를 주시하는 유명인사다. 그렇다면 ‘뽀통령’을 만들어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지난 13일 뽀로로의 ‘아빠’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최종일(46) 대표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처음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직접 했다는 그는 뽀로로의 아빠라는 명성에 걸맞은 부드러운 인상에 깍듯한 예의를 갖춘 신사였다.
 
어른들의 세계를 움직이는 ‘뽀통령’
뽀로로의 파급력은 어른들의 세계를 좌우한다. 최근 대중문화평론가 진중권은 뽀로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눈길을 끌었고, 한 TV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은 세 살배기 아들을 뽀로로에게 뺏긴 섭섭함을 털어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젊은 엄마아빠들의 격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얼마 전에는 ‘연등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내막은 이렇다. 조계종에선 지난 ‘부처님 오신 날’ 연등행사에 뽀로로등을 출현시키려 했다. 그런데 중요한 절차가 빠져 있었다. 사전에 허락을 구하지 않았던 것. 이에 뽀로로 공동제작사는 사용 금지통보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뽀로로등’에 대한 아쉬움을 호소하는 여론이 일자 회사 측은 ‘앞으로는 동의를 구할 것’을 조건으로 금지요청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등행사에선 뽀로로등을 볼 수 없었다. 그새 조계종에서 등을 폐기해버린 것이다. 최종일 대표는 이에 대해 “취지가 좋았기에 충분히 허락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며 아쉬움을 전한다. 하지만 과정도 중요했다는 것이다.
 
“반응이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2003년 EBS 방송을 타면서 뽀로로는 세상에 출생신고를 했다. 산고가 만만치 않았기에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그래서 뽀로로를 향한 열광이 아직도 놀랍다고 최 대표는 말문을 연다. “상업적 목적으로 기획된 거라 반응이 이 정도로 뜨거울지는 몰랐다.” 인기비결을 묻자 “콘텐츠 자체의 힘이 그 첫 요소였다”고 대답한다. 유아들이 싫증을 내지 않고 집중할 만한 콘텐츠 창출이 주효했다는 것. 미디어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EBS 방송전파를 타지 않았다면 지금의 뽀로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여기에 효율적인 업무분장이 바탕이 된 팀워크도 크게 도움이 됐다. 뽀로로 시리즈는 주간사인 아이코닉스와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인 오콘, 미디어와 온라인 담당의 EBS와 SK브로드밴드 등 4개 사가 공동제작한다.
 
첫 작품의 실패를 딛고 탄생
최 대표는 광고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1991년 금강기획에 입사했고 2001년까지 10년을 꽉 채웠다. 애니메이션에 뛰어든 것도 그 시절. 당시 신규사업으로 애니메이션팀이 꾸려졌고 최 대표는 기획서를 올려서 팀원으로 뽑혔다. 그러던 것이 1997년 IMF 영향으로 팀이 해체됐고, 2001년 회사를 나온 최 대표는 아이코닉스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사업을 에 뛰어들었다.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첫 작품 ‘수호요정 미셸’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어린왕자를 모티브로 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었다. ‘뽀롱뽀롱 뽀로로’는 시행착오를 겪을 만큼 겪고 탄생한 최 대표의 두 번째 작품이다.
 
쪼르르…포르르…뽀르르…뽀로로
뽀로로는 펭귄을 캐릭터화 한 것이다. 최 대표는 이에 대해 “유아들이 좋아할 만한 동물, 기왕이면 이전에 나오지 않았던 것을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뽀로로’가 되었을까. 어원은 ‘쪼르르’에 있었다. 당시 최 대표의 6살 3살 아이들이 집 안에서 쪼르르 왔다갔다하던 모습에서 착안했다는 거다. 여기에 아장아장 걷는 자세에 둥글둥글한 외모, 또 펭귄과 걸맞은 이름이 없을까 고민을 거듭했고 포르르, 뽀르르를 거쳐 마침내 뽀로로 펭귄(Pororo Penguin)이 만들어졌다. 애니메이션에는 동물과 이름의 이니셜을 맞추는 사례가 적잖다. 미키 마우스(Mickey Mouse), 도널드 덕(Donald Duck) 같은 식이다.
 
‘뽀로로 테마파크’까지 1300여 상품
현재 파생상품 종류만 1300여종에 이른다. 연간 로열티는 120억원. 여기서 산출한 시장규모는 5000억원을 넘긴다. 애니메이션으로 첫선을 보인 뽀로로는 뮤지컬, 게임, DVD, 책, 완구, 식료품 등 문화산업 전 방위에 걸쳐 있으며, 지난달 23일 동탄에 에듀테인먼트 공간을 갖춘 ‘뽀로로 테마파크’까지 문을 열었다. “맨땅에 헤딩했다”고 술회하듯 최 대표가 직접 나서 뚫은 해외수출망도 벌써 110개국에 달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뽀통령의 지배력 안에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싸워야 할 것은 불법복제. 허락받지 않은 뽀로로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도처에 깔려 있다. 하물며 바로 회사 앞에서 불법 DVD를 놓고 가판을 벌이고 있는 웃지 못할 장면까지 목도했다는 최 대표는 한국 저작권 보호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정부나 보호기관의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젓가락질하는 뽀로로 볼 수 있을까
업계에는 ‘뽀로로를 끼워 넣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최 대표에겐 원칙이 있다. “유아에 부적절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것. 무기류의 완구나 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상품에서 뽀로로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뽀로로에게 한식을 먹여라”는 네티즌의 요구에 대해 최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맥락은 이해하나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한다. 아무리 한국이어도 특정지역을 강조하다보면 이질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단계부터 세계를 겨냥한 뽀로로는 세계 문화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 모토였다. 다만 “한식을 장려하는 특별판은 만들 수 있겠다”며 젓가락질하는 뽀로로를 기대했던 네티즌을 위로한다.
 
막강 뽀로로에게도 경쟁자는 있다
‘뽀롱뽀롱 뽀로로’는 3기까지 방영이 끝났다. 5분짜리 156편이 세계 어린이들을 만났다. 현재는 4기를 제작 중이다. 뽀로로에게도 과연 경쟁자가 있을까. “모든 캐릭터가 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최 대표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타도 뽀로로’를 기치로 세우고 있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발전은 결국 건전한 경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란 판단엔 변함이 없단다. “긴장을 놓는 순간 생명력이 다할 수도 있다.” 뽀로로를 지키려는 아빠의 절실한 각오로 들렸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사진> “국내 애니메이션 환경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최종일 대표는 뽀로로의 성공 이유를 “내가 만들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수용자가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수없이 밀려드는 외래산 캐릭터에 맞서는 국내산 캐릭터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절대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정은진 기자 jj@ie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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