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시즌 중 6번의 플레이오프 진출과 세 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었던 감독. 그리고 7시즌 모두 5할 이상의 페넌트레이스 승률을 자랑했던 지도자. 그러나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구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사퇴를 결정한 김경문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의 선택이다.
김 전 감독은 지난 13일 올시즌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결국 두산은 김광수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해 남은 시즌을 김 대행 체제로 꾸려나가게 되었다. 2003년 10월 10일 두산의 지휘봉을 잡은 김 전 감독은 두산 수장으로서 8시즌 통산 960경기 512승(역대 8위) 16무 432패의 성적표를 남겼다.

아쉽게도 김 전 감독 또한 아쉬운 끝맺음을 거쳤던 전임 감독들의 전철을 밟고 말았다. OB 시절이던 1991년 이재우 감독의 뒤를 이어 대행을 맡은 뒤 이듬해 사령탑으로 취임했던 윤동균 전 감독(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위원장)은 1994년 9월 4일 군산 쌍방울 전 이후 체벌에 반기를 든 선수들의 집단 이탈로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뒤를 이은 김인식 전 감독(현 KBO 기술위원장)은 부임 첫 해인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어 2001년에도 페넌트레이스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패권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2002년 5위에 이어 2003시즌 7위에 그치는 과정에서 후임 감독 선임과 관련한 이야기로 인해 용퇴를 결정했다. 구단 역사 상 세 번 중 두 번의 우승을 이끈 감독의 뒤안길치고는 처연했다.
▲ 최약체 평가팀을 PS 진출 단골팀으로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김 전 감독이 그 길을 밟고 말았다. 김인식 감독 재임 당시 선동렬 감독 영입 작전이 코칭스태프 구성 건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 뒤 롯데 수석코치직 대신 두산 지휘봉을 잡은 김 전 감독은 그동안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지 않고 소외되어있던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며 예상 외의 성과를 일궜다.
김 전 감독 부임 초기 두산은 잇단 스타들의 이적으로 인해 선수층이 피폐했던 상황. 지휘봉을 잡자마자 주전 우익수 심재학을 KIA로 트레이드했던 김 전 감독은 LG서 방출된 외야수 최경환, 삼성 방출생 사이드암 정성훈, KIA 출신 외야수 김창희 등을 예년보다 중용하며 2004시즌 3위에 올랐다.
당시 17승으로 공동 다승왕이 된 좌완 게리 레스와 최다안타왕(165안타) 홍성흔(롯데)의 활약도 있었으나 최약체로 꼽혔던 팀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파란을 일으킨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을 믿고 기용한 김 전 감독의 리더십도 재조명 되었다.
병풍 직격탄을 맞고도 2005년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성공했던 김 전 감독. 2006년 4강 경쟁 끝 5위에 이어 2007, 2008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점차 김 전 감독과 두산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높아졌다. 최약체 전력에서 젊은 선수들이 제 실력을 떨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그 시기 고교 유망주들 중 상당수가 "연고팀이 아니라면 두산 지명을 받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 더없이 아쉽던 구단의 엇갈린 투자
2007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전문가들은 두산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강호' 중 한 팀으로 분류했다. 여기에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쾌거가 겹치며 김 전 감독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는 더욱 커졌다. 2006시즌 후 에이스 박명환을 LG에 뺏긴 뒤 구단의 투자 또한 과거에 비해 조금 더 과감해졌다.
2008년 1월 메이저리거 김선우를 15억원에 데려온 것은 그 시작이었다. 대만리그를 거쳐 4년 만에 두산으로 돌아온 좌완 레스도 있었지만 2007년 22승을 올린 다니엘 리오스(전 야쿠르트)의 진짜 대체자로 기대를 모았던 선수는 김선우였다. 제구력을 갖춘 파워피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김선우는 첫 해 어깨 및 무릎 부상 등이 겹치며 6승 7패 평균자책점 4.25로 아쉬움을 남겼다. 2009시즌에도 그는 11승(10패)을 거두기는 했지만 평균자책점이 5.11에 달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김선우가 진짜 에이스 본색을 보여준 것은 완급조절능력을 발휘한 지난 시즌부터였다.

2009년 외국인 선수 인선은 더없이 아쉬웠다. 시즌 개막 직전 허리 부상을 당한 우완 맷 랜들을 퇴출한 두산은 4월 하순 더블 A 경험이 최대치였던 좌완 후안 세데뇨를 영입했다. 6월에는 SK에서 웨이버 공시된 크리스 니코스키를 데려왔다. 다른 팀에 비해 밀리는 인상이 짙은 카드였다.
예상은 안 좋은 쪽으로 맞아 떨어졌다. 세데뇨와 니코스키가 두산을 위해 올린 승수는 도합 8승(세데뇨 4승, 니코스키 4승)에 그쳤다. 특히 세데뇨의 영입을 놓고 야구인들은 '화수분 두산은 외국인 선수도 키워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는 찬사가 아니라 일종의 비아냥과도 같았다.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2009년 켈빈 히메네스(라쿠텐), 더스틴 니퍼트 같은 1선발이 있었다면 두산의 최종 성적은 좀 더 높았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신인 지명에 있어 두산은 어깨를 활짝 펼 수 있었다. 1차 지명이 있던 시절 두산은 휘문고 김명제(2005년, 계약금 6억), 장충고 이용찬(계약금 4억5000만원), 서울고 임태훈(이상 2007년, 계약금 4억2000만원)을 입단시켰고 2009년 덕수고 성영훈(계약금 5억5000만원)에게 두산 유니폼을 입혔다. 2005년 2차 1순위 신일고 서동환(계약금 5억원)도 있다. 이들은 모두 당시 고교 무대를 호령했던 최고 유망 투수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현재 한 시즌 10승 이상이 보장된 선발 영건 에이스로 자라난 이는 없다. 그나마 이용찬이 마무리로 51세이브를 거둔 뒤 선발로 가능성을 높이고 있지만 그 뿐이다. 김명제는 음주 교통사고로 선수생활 재개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좋은 공을 지닌 서동환은 아직 제구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임태훈은 팀 사정 상 계투로 출격하다 개인사로 전열 이탈했다. 성영훈은 팔꿈치 수술 후 공익근무 중이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유망주 곳간의 현실은 일단 매섭고 춥다. 신고 선수 출신 손시헌, 김현수가 주전을 넘어 국가대표로 성장했으나 높은 지명을 받은 투수들 중 선발로 히트 상품이 적다는 점은 단순한 감독의 능력만이 아닌 유망 선수 본인의 노력과 마인드 컨트롤 여부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2011시즌, 감독의 짙은 한숨
계약 마지막해였던 만큼 김 전 감독은 비시즌서부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현역 메이저리거였던 니퍼트를 영입한 이후 메이저리그 통산 73승의 좌완 오달리스 페레스의 테스트가 예정되기도 했다. 당시 김 전 감독은 "영상을 보았을 때 좌우 제구가 좋아 분명 승산이 있었다. 물론 직접 봐야겠지만"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페레스는 개인사를 이유로 테스트 현장이던 일본 오이타현 벳푸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후 차일피일 합류 일정을 미루던 페레스에 대해 김 전 감독은 "그런 선수라면 우리 팀에 필요없다"라며 딱 잘라 말한 뒤 라몬 라미레즈를 새 외국인 투수로 결정했다.
안타깝게도 라미레즈는 어깨 근력 저하로 인해 예상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출국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뒤를 이은 페르난도 니에베는 2패 평균자책점 9.51(14일 현재)로 다급한 김 전 감독의 목을 더욱 조였다. 국내 무대서 직구 최고 154km까지 던질 정도로 구위는 나쁘지 않았으나 실제 결정구 옵션이 많지 않았던 페르난도를 계투로 쓰고자 했던 김 전 감독은 씁쓸한 한 마디를 던졌다.
"선발로 안 되니 계투로 써 볼까 생각했다.(실제로 페르난도는 5월 22일 대구 삼성전 계투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선수 본인이 계투를 맡는 데 대해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더라. 옵션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에 중용하겠다는 마음이 사라졌다".
이후 김 전 감독은 이용찬 외에도 홍상삼, 서동환 등을 젊은 선발 요원으로 기용하고자 하는 뜻을 밝혔다. 그와 함께 김 전 감독은 "원래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씁쓸한 한 마디를 남겼다.
사퇴가 결정된 현재 김 전 감독의 이 이야기는 회한의 한숨이 되고 말았다. 2007시즌 김 전 감독은 5선발 후보였던 신인 임태훈을 전천후 계투로 활용했고 지난해 뒤늦게야 임시 선발로 뛴 임태훈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던 바 있다.
5월 이후 극심한 불균형을 보인 타선에 대해 김 전 감독은 "아픈 선수도 많고. 되도록이면 정말 열심히 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지만 뜻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말수도 줄이고 열정적인 움직임으로 전지훈련지를 달궜던 고영민, 이원석 등은 현재 2군에 있다.
젊은 프랜차이즈 선발 유망주가 자라나지 못했고 열정에 감화되어 기회를 부여한 선수들은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매년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다 단 한 번의 추락에 감독직을 내려놓은 김 전 감독은 결국 쓴웃음과 한숨을 남긴 채 그라운드를 뒤로하고 말았다.
farinelli@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