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백지 같은 이와 특유의 분위기로 상대를 압도하는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는 사람.
진구라는 배우를 만나기 전만 해도 분명 그는 후자에 속할 거라 생각했다. 영화 ‘마더’에서의 동네 건달, ‘트럭’의 사이코패스, ‘비열한 거리’와 ‘달콤한 인생’ 속 조폭 등 그가 연기한 인물들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리라.
7월의 어느 날,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인근에서 배우 진구를 만났다. 소름끼치는 눈빛을 떠올리고 갔는데 그곳엔 긍정 에너지로 똘똘 뭉친 한 젊은이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뮤지컬 첫 도전...실제 성격과 비슷해”
진구는 오는 8월 2일부터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 캐스팅돼 뮤지컬 배우로 첫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연기로 스크린을 종횡 무진한 그는 '아가씨와 건달들'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네이슨 역에 낙점됐다. 지금껏 진구가 보여줬던 이미지와 반전되는 의외의 선택이다.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연기 경력에 해가 될 수도 있어서 조바심 내진 않았죠. 1년 정도 보컬, 재즈 댄스 등을 연습했는데 갑자기 ‘아가씨와 건달들’ 제의가 들어왔어요. 많은 고민 끝에 이지나 연출가의 연출력을 믿기로 했지요.”
‘아가씨와 건달들’ 속 네이슨은 인생 자체가 내기인 베테랑 승부사로 약혼녀 아들레이드의 등살을 피해 도망 다니고 경찰과 갱단에 쫓기는 좌충우돌 사고뭉치다. 빠른 잔머리와 두둑한 배짱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네이슨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동안 무겁고 어둡고 마초적인 인물들을 많이 연기했는데 실제 성격이 그러면 민폐죠.(웃음) 잘 웃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해요. 뮤지컬 배우 이율 씨와 공동 캐스팅인데 영화 연기 같은 내추럴함을 많이 강조하려고 합니다.”
뮤지컬에 첫 도전하는 만큼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에 임하고 있다. “대학에 다니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노래, 안무 등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을 성실하게 소화하는 중이다.
“삼 개월 넘게 하고 있는데 매일 연습하는 게 달라져요. 스케줄대로 하다 보니 마치 대학 다니는 느낌이죠. 한 건물 안에서 이곳저곳 장소를 옮기며 연습 중인데 재밌어요. 확실히 뮤지컬 노래는 발성부터 다르더군요.”
진구의 상대역인 아들레이드에는 옥주현과 김영주가 더블 캐스팅 됐다. 두 사람 모두 뮤지컬계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베테랑이다.
“부담을 느끼기보다 많이 배우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두 사람 모두 제게 많이 맞춰주려고 해주셔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옥주현 씨는 되게 착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을 줄 아시더라고요. 그래서 전혀 불편한 게 없어요. 김영주 씨도 그 정도면 텃세가 있을 수도 있는데 굉장히 친절해요.”

“‘올인’ 인기 거품에 안하무인이었다”
그간 진구는 수많은 영화를 통해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함께 했다. ‘마더’의 김혜자를 비롯해 ‘비열한 거리’ 조인성, ‘혈투’ 박희순, 고창석, ‘모비딕’의 황정민, 김상호 등과 호흡을 맞췄다.
“개개인의 특징이 있어서 누가 가장 좋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김혜자 선배님의 경우 국민 어머니다운 포스가 있으세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더군요. 황정민 선배나 박희순 선배는 현장을 리드하는 선배 마인드가 있어요. 그렇다고 카리스마 있게 명령하거나 욕설을 하진 않는데 따를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가 있죠. 원빈 씨나 인성 씨는 잘생겼고 멋있어요.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 영광이에요.”
지난 2003년 드라마 ‘올인’의 이병헌 아역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그는 거의 쉼 없이 일을 해왔다. ‘참 착실한 배우인 것 같다’고 했더니 ‘복 받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9년 간 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인데 돈도 주고 박수도 쳐주고 복 받은 거라 생각해요. 영화를 촬영하다 보면 지방에 가거나 해외 나갈 일이 생기는데 이걸 여행이라 생각하면 되게 좋아요. 마음먹기의 차이인 것 같아요.”
‘올인’이란 작품으로 소위 반짝 스타가 됐던 진구는 인기의 거품이 얼마나 빨리 가라앉는지 경험한 후 진짜 배우가 됐다.
“‘올인’ 당시 전 안하무인이었어요. 이 바닥 선후배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건방이 하늘을 찔렀죠. 근데 방송 끝난 지 한 달 만에 거품이 없어지더라고요. 맥주 거품은 천천히 라도 없어지는데 속이 상했죠. 그 때 만약 (인기가) 한 달 만에 떨어지지 않았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거예요.”
배우 9년 차인 그에게 연기는 어느덧 삶의 일부가 됐다. 일상생활에서도 연기를 하는 건지 그냥 삶을 사는 건지 모를 정도로 뻔뻔해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제껏 다 저였어요. 예를 들면 네이슨을 연기하면서는 그에 맞는 모습을 꺼내서 동화시키고, ‘올인’은 고등학교 시절 나를 다시 꺼내서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어떤 역할을 하든지 내면의 성격을 꺼내서 연기했죠. 다양한 면들이 있는데 카메라 앞에서 그런 모습 꺼낼 때는 희열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계속 이렇게만 했으면 좋겠다’ 삶이 다할 때까지 배우로 남고 싶다는 진구의 소망이다.
rosecut@osen.co.kr
<사진>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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