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가수가 갑작스레 ‘바닥’을 치는 것은 ‘순간’이다. ‘아차’ 하는 순간,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을 하기도 전에 세상은 해명을 요구하고 꼬리를 무는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재치있는 입담으로 예능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발표하는 신곡마다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던 타블로는 지난해 4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바닥’을 쳤다. 실로 순식간에 그는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고, 연일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학력위조설은 그의 학력(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이 진실로 판명난 순간,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시들’해졌다.
생애 처음 ‘아빠’가 돼서 이제 막 철이 들기 시작했던 이 유명 뮤지션은 새 앨범 ‘열꽃’을 들고 다시 대중 앞에 서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반응은 뜨겁다. 가사 한줄, 한줄이 시를 연상케 해 큰 관심을 받았고, ‘열꽃’은 19일자 미국 빌보드 월드앨범차트 2(파트2), 5위(파트1)에 올랐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되는 건 아니다. 새로 둥지를 튼 서울 마포구 합정동 YG사옥에서 최근 만난 그는, 여자 옷이 잘 맞을 만큼 상당히 마른 모습이었다. 간간히 웃고 농담도 했지만, “예전의 나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년 반만의 언론 인터뷰다.
이렇게 다시 기자들을 만나서 음악 얘기도 하고, 웃으면서 뭔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어찌보면 되게 행복한 일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텐데, 왜 이제야 나섰나. 당시 논란이 한창이었을 때, 타블로의 대처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때는 워낙 오보가 많았기 때문에(웃음) 그 수 백건의 기사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 일이 표면 위로 처음 올라왔을 때, 이틀 만에 단독 인터뷰도 했었다. 졸업 증명서와 스탠포드 대학교 교수들이 보내온 편지도 공개했었다. 내 딴에는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줬는데, 하루만에 묻히더라.
하루 정도 내 입장이 나가다가 다음 날부터 다시 의혹이 제기되는 거다. 원점이 되더라. 솔직한 심정으로 그때는 다 소용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막 딸 아이가 태어났는데 가족들의 곁을 지켜주는 게 중요하지, 인터넷, 미디어를 통한 분쟁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황을 잘 몰랐던 건가.
인터넷에 그런 일이 있다는 것도 산후조리원에서 처음 알았다. 사실 그 전에 와이프가 임신한 기간 동안은 앨범 활동에도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만큼 와이프에게 집중했었다. 내가 다른 걸 하면, 와이프가 혼자 있어야 하니까. 인터넷을 처음 보고 ‘이게 뭐지?’ 싶었다.
이제 그 얘기를 자연스럽게 할 만큼 극복된걸까.
어떤 한 시점에서 극복 단계로 넘어간 건 아니다. 서서히, 서서히 모든 순간이 극복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른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절대 끄집어내기 싫은 과거는 아니다.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 만약 계속 사랑받는 연예인이었다면,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돈이나 노력으로도 살 수 없는 건데, 내겐 값진 시간이 주어진 거다.
어떻게 컴백을 결심했나.
아이를 돌보면서 음악을 떠올리고, 아이가 잠깐 잠들면 어디 적어놓고, 그러다보니 휴대폰이 꽉 찼다. 혜정이(부인 강혜정)가 ‘너는 다시 음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해줬다. 음악을 만들 때 내 눈빛과 미소가 그리웠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후로 본격적으로 작업을 했다.
보통 아기 아빠가 된 뮤지션들은 진지한 음악을 하기 힘들다고 하다던데.
좋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했지만, 그와 동시에 무직이지 않나. 그게 좀 미안했다. 아기를 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진지한 음악을 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기를 보면서 즐거운 동시에, 엄청나게 미안하고 뭔가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었다.
지금도 되게 감사하고 있는 중에 하나가, 나보다 더 슬프고 아프고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엄청 많을텐데, 나도 물론 그 순간 굉장히 절망하긴 했지만 그걸 음악으로 표현할 수가 있지 않나. 누구에게 들려주든 말든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걸 잃었다고 느꼈을 때도 ‘모든 걸 잃은 건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음악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나.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다. 그때는 어렸고 철도 없었고, 사랑을 많이 받아서 자만했던 것도 많았다. 음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그래서 ‘나 이정도 해’라고 보여주고 싶어서 음악을 만들고 싶을 때도 있었고 괜히 센 척 할 때도 있었다. 이젠 그게 없다. 쓸데 없이 화려하지 않고, 굳이 ‘나 좀 봐’ 그런 것도 없다. 그냥 나오는 대로 만들었다. 그게 꼭 나쁜 일 때문만은 아니다. 남편이 됐고, 아빠가 됐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일이 생겨서 어른이 된 것 같다.
원래 성격은 어땠나.
부정적이었다. 누가 건드리면 팍 폭발하는 성격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뒤돌아보면 그랬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게 없어졌는데 지쳐서 그런건지 성숙해져서 그런건지 그랬다. 예전에는 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도 못 참고, 좋은 이야기만 있길 바랐다. 철이 없었던 거다.
학력위조설 해프닝 당시, 한국 대중이 원망스럽진 않았나.
내가 국내에서는 인터뷰를 안했는데, 외국 잡지와는 인터뷰를 한 이유가 있다. 외국 사람들이 이게 전부 한국의 문제인 것처럼 보는 시선이 싫었다. 나는 그래서 이건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한국 사람에 대한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었다. 내가 외국에서 자랄 때,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내 사건 때문에 한국에 대한 또 안좋은 선입견이 생길까봐 걱정됐다.
그래도, 당시 한국 대중의 반응이 섭섭했을 순 있었을 것 같은데.
팬들에 대해서는 잠시 그렇게 느낀 적은 있다. 논란 초반에 내 가슴을 후벼팠던 일이 있다. 내 팬이 CD를 다 부셔서 사진을 찍어 보낸 거다. 그게, 너무 마음 아팠었다. 내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데 그 많았던 팬들은 다 어디갔지 그런 생각도 했었다. 위로의 편지 한 장 받은 적 없었으니까.
그때는 너무 외로웠고 아무도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이번에 컴백하면서 느낀 게, 내가 밖으로 나가기가 불편하고 싫었던 만큼 날 응원하는 사람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팬이라고 밝히면 사람들이 공격하니까 그랬던 것 아닐까 하고 이해하게 됐다.

지난달 SBS ‘인기가요’에서 컴백 무대에 올랐을 때 좀 어색해 보였었다.
신인으로 앨범 냈을 때보다, 지금이 뭔가 더 놀랍고 새롭다. 방송국에 갔는데 카메라가 어디있는지도 까먹었더라. MC 조권한테 카메라는 어딜 봐야 하냐고 물어봤다. 저길 보라고 하는데, 카메라가 세 개나 있는 거다. 카메라가 어딨는지 못찾겠더라. 돌아와서 모니터했는데, 바보 같더라.(웃음)
이제 방송활동을 거의 안한다고 들었다. 왜 활동을 짧게 하나.
원래 활동은 아예 안할 생각이었다. 이 음반이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 혼자 나와서 자꾸 슬퍼하면서 노래하기도 그렇고. 그냥 사람들 앞에 설 생각이 없이 만든 음악이라 그랬다.
예전의 밝은 모습, 예능 블루칩 타블로를 그리워할 팬도 많을 것 같다. 그때의 모습을 다시 볼 순 없을까.
예전의 나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에픽하이 안에서도 나는 늘 잔잔한 감성을 추구했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이번 음반의 색깔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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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