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수(28)는 올해 SK 와이번스 마운드의 핵심 좌완 불펜요원으로 급성장했다. 그가 있었으매 SK의 가을 잔치가 있었다.
박희수는 원래 오른손잡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던지는 것만’ 왼손으로 한다. 물론 야구공은 왼손으로 던지고 농구도 왼손으로 한다. 그렇지만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고 수저도 오른손으로 든다.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더불어 야구공 놀이를 할 때 왼손 글러브를 낀 게 ‘왼손투수’가 된 계기가 됐다.
그의 별명은 ‘상길이’다. ‘상체가 유난히 길다’해서 상무부대 군 복무시절 김희걸(KIA)이 지어준 이름이다. 184cm인 그가 193cm의 장신인 SK 동료투수 윤희상과 나란히 앉으면 그의 앉은키가 더 크다. 주위에서 “상체가 길어 앞으로 많이 나오게 돼 타점이 좋다”고 말할 정도다. 그의 손은 생각보다 작다. 마치 선동렬 KIA 타이거즈 감독의 손을 연상시킨다. 여전히 굳은 살이 박혀있는 그 손이 올해 SK 마운드를 지탱시켰다.

‘괄목상대(刮目相對)’, 학식이나 재주 따위가 매우 대단해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를 일컫는 사자성어이다. 올해 프로야구 판에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할’ 대표적인 기량 급상승 투수는 LG 트윈스의 박현준(25)과 더불어 SK 와이번스의 박희수(28)를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박희수는 올 시즌 중후반, SK 마운드가 휘청거릴 때 든든한 구원투수로 등장, 팀이 가을잔치에 참여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전반기에 10게임 출장에 불과했던 그는 후반기에 29게임에 등판, 좌완 불펜 핵심투수 노릇을 훌륭히 수행했고, 특히 포스트 시즌 들어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8게임에 나가 제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박희수가 힘을 쓰지 못했더라면 SK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희수는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 선발 송은범(6이닝)에 이어 등판, 8회 무사 1루의 위기에서 이대호와 홍성흔을 연속 삼진으로 처리해 팀이 한 고비를 넘기는데 수훈을 세웠던 것이다. 프로야구 최고의 강타자 이대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은 시리즈의 압권이었다.
그런 박희수가 단골 트레이드 대상으로 거론됐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까. 김성근 감독 시절 한화와 LG, 롯데 등 여러 구단이 성장 가능성이 큰 박희수를 눈여겨보고 집요하게 대들었다. 그만큼 탐이 났던 것이다. 김성근 전 감독도 상대팀 즉 전력 선수를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트레이드를 고려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시즌 후 FA 신분이 되는 이승호와 병역 미필인 정우람 등 팀의 좌완 불펜진의 형편을 고려할 때 박희수를 내주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의 주무기는 투심. 직구 빠르기도 140km 중반을 넘는데다 타자의 의표를 찌르는 투구와 정교한 컨트롤, 코너웍도 일품이다. 올해 좌완 불펜 투수들 가운데 으뜸으로 꼽아도 무리가 없다. 지난 13일 오후 1시께 박희수를 만났다. 인천 문학구장에서 자율훈련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문학구장 인근의 원룸에서 자취를 하는 그는 대뜸 “배가 고프다. 몸무게가 시즌 때(89kg)보다 2kg 줄었다”며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박희수는 “신인왕 후보로 이름조차 올리지 못해 아쉽다”면서 “시즌이 끝났는데도 아직 대전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소 불편할 수 있는 트레이드설부터 물어봤다.
-그동안 트레이드 대상으로 자주 거론된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기분이 들었나.
▲작년부터 트레이드 얘기가 나왔다고 들었다. 올해 SK 좌완 불펜이 강해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트레이드가 되는 것을 오히려 반가워했다. (등판)기회가 없으니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성근 전 감독에 대해 묘한 감정이 들 법도 한데.
▲아니다. 김성근 감독님을 좋아한다. 올 봄 스프링캠프 때 감독님께서 폼을 약간 교정해주셨다. 그 게 기량이 늘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강하게 던지는 스타일이 아닌데 올해부터는 스피드도 늘고 해서 힘 있게 던졌다. 작년엔 최고 143km였는데 올해는 147km까지 나왔다. 팔각도를 약간 내리고 옆으로 던지는 식으로, 전력투구를 했다. 짧은 이닝을 소화하면 됐으니까. 달라진 것을 느낀다.
-기량이 는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 법하다.
▲2008~2009년 상무에서 복무할 때 투구요령에 눈을 떴다. 2년차 때 게임에 많이 나갔는데 당시 김정택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셨다. 선발, 중간,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등판했다. 경기에 많이 나간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제대 후 자신감이 붙었고 구위는 좋다고 생각했지만 워낙 기존 불펜이 강해 솔직히 답답했다.
-한대화 한화 이글스 감독이 대전고, 동국대 선배여서 잘 알고 있어서 데려가려고 했다고 들었다. 한 감독은 “대학 때는 써 먹지 못했다”고 웃으며 말하던데.
▲대전고 3학년 때 워낙 많이 던졌다. 한 감독님이 나를 동국대로 뽑아주셨는데 입학하자마자 왼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하는 바람에 1학년 때는 한 게임도 뛰지 못했다. 4학년에 가서야 제대로 던지긴 했지만 한 감독님께는 지금도 미안하다. 그 때 쉰 것이 도움이 됐다.

-언제까지 불펜요원으로 머물 것인가. 선발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떤가.
▲그러잖아도 이만수 감독님이 “선발로 나갈 수도 있으니까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잘하면 써주시지 않겠는가. 아버님도 평소 “좌완 최고 선발투수가 돼야한다”고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 선발에 도전해보겠다.
-주변의 시선이나 환경이 달라진 것을 느끼는가.
▲민경삼 단장께서 가을 캠프에 오셔서 “올 겨울은 따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기대가 된다.(웃음) 잘 해서 대우받아 좋지만 신인왕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팀도 우승을 못한 것이 오히려 자극이 된다. 배가 불렀다면 자만했을 지도 모른다. 끝이 좋지 않았던 것이 거꾸로 동기부여가 됐다. 올해 반짝 관심을 받다가 내년에 못하면 안 된다. 못하면 한 순간에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올해보다 더 열심히 할 것이다.
박희수는 지난 2002년 2차 6순위로 SK에 지명됐다. 동국대를 졸업한 2006년 계약금 5000만 원을 받고 SK입단, 여태껏 2군에 주로 머물러 있었다. 1군 무대에서는 2006년 5게임, 2010년 14게임을 뛰었고, 올 들어 5월17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등판한 이후 점차 등판 횟수를 늘려 8월에 11, 9월에 14게임을 등판했다. 올해 성적은 39게임에서 4승 2패 1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1.88, 올 연봉은 2700만 원이었다. 박희수는 이제 SK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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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