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 김상호 "내가 주연이라 떠들어봤자.." [인터뷰]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1.12.25 09: 44

정의감 넘치는 기자, 옆집 욕쟁이 아저씨, 능력은 변변치 않아도 푸근하고 정 많은 남편, 날카로운 수사관..백지같은 유연한 외모는 아니지만, 그가 옷을 걸치고 연기하면 관객들은 그에게 빠져든다. 이제 조연이란 수식어가 버거운 이 남자, 배우 김상호다.
올해만 '반짝 반짝 빛나는', '시티헌터', '특수사건전담반 TEN(텐)' 등 드라마 3편, 영화 '완득이', '챔프', '모비딕', '적과의 동침' 등 4편을 선보였다. 이제 '텐'으로 안방극장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는 그에게 "브라운관에서는 첫 주연인데 축하드린다"라고 말하자 "에이 그런 게 어딨냐"라며 손사레를 친다.
"사실 '텐'에서 주연 배우들은 매주 나오는 사연의 주인공들, 피해자들입니다. 사실 우리들(수사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사람들이죠. 진짜 주연은 그 분들입니다. 주조연, 어릴때는 신경 썼어요. 하지만 이제는 좋은 배우 좋은 작품 이런게 더 좋습니다. 포기는 아닌 것 같고 이런 게 좋아지네요. 주연이라고 해 봐야 갑자기 뭔가 거대해지는 것도 아니고, 어제 잠자고 일어나서 오늘인 거에요. 제가 (주연을) 많이 못 해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주연이라 떠들어봐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거에요. 밖에 있는 사람이 주연급이라 인정해줘야 진짜 주연인거죠. 보시는 분들이 판단해주시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텐'은 캐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도 평가받는다. 이에 대해 그는 "반응은 나뉘기 마련인데 그 분들까지도 만족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다"라고 말한다. "관객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이제 그런 관객들이 작품에서 헛점을 보면 실망하지요. 다행히 '텐'은 그런 면에서 탄탄합니다. 대본만 읽어도 되게 재미있어요. 수사물은 문학이 아니라 공학입니다. 문학은 감성이지만, 공학은 날카롭고 냉정하지요."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꾸준히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그다. 특히 올해 드라마가 모두 시청률에 성공하고 영화 '완득이'가 흥행하면서 유난히 그의 활약이 돋보였다. 가족, 특히 아내가 좋아하시겠다는 말에 "원래 표현을 안 하는 성격"이라며 "2007년도에 상(제 28회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받고 꽁치 두 마리 구워준 게 다다"라며 웃어보였다. 그가 가진 '배우관'이란 '계속 밥 벌어 먹고 사는 좋은 배우'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작품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를 많이 축적했냐고. "상대적으로 연극할 때보다는 낫죠. 어마어마하게 재벌처럼 부를 축적하고 싶진 않지만 애들 고등학생 때까지는 알바 안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제가 원하는 부요? 애들 다 결혼하면 아내랑 놀러다닐 수 있는, 그런 부를 원합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김상호 참 바쁘게 살았구나'란 생각이 든다고. 예능에도 출연했다. 예능은 그에게 또 다른 신세계였다. 녹화 4, 5시간 바짝 긴장했다는 그는 "내가 제일 부러운 배우 부류는 연기도 잘 하고 예능도 잘 하고 작품 홍보도 잘 하고, 예능에서 기가 차고 즐겁게 하시는 분들"이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저렇게 하나 싶다고. 하지만 섣부른 작품 홍보를 위한 예능 출연은 반대다.
"예능이 솔직히 두려워요. 능력을 갖고 있어서 프로그램에 가서 시청률 안 떨어뜨리고 홍보를 잘 할 수 있다면 부담은 없습니다. 근데 오로지 내 작품을 홍보하러 나가서 시청률을 떨어뜨린다면 그건 상도가 아니죠. 그러면 못 나갑니다. 피해를 주는 거니까요. 술자리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을 데려다 놨는데 작가 분들이나 MC가 도와주는 것들을 탁탁 물어 잘 해나가지 못하면 어떡합니까. 저는 솔직히 닭살이 돋고 못하겠더라고요. MC랑 PD님, 작가님들이 정말 대단하세요. 내 작품 홍보만 하려는 목적으로 나가면 비겁하고 이기적인 거죠. 그냥 놀러가서 쓱 하는 것도 기분 나쁘고요. 그 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목숨 걸고 하는데 말이죠. '놀러와'요? 유재석, 김원희, 지상렬 씨 저 도와주려고 엄청 고생했어요. 그래서 (화면이 비치는)그 만큼 그렇게 된 겁니다. 앞으로 절실한 뭔가가 생기고 피해를 안 줄 수 있을 때, 그 때는 제가 먼저 부탁을 할 지도 모르겠어요."
실제 만난 김상호는 털털한 옆집 아저씨의 느낌만은 아니다. 골똘이 생각하며 순간 순간 반짝이는 눈에서 배우의 포스가 느껴진다. 카리스마가 있다고 말하자 "카리스마 이런거 없다"라며 껄껄 웃는다. 그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은 다시 그를 찾는 경우가 많다. "정말 성격이 좋으신 거 아니냐"고 말하자 "감독님들이 계속 찾는 것은 성격이 좋은 것보다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겠느냐"라며 껄껄 웃는다. 미소가 매력적인 베우다.
"감독님들이 다시 저를 찾으실 때 정말 행복합니다. 만족스런 작품을 끝내고 나서 다음에 또 콜이 왔을 때는 되게 기분좋아요. 더 큰 팀웍이 생기죠. 믿음이 생기고 더 단단한 작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받습니다. 물론 일단 열심히 해야죠." 
올해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빛을 발한 그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작품도 물론 있다. "나야 고생을 안 했는데 스태프들이 많이 고생했죠. 보상을 못 받아서(흥행을 못해서) 미안한 감정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배우로서 갖는 책임감도 느껴진다.
특히 '모비딕'은 애정이 남는 영화로 꼽았다. "대본을 보고 기분이 좋았어요. 소재가 여태까지 만들어진 한국영화로서는 익숙한 소재가 아닌 음모론을 다루는 영화였죠. '아, 이거 우리 잘 만들어 성공시키면 대한민국에서 글쓰는 사람들이 소재를 더 많이 갖고 '모비딕' 같은 걸 쓸 것이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배우들이 열심히 많이 고민하고 만들었는데 아쉬운 결과가 나와서 조금 안타깝죠. 그래도 그런 작품을 했다는 자체가 만족스럽습니다. 감독님도 신인이셨는데, 무게감을 획득하셔서 앞으로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완득이'로는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에 그는 "영화가 이쁘게 잘 돼서 너무 고맙다"라면서도 본인의 연기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렇게 한다. 연기를 해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그걸 못할까. 나 아닌 누가 했어도 잘 했을 것이다. 색깔은 다르겠지만 충분한 미친존재감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너무 겸손한 멘트가  아니냐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 "그건 모르겠다. 하하."
다양한 작품, 장르를 넘나들어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한 김상호에게 '이건 내가 좀 편하고 자신있다'라는 역할이 있냐고 묻자 짐짓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한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저는 항상 정체돼 있으면 불안합니다. 자극이 없으면 불안한 거죠. 그게 배우란 직업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계속 도전하는 것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요. 최근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들어온 대본을 거절했는데 그 이유가 일단 시나리오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았고, 내가 잘할 수 없는 역할이었어요. 그건 김상호 자체더라거요. 김상호 자체를 누가 나를 1년 정도 따라다니며 썼을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요. 김상호 자체가 매력적인 내용 안에 들어가 있으면 좋지만, 김상호가 작품에서 붕 떠 있으면 그건 아니죠. 이야기 속에 캐릭터가 잘 스며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예전에는 나쁜 역을 해보고 싶었는데 요새는 없다"라고 말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배우로서 스스로의 장점은 무엇일까?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이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보시는 분들이 제가 맡은 캐릭터의 나이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김상호는 분장이 필요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작품에서 그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짙은 분장을 한 기억이 없다. 이는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연극할 때도 대극장에서는 서양식으로 하는 짙은 분장이 있는데, 10여년 전 연극을 마지막으로 할 때도 평범하게 했어요. 소극장에서 할 때도 분장을 안 했죠." 분장이란 효과를 내야하는데 그에게는 특별한 효과를 내지 않았다는 것. "효과를 안내는데 관례상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이 시점에서, 배우로서 하는 그만의 본인관리가 궁금해졌다. 건강을 위해 등산과 산악자전거를 탄다는 그는 "운동하면 잠이 잘 온다"며 밝게 웃었다. 피부관리도 한다. 그가 말하는 피부관리는 간소한 에센스와 수분크림이다. "분장팀한테 물어보니 에센스랑 수분크림을 바르라고 하더라고요. 저 듬뿍듬뿍 바릅니다. 아깝지 않게 팍팍."
 
'연기의 달인'처럼 매번 다른 작품에서 카멜레온 같이 변하는 '기술'이 있을지 궁금했다. 캐릭터 분석이나 인물 행동에 특별한 연기법이 있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려줬다.
"집 짓는 방법에도 여러 기술이 있죠. 초가집도 기와집도 빌딩도 각기 다른 공법이 있습니다. 건축 설계법처럼 연기에도 하는 방법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설계도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한테는 그런 설명을 할 만한 설계도가 없어요. 명쾌하게 말할 능력이 없죠. 다른 좋은 배우 분께서 위대한 답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용해서 써 먹게. 하하."
그에게도 '와 이 배우 연기 정말 잘 한다'라는 자극을 주는 배우가 있을까. "어후 많죠. TV나 영화를 보다 보면 이름은 잘 모르는데 얼굴을 아는 경우가 되게 많습니다. 물론 주위 분들 (송)강호 형님, 윤제문, 한석규 선배님, 주위에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 연기 귀신이에요. 그분들 연기하는 것을 보면 이승엽이나 마라도나 같은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런 분들이 작품을 보고 분석할 때의 자세나 시선, 그런거에 순간 순간 놀라기도 합니다."
그에게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무엇보다도 대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작품은 재미라고 말한다. "작품이 승부 거는 건 재미죠. 그거만 담보되면 잘 돼요. 관객을 믿거든요. 재미있으면 관객분들이 알아서 찾아서보시더라고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역시 배우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대본이 잘 넘어가는 거에요. 넘어가지 못하고 대본이 무거워지는 게 있으면 안 되죠. 예전에는 대본이 무거운 데도 한 적이 있죠. 분명히 저는 밑에 있는 배우니까 대본 외적인 목적이 있는 경우가 있을 때가 있죠. 하지만 그러면 감독님과 얘기를 하고 상의를 해서 해야 해요. 예를 들어 대본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감독과 얘기를 하고 내가 못본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해요. 귀가 틔어 있어야 하지요. 맞고 틀린 것을 함께 얘기하다보면 풀릴 때가 있고, 그래도 이해가 안되면 감독님과 술 한 잔을 하러 가야죠."
내년 계획에 대해 물었다. "'텐'이 올해 마지막 작품인데 작품이 잘 나오고 연말이 좋네요. 내년까지 쭉쭉 나가야 할 텐데. 하하. 내년 계획이요? 아직은 섣불리 뭘 하겠다고 말하지는 못하겠고 그냥 올해처럼만. 그리고 내가 가벼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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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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