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프로야구도 저물어간다.
올해 프로야구는 유독 뜨겁고, 폭발적이었다. 한 시즌 최다 관중 680만명을 동원했고,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터졌다. 시즌 종료 후에도 감독·코치·선수를 가리지 않고 프로야구판 대이동이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팬들의 관심도 뜨거워졌다. 야구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랬다. 2011년 프로야구에서 주목을 끌었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모았다.
▲ "나는 믿을거야, 가코 믿을거야" - 삼성 류중일 감독

올해 첫 지휘봉을 잡은 삼성 류중일 감독은 외국인 타자 라이언 가코에 대한 절대 믿음을 보였다. 스프링캠프에서 그가 부담을 갖지 않게끔 "나는 믿을거야, 가코 믿을거야"라며 믿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가코는 끝내 류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했다. 58경기 타율 2할4푼3리 1홈런 28타점. 2군으로 내려간 뒤 부상을 당하며 7월 중순 퇴출됐다. 하지만 류 감독은 가코 외의 나머지 선수들을 믿었고, 최초로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아시아시리즈를 제패하는 위업을 이루며 초보 감독 돌풍을 일으켰다.
▲ "예끼!" - 한화 한대화 감독
5월12일 잠실 한화-LG전. 한화가 0-1로 뒤진 9회초 2사 1·2루에서 이양기가 좌전 안타를 터뜨리며 2루 주자 전현태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전현태가 홈에서 태그아웃돼 경기가 끝났다. 경기 내내 판정 불만이 쌓여있던 한대화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심판에게 폭언했다. 이른바 '예끼' 사건. 야왕 신드롬의 시발점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때 한 감독은 '예끼'라고 하지 않았다. 당시 대기 타석에서 현장을 목격한 이대수는 "예끼가 아닌 에이였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예끼'는 이제 한화 응원 구호로 쓰일 정도로 유행이 됐다. 한 감독도 굳이 이를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예끼' 사건이 터진 날까지 10승22패1무로 3할대(0.313) 승률에 최하위 팀이었던 한화는 이후 49승50패1무라는 5할(0.495)에 근접한 승률로 시즌을 공동 6위로 마쳤다.
▲ "이제 정말 점퍼 하나씩 구입하셔야 되겠다" - LG 박용택
올해 LG 주장 박용택은 팬들에게 거짓말했다. 물론 의도된 거짓말은 아니다. 그는 지난 6월11일 군산 KIA전 승리 후 LG팬들에게 "이제 정말 점퍼 하나씩 구입하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부는 포스트시즌에 야구하겠다는 뜻이었다. 당시 LG는 34승24패 승률 5할8푼6리로 1위 SK에 승차없는 2위였고, 박용택도 타율 3할1푼8리 10홈런 42타점 맹활약이었다. 그러나 이후 LG는 25승48패2무 승률 3할4푼2리로 추락했고, 박용택도 타율 2할9푼 6홈런 26타점에 그쳤다. LG는 프로야구 역대 최장기간인 9년 연속 가을잔치에 오르지 못했고, 박용택도 시즌 후 2년간 찼던 주장 완장을 반납했다.

▲ "김태균 잡아올게" - 한화 김승연 회장
8월7일 잠실 한화-LG전. 한화가 승리한 이날 경기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 후 그라운드로 내려온 김승연 회장이 선수단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했다. 그때 관중석 한켠에서 팬들이 "김태균 좀 잡아주세요"라고 외쳤다. 이에 김승연 회장은 "김태균 잡아올게"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화는 일본프로야구에서 돌아온 김태균을 최고 연봉 15억원에 한화로 복귀시켰다. 김태균은 "회장님 말씀을 듣고 의리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한화는 김태균 뿐만 아니라 박찬호와 송신영를 영입하고, 2군 전용훈련장까지 건설하며 통크게 투자했다. 회장님 말 한마디의 힘은 확실히 어마어마했다.
▲ "야구 그만 둘 생각도 했었다" - 넥센 심수창
심수창은 벼랑 끝 사나이였다. 적어도 8월10일 사직 롯데전에서 승리투수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날 경기 전까지 심수창은 프로야구 역대 최다 개인 18연패에 빠져 있었다. 2009년 6월26일 문학 SK전 승리 후 785일 동안 승리가 없었다. 연봉은 3000만원으로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트레이드 마감시한에는 입단 때부터 정붙인 LG를 떠나 넥센으로 팀을 옮겼다. 넥센 이적 후 첫 경기도 패전투수가 되며 연패는 18연패로 불어났다. 하지만 심수창은 롯데전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뒤 공을 들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마무리 손승락을 비롯한 팀 동료들은 그의 승리를 지켰다. 786일 만에 18연패 끝 1승. 심수창은 "야구를 그만 둘 생각도 했었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 놓았다.
▲ "365일 연습하는데 쉬어, 쉬어" - SK 이만수 감독
8월18일 문학구장에는 낯선 풍경이 연출됐다. 시즌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뜻밖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성근 감독의 갑작스런 경질에 따른 이만수 감독대행의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 감독은 "SK를 양키스·보스턴·컵스처럼 명문팀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드러냈다. 이어 경기 전 연습에 한창이던 선수들을 향해 "365일 연습하는데 무슨 또 연습이냐. 쉬어, 쉬어"라고 말하며 전임 감독과의 차별화를 무의식 중에 나타냈다. 안 그래도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팬들의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시즌 종료 후 정식 감독이 된 이 감독은 선굵은 메이저리그식 자율 야구를 선언했다. 지난 5년간 SK의 야구와는 확실히 달라질 전망이다.

▲ "그때는 호구짓을 했으니 호구였지" - 롯데 양승호 감독
롯데 양승호 감독은 시즌 초반 팬들로부터 어마어마한 비난에 시달렸다.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롯데는 4월 한때 최하위로 추락하며 고전에 고전을 거듭했다. 양승호 감독에 대한 비난 수위도 점점 높아졌다. 그 중에는 이름 끝자를 딴 '호구'라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롯데는 7월 이후 43승20패2무 승률 6할8푼3리로 고공 행진하며 최초로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하는 대반전을 연출했다. 양승호 감독을 향한 평가도 비난에서 칭찬일색으로 바뀌었다. 양 감독은 시즌 초반 시행착오를 돌아보며 "그때는 호구짓을 했으니 호구였지"라며 호탕하게 인정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변화를 준 양 감독 특유의 유연한 사고와 융통성이 롯데의 대반전을 이끌어냈다.
▲ "나는 희섭이랑 얘기하면 다 해결된다" - KIA 이순철 코치
KIA는 시즌 종료 후 코칭스태프 개편을 통해 해태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과거 해태 왕조를 이끌었던 선동렬 감독, 이순철 수석코치가 복귀한 것이다. 특히 강력한 카리스마의 이 코치가 감독 못지않은 주목을 받았다. 이 코치는 선수단과 상견례에서 "난 (최)희섭이랑 얘기하면 다 해결된다"는 말로 최희섭을 초긴장시켰다. 해설위원 시절 최희섭에 대해 애정 어린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이 코치의 한마디였기에 '최희섭 군기잡기'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사실 이 코치와 최희섭은 개인적으로 풀어야 할 오해가 있었을 뿐 군기잡는 것이 아니었다는 후문. 중요한 건 이 코치가 최희섭 부활에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 "택근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 넥센 이장석 사장
스토브리그 최고 빅뉴스는 아마도 이택근의 넥센 복귀일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택근의 친정팀 복귀 그것도 프로야구 역대 두 번째 고액에 해당하는 4년간 총액 50억원이라는 초대형 계약이었다. 넥센이 이택근을 영입한 것도 놀랍지만 계약조건은 더 놀라웠다. 2004년말 심정수가 삼성과 4년간 총액 60억원을 받은 것 다음 가는 조건이었다. 이장석 대표이사는 "잃어버린 것을 찾았을 뿐"이라며 "2년 전 팀을 떠날 때 흘렸던 택근이 눈물을 꼭 닦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시진 감독도 "계약 발표 후 택근이에게 전화가 왔다. '감독님 다시 왔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집나간 자식이 돌아운 기분이었다"며 이택근 복귀의 감격을 표현했다. 이택근도 "사장님이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고 하셨다"며 고마워했다.

▲ "마치 죄를 지은 것 같다" - 오릭스 이대호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타자 이대호는 결국 일본에서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원소속구단 FA 협상 마감날 이대호는 롯데가 제시한 역대 최고액 100억원의 계약을 거절하고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이대호는 "롯데는 내게 최상의 조건을 제시했다. 정말 감사드린다"며 "마음이 불편하다. 마치 죄를 지은 것 같다. 하지만 열심히 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대호가 되게끔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롯데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롯데와 부산 야구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였던 이대호의 일본 진출은 100억원이라는 거액을 마다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진정성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대호는 오릭스와 2년간 7억6000만엔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하며 일본프로야구 무대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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