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최동원-선동렬과 류현진-김광현의 거리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03.15 07: 38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경기 시작 전부터 대전구장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1987년 최동원과 선동렬 이후 최고의 흥행카드로 지목되던 한화, SK의 좌완 에이스 류현진과 김광현의 사상 첫 맞대결이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의 류현진과 김광현은 한국프로야구 투수부문에 있어 양대 산맥으로 불렸을 만큼 막상막하의 성적을 올렸던 해로 남아있다. 다승 경쟁에서 류현진은 16승으로 17승의 김광현에 한 발 뒤졌지만, 방어율에서 류현진은 1.82로 김광현(2.37)을 찍어 눌렀고, 구위의 바로미터 탈삼진 부문에서는 류현진이 ‘187-183’이라는 간발의 차로 김광현을 앞섰을 만큼, 시즌 내내 두 선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2006년(류현진)과 2007년(김광현), 각각 고졸 신인으로 프로무대에 뛰어든 두 선수는 데뷔 이후 해마다 다승과 방어율 그리고 탈삼진 등 투수부문 주요 기록들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거듭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쌍두마차로 불려오던 터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막상 두 선수간의 선발 맞대결은 단 한차례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각 소속 팀의 에이스인 두 선수를 맞붙였다가 지기라도 하는 날엔 단순한 1패가 아닌, 그 이상의 충격파로 큰 후유증을 앓을 수 있다는 우려가 언제나 두 에이스의 발목을 잡아채고 있었다. 특히 있는 집(?) SK보다는 소년 가장으로 불렸을 만큼 류현진 한 명에 대한 의존도가 심했던 한화의 부담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늘도 더는 팬들의 바램을 못 본 척하기 어려웠는지, 두 투수의 맞대결을 코너로 몰아넣었다. 5월 23일 등판하는 것으로 일찌감치 예상되었던 류현진 앞에 당초 22일 선발투수로 예고되었던 SK 김광현의 등판이 비로 하루 떠밀려 내려온 것이었다.
두 선수를 맞대결시켜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늘 미묘한 이유로 답해왔던 양 팀 사령탑이 더 이상 피하지 않고 23일의 선발투수로 류현진과 김광현을 덜컥 예고한 이면에는 사실 믿는 구석(?) 하나가 들어 있었다.
바로 날씨였다. 하루 전 예보에 따르면 23일 오후는 온통 우산그림의 비 예보가 깔려있었다. 일요일 오후 5시로 예정되어 있는 경기개시 시간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경기진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정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23일 오더에 류현진과 김광현은 나란히 당일 선발투수로 이름을 올렸지만, 결국 맞겨룸은 성사되질 못했다. 경기시작 1시간 전부터 예보대로 비가 뿌리기 시작했고 개시 예정시간 1분 전인 4시 59분, 우천취소 결정이 내려지고 말았다. 그치지 않는 비도 비였지만 미끄러운 인조잔디에 의한 선수부상 위험이 최종 결정의 주된 이유였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세기의 대결.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이렇듯 하늘이 허락하지 않을 것을 예상한 사람의 지혜(?)도 조금은 들어 있었다.
경기취소 결정이 내려진 이후, 서로 맞잡은 양 선수의 악수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배팅 오더를 뒤로 하고 둘의 맞대결 퍼즐은 더 이상 맞춰지지 않았다.
2011년 9월 14일 병마와 씨름하던 최동원이 세상을 떠나고 그를 추억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부각된 것은 혼자 4승을 따냈던 1984년 한국시리즈였지만, 최동원 혼자가 아닌 한국프로야구 안에서의 그의 위치를 재조명할 때 늘 거론되는 이슈는 또 한 명의 우완 레전드 선동렬과의 라이벌 관계였다.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서 최동원과 선동렬이 펼쳤던 장장 15회 연장 맞대결(2-2 무승부)은 이제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올드 야구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지금이라면 현실 불가능한 상상 속의 이야기라 치부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에이스간 맞대결. 15회라는 투구회수도 그렇지만 최동원과 선동렬이 15회까지 던져댄 209개와 232개라는 투구수 기록은 현 시대의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신의 경지에 다름 아니다.
그날의 임펙트가 너무 강해서인지 이보다 1년 전 둘이 맞붙었던 부산 사직구장서의 두 차례 선발 맞대결은 오히려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1986년 4월 19일 처음으로 최동원과 선동렬이 맞붙던 날, 선동렬은 생애 첫 완봉승(2-0)을 기록했었다. 그리고 정확히 넉 달 위인 8월 19일, 이번에는 최동원이 완봉승(4-0)으로 진 빚을 되갚았다.
2년간 두 투수의 선발 맞대결 최종 전적은 1승 1무 1패. 해태와 롯데, 호남과 영남, 고려대와 연세대 등, 지연과 학연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상 너무나도 대조적이고도 팽팽한 평행선을 그어왔던 두 선수의 인생역정에 하늘은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못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만든 영화 ‘퍼펙트게임’을 보는 내내 또 다른 세기의 대결이 우리 앞에 나타나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처럼 굵어갔고, 그러다 2010년 5월 23일 코 앞에서 무산된 제2의 퍼펙트게임이 문득 아쉬워졌다. 그날 경기가 예정대로 치러졌었더라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쓰여졌을지.
약간 아류성이긴 하지만 1980년대의 최동원-선동렬과 2000년대의 류현진-김광현 사이, 우리는 또 하나의 빅 매치를 기억하고 있다. 바로 1990년대 LG의 야생마 이상훈과 OB 김상진의 선발 맞대결에 관한 추억이다.
1995년 두 선수는 서울 라이벌 LG와 OB의 간판 에이스로서, 좌완과 우완을 각각 대표하는 거물급 투수로서의 위용을 뽐내며 최상위급 구위와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해 다승부문에서 LG의 이상훈은 20승을 거두며, 1985년 김일융(삼성) 이후 국내 선수로는 최초의 좌완 20승 투수 반열에 올랐고, 김상진(OB)은 17승으로 2위에 자리했었다. 방어율에서도 이상훈은 2.01로 김상진(2.11)을 근소한 차로 앞섰지만 반면 탈삼진부문에서는 김상진이 159-142로 이상훈을 누르는 등, 잠실 한 지붕 두 선수의 활약은 그야말로 난형난제 급이었다.
팀 내 에이스 둘의 선전에 힘입어 1995년 OB는 정규리그 1위(74승 47패 5무)로 한국시리즈에 올라 우승까지 거머쥘 수 있었고, LG는 패수 하나 차이로 정규리그 2위(74승 48패 4무)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알찬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렇듯 없어서는 안될 특별한 존재임에도 1995년 이상훈과 김상진은 무려 3차례나 선발로 당당히 맞선 이력을 갖고 있다.
1995년 5월 30일 잠실구장. 매진사례(30,500) 속에 둘은 처음 선발로 맞섰다. 이날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 OB 김상진은 3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하고 있었을 만큼 하이 페이스를 달리고 있던 상황. 그러나 의외로 김상진은 1회부터 4실점, 2회 조기강판하며 패전의 멍에를 떠안았고 이상훈은 8이닝 1실점의 호투 속에 승리(5-1승)를 챙기며 둘의 첫 대결은 다소 밍밍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1995년 7월 4일 둘은 다시 선발로 만났다. 절치부심했을 김상진은 이번에는 달랐다.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고 9회가 끝났을 때 마운드에는 여전히 두 사람이 남아 있었다. 2-1 LG의 승리. 이상훈의 완투승과 김상진의 완투패. 설욕을 다짐했던 김상진으로서는 아쉬울 수 밖에 없는 결과였지만 경기장을 메운 2만 4천여명의 팬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투구수 130(김상진)-110(이상훈)의 명승부를 펼친 것에 대한 격려이자 찬사였다.
1995년 8월 13일. 잠실구장은 또 한번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상훈과 김상진의 시즌 3번째 맞대결이 펼쳐지는 날이었다. 그러나 김상진은 이번에도 이상훈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상훈이 8이닝 1실점으로 확실히 경기를 끌어간 반면, 김상진은 6이닝 동안 6실점의 부진으로 패전투수가 되며 이상훈과의 맞대결에서 또 한번 상처를 안았다. 역사 속에서의 두 선수 맞대결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산술적인 얘기지만 결국 두 선수의 맞대결 3패는 이상훈에게는 20승을, 김상진에게는 20승에서 3승이 모자라는 17승의 성적표로 돌아온 셈이 되고 말았다.
현재 한국프로야구에는 퍼펙트게임이 탄생되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20차례, 일본프로야구에서 15차례 등, 해외 프로야구사에는 퍼펙트게임이라는 귀한 대기록들이 보석처럼 콕콕 박혀 있지만 만 30년이 지난 우리 야구는 아직이다. 2011년 9월 17일 퓨처스리그에서 롯데의 이용훈이 한화를 상대(대전구장)로 첫 퍼펙트게임을 기록하긴 했지만 1군 메이저무대는 아니었다.
표면적인 기록사는 그렇지만 야구팬들의 마음 속에는 어쩌면 이미 퍼펙트게임을 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장서 군졸을 거느린 전쟁터의 장수가 광활한 벌판을 사이에 두고 적장과 대치하고 있는 그림. 야구로 치자면 불세출의 에이스들이 서로 선발로 나서 내가 이 경기를 끝까지 책임진다라는 비장한 심정으로 투구하던 장엄한 모습들이 곧 우리 마음속의 진정한 퍼펙트게임이 아니었는가 싶다.
“내가 지던 이기던 최동원이 게임은 최동원이 끝냅니다” 영화 퍼펙트게임에 나오는 대사 중의 한 구절이다. 가까이 있을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사람이 떠나고 나니 그가 야구팬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이제야 실감이 난다.
2012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벌써부터 2011 MVP 윤석민(KIA)-2006 MVP 류현진(한화), 류현진-2008 MVP 김광현(SK), 김광현-윤석민의 선발 맞대결이 퍼펙트게임의 힘을 빌어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007년 5월 13일 신인 김광현(SK)은 윤석민(KIA)을 상대로 데뷔 첫 승을 따낸 바 있고, 2007년 8월 21일에는 윤석민(7이닝 3실점)과 류현진(7이닝 1실점)이 맞붙어 비긴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대부분 병아리 솜털을 두르고 있던 어린 시기라 퍼펙트게임이었다 부르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느낌이다.
이제 집안을 대표하는 장닭으로 성장한 그들이 만들어낼 기약 없고 각본 없는 2012년판 퍼펙트게임이 마냥 궁금해진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