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빈 "연기자의 길, 진심으로 포기하려 했었다" [인터뷰]
OSEN 김경주 기자
발행 2012.03.29 08: 17

[OSEN=김경주 인턴기자] 괜시리 겁부터 났었다. 하긴 영화 '박쥐'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았을까. 뱀파이어로 변한 후 피를 향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채 사람을 무는 그녀의 모습과 창백한 피부와는 대조되는 붉은 피로 물든 입술을 떠올렸다면.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범상치 않다.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핑크 머리와 위, 아래 모두 검은색으로 물들인 의상.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아연실색할만한 '시체를 훔치자'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포스와 거리낌없이 전기충격기를 사용하는 대담함까지.
그러나 뭔가 사악한(?) 기운으로 상대를 제압할 것 같았던 배우 김옥빈의 선입견에 두려움을 느꼈던 건 기우였다. 지난 27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OSEN과 만난 그녀는 인터뷰 내내 코믹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을니까.

그녀의 '개그' 사랑은 남달랐다. 지상파 방송 3사의 개그 프로그램은 기본이요 종합편성채널의 코미디 프로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선 어떤 코너를 하고 이 코너에선 이 대목이 포인트다'라고 추천해 줄 정도. 말그대로 '개그 마니아'였다.
이번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도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딱 맞는 시나리오여서 단번에 선택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시체가 돌아왔다'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하나의 시체를 차지하려는 이들의 치열하고 대담한 쟁탈전을 그린 범죄사기극. 독특한 소재만큼이나 상영 내내 관객들의 배꼽을 잡게 할 만큼의 웃음 포인트로 가득한 작품이다.
"시나리오가 일단 재밌었어요. 되게 유머스럽고 코믹했거든요. 제가 원래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처음에 ('시체가 돌아왔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소위 말하는 '허당' 같은 캐릭터들이 많아서 귀엽다는 생각을 했고 이런 캐릭터들이 달리고, 사고를 치고 다니는게 재밌었어요."
사실 '시체가 돌아왔다' 속 대부분의 웃음 포인트는 배우 류승범이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아마도 극중 그의 캐릭터에서 기인하는 것일터. '똘끼' 충만한 돌+아이 진오 역을 맡은 류승범은 영화 속에서 그야말로 '돌+아이'의 진면모를 보여줬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김옥빈의 캐릭터가 약해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대해선 아쉽지 않을까. 그녀는 단언했다. 전혀 없단다.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재밌었어요. 제가 코미디 영화들의 DVD를 모으거든요. 제가 출연한 영화를 그 콜렉션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좋아요(웃음). 그리고 '내가 저 영화에 나왔어'라고 자랑할 수 있어서 너무 좋고요."
극중 동화는 '이상한 놈' 진오와 '평범하고 똑똑한 놈' 현철 사이, 즉 코믹과 진지함 사이에서 조율을 해나가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 사이에서 둘 사이를 조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동화의 어떤 점에 집중을 하고 연기를 하려 했을까. 그녀는 어떤 면에 집중을 하고 연기를 했던 것 보단 몸개그를 하지 못해 아쉽다고 전했다. 역시 '개그 마니아' 다운 대답이었다.
"어떤 면에 집중한다기보단 몸개그를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쉬워요. 승범 오빠나 범수 오빠가 나오는 장면에 제가 항상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누굴 보고 있거나 담배피고 있거나 되게 어정쩡하더라고요. 감독님한테 '저도 껴주세요'라고 말하기까지 했었어요. 그런데 그럴때마다 감독님은 '안돼, 동화는 시크해야 돼'라고 말씀하셨죠(웃음). 몸개그도 해보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워요."
동화의 인물 소개를 살펴보자. '다크한 행동파 동화'라고 돼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말그대로 내뱉은 말은 일단 행하고 보는 성격의 인물이다. 그렇다면 김옥빈의 실제 성격은 어떨까. "왠지 애교가 많을 것 같다"는 취재진의 말에 "바로 제가 그 점을 강조하려 했어요!"라고 반가워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점을 잘 몰라준단다.
"저는 일단 말할 때 버퍼링이 좀 느린 것 같아요. 그리고 차갑게 보이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거든요. 저는 그런데 애교가 많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남자친구도 딴데 가서는 (애교를) 보여주지 말라고 해요(웃음)."
'시체가 돌아왔다'에는 다른 영화들에선 보기 힘든 배경들이 여러번 등장한다. 스러져가는 아파트라던지 공동묘지 등이 바로 그것. 아무리 촬영진과 다 함께 있는 공동묘지라고 하지만 조금은 으스스한 기분도 들었을터. 묘지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가 재밌는 답변을 건네왔다. 나중에 후환이 없게 해달라고 묘지에 기도를 했다는 것. 이 말 한마디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이 한참동안 끊이질 않았다.
"촬영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어요. 일단 날씨 때문에 힘들었죠. 일기예보가 맞는 날이 없더라고요(웃음). 지대가 높은 곳은 기류 때문에 일기예보가 안 맞는대요. 비 때문에 촬영이 지연되고 일주일에 세 번 촬영을 접으면서 스태프들 사기도 떨어지곤 했었죠. 그리고 묘지 촬영도 인상깊어요. 아침에 묘지로 출근하고 다시 묘지에서 퇴근한 적도 있어요. 묘지 촬영할때 조바심이 나서 죄송하다고 기도를 드렸어요. 후환이 있을까봐요(웃음)."
그녀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남자친구 허재훈은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전했을까. 문득 허재훈의 반응이 궁금해져 이를 물어봤더니 그저 신기하다고 말했단다. 촬영 때부터 연기 연습을 하는 김옥빈의 모습을 많이 봐서 본 영화를 또 본 것 같았다고.
"제가 대본을 읽고 연습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본 영화를 또 보는 것 같았대요. 그리고 재밌고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연습을 하면서 고민하고 했던 것들에 대한 결과물을 보는게 신기했대요(웃음)."
김옥빈은 박찬욱 감독과의 만남으로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연기파 배우 송강호와 '박쥐'에서 호흡을 맞추게 되면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 자기 자신도 이 시점을 계기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 전까지는 연기자의 길을 포기하려고 진지하게 고민도 했었다며 박찬욱 감독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박쥐'를 찍기 전까진 제가 연기자로서 자질이 있나, 없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불안했었어요. 연기자로서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죠. 심각하게 그만둬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했었으니까요. 일단 연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길을 택했는데 엔터테이너적인 기질까지 요구하는 것 같아서 굉장한 스트레스였어요. 워낙에 내성적이어서 이런 모습을 숨기려고 일부러 센 척을 하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박찬욱 감독님을 만나고 '박쥐'를 하면서부터 그 때 이후론 연기자에 대해 스스로 의심을 안 하게 된 것 같아요. 자신감도 생긴 것 같고요. 그리고 흥행 여부를 떠나서 그 이후론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떨쳐버렸어요. 지금은 편안해졌어요(웃음).
그녀는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뛰어난 노래 실력을 선보인 그녀이니만큼 또 한 번의 가수 도전을 기대해도 좋을까. 아직까진 가수에 대한 생각은 없고 후에 자신만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가수 활동을 잠깐 하면서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렸어요. 가수를 보면서 '멋진데'라는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에 시작했는데 방송과 함께 하다 보니까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제약이 생기고 도전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무대에 서보고 음반을 내봤던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고 너무 좋았죠. 나중에 시간을 가지고 오랜 시간 준비를 통해 제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시체가 돌아왔다'를 보러 극장을 찾게 될 관객들에게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말해달라는 부탁을 건넸다. 이에 그녀는 명쾌한 답을 내놨다. "그냥 즐기세요". 사실 영화를 보면서 이 말 한마디 말고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즐기세요. 극장에서 나가면서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영화를 보고 편하게 즐기고 영화를 보면서 의미를 찾고 해석하려는 것보단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원래 제 영화는 안보려고 해요. 제 모습 보는 걸 부끄러워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궁금해요. 다시 보고 싶고요. 제가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재밌어서에요.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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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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