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수정이 엄청난 독설가로 변신했다. 그런데 이 독설녀,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럽다. '섹시한 순악질 여사'로 변신한 임수정은 어떤 모습일까?
임수정이 이선균, 류승룡과 함께 주연을 맡은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감독, 17일 개봉)은 결혼 7년 차 사랑에 대한 환상은 바닥나고 보이는 건 단점뿐인 아내 정인(임수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편 두현(이선균)이 카사노바 성기(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 로맨스다.
극중 임수정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걸면 "안녕 못해요!"라는 대답을 들려주고, 남편이 휴대폰 전화기에 '투덜이'라고 저장해놓을 만큼 매사에 불만이 가득한 정인을 연기한다. 정인에게 이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한 불만 보따리다.

정인은 독설 뿐 아니라 남편 앞에서 속옷을 갈아입다가 방귀를 뀌고, 남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자 밥상 주변에서 담배를 벅벅 피며 청소기를 돌린다. 하의실종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남편을 달달볶는 이 여자. 갑갑하고 답답한 이 여자가 그런데 변한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정인은 그간 한국 로맨틱코미디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다. 영화 안에서 전반과 후반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가 하면, 보는 이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소위 '재수없는' 성격으로 미움을 받는 비호감의 모습도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묘한 매력에 섹시함까지 갖춰 전설적인 카사노바의 마음까지 흔들어놓는다. 거기에다 정인의 대사는 '수다맨'의 그것을 떠올릴 정도로 속사포로 쏟아진다. 임수정을 '멘붕'상태까지 몰고 간 정인은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잔상을 남길 것이 분명해 보인다.

- 로맨틱 코미디인데 시사 후 남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다.
▲ 맞다. 남자분들이 많이 공감했다는 얘기를 하시더라. 남자들은 두현(이선균)이 아내 정인(임수정) 때문에 고통받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공감을 하시는 것 같다. 특히 결혼하신 분들이 열광적으로 반응 하시더라(웃음).
- 정인은 어찌보면 다소 비호감일 수도 있고, 망가졌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캐릭터다. 용기가 필요했나?
▲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캐릭터가 그간 해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좀 더 캐릭터 색깔이 특색 있고 두드러지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런 게 두려웠다면 말타는 기수도, 사이보그 정신병자 캐릭터도 안 했을 거다. (그래도 임수정하면 떠오르는 약간은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음..다들 그런 것만 기억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청초하고 맑은 순한 모습일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기억해주시는 것 같다. 그래도
순악질 여사' 같은 면모는 정인이가 처음이긴 하다. 그 동안 (캐릭터들이) 아무래도 착하고 정의롭거나 순정파, 이런 애들이 많았다.
- 방대한 대사 때문에 NG를 많이 냈다고 들었다. 본인은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멘붕'(멘탈 붕괴) 상태라고도 표현했는데.
▲ 입만 열면 다섯 여섯 문장이 다 전부 나와야 하는 상황인거지. 항상 NG를 냈다. 첫 장면이 신문 배달하시는 분(정성화)와 싸우는 장면이었는데 정신적인 쇼크 멘붕 상태가 왔다. '아 만만치 않아, 만만치 않아' 이 생각만 계속 들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 NG에 적응이 돼서 '당연히 내는 거지, 이렇게 대사가 많은데 당연한 거 아냐?'라고 좀 뻔뻔해진 것 같다. 정인처럼. 처음에는 정말 약간 얼떨떨할 정도로 정신적인 쇼크를 받았었다. 정인을 어떻게 연기해야 되는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 그 많은 대사를 외운 특별한 비법이 있나?
▲ 비법은 없다. 사실 외워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주고 받는 대사가 아니라 나 혼자 몇 페이지를 쭉 얘기하니까 어렵다. 정인의 시선으로 본 세상의 불만이 논리적으로 나오는데, 정말 외워지지가 않더라. 남의 생각을 공감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나는 일상의 경험이 정인보다 없으니까 다른 생각이 들더라. 그런 것들이 힘들었다. 그래도 정인의 사고를 이해하고 대사는 현장에서 내내 중얼중얼 했다. 입에 붙을 수 있도록. 말이 느린 편인데 정인의 말은 빨라서 대사를 씹기도 많이 씹었다. 매일 중얼중얼 중얼중얼 연습했다.
- 임수정의 장점. 목소리가 참 좋다. 임수정이 했기에 정인의 독설이 듣기 싫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 감사하다. 목소리는 바꿀 수가 없다. 타고난 성대가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부모님께 물려받아야 한다. 저희 부모님이 목소리가 다 좋다. 엄마도 여자 목소리치고는 중저음인데 나긋나긋하게 말씀하시는 게 듣기 좋다. 아빠도 목소리가 굉장히 좋으신 편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배우로서 중요한 하나를 갖고 태어난 거니까 감사하다. 가수도 그렇고 배우도 그렇고 말로 전달을 해야 하니까 목소리가 되게 중요한 부분이다.
- 워낙 동안이라 20대 임수정에게는 정인 같은 역할이 안 들어왔을 것 같은데?
▲ 맞다. 20대에 이 작품을 만났으면 어떻게든 연기를 잘 하려고 하긴 했을 테지만 정인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어렵지 않았을까. 30대 같은 세대다 보니까 맞는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30대가 좋다. 스스로에게도 솔직해지고 좋은 모습이든 단점이든 상대방에게 툭 하고 말할 수 있는 오픈마인드가 되는 것 같다. 더 열려진다고 할까. 30대라 그런 정인 캐릭터도 푹 던져도 연기할 수 있는 거다. 막 계산하지 않고. 정말 촬영할 때는 정인이 돼서 짜증 수치가 10으로 올라갔다. 굉장히 히스테리컬해졌다. 오죽했으면 이선균 오빠가 "짜증 좀 내지마. 나 같아도 이혼해" 계속 이랬다. 하하.

-실제 모습이 정인과 비슷해졌다는 건가?
▲ 그렇게 되더라. 잔소리꾼 아내 역을 하다 보니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남편한테 하듯이 진짜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잔소리를 하더라. 또 선균 선배는 워낙 말수가 없고 좀 무뚝뚝한 타입이라 두현과 좀 닮은 구석이 있더. 무심하고 마음은 이 만큼인데 겉으로 애정 표현은 잘 안 하는 편인게 그렇다. 그래서 잔소리를 많이 했다. 류승룡 선배는 진짜 극중 성기처럼 "수정이 그렇구나"라고 얘기도 잘 들어주고, 조금이라도 추우면 먼저 담요를 갔다주시는 식으로 잘 챙겨준다. 선균 선배는 그 모습을 쓱 보고 '나는 저런 걸 못하겠어'라고 말하고. 영화 캐릭터들이랑 다 비슷하지 않나. 신기했다. '우리 셋은 정말 딱이다, 다 닮았다' 이렇게 서로서로 인정하고 이랬다.
- 정인과 임수정은 어떤 점이 닮았나?
▲ 정인은 100% 솔직하고 나는 주관이 뚜렷하다. 자기 의견을 정확하게 피력하는 것이 닮았다. 그런데 정인을 연기하고 나니까 더 솔직해 진 것도 있다.나도 모르게 싫은 소리가 툭툭 나오더라. 예전에는 타인을 배려하면서 해야 될 소리도 몇 번 돌려 돌려 상대방이 상처 안 받게 말했는데, 이제는 어느 순간 먼저 말이 나와 있더라. 그럴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랐다. 그런데 정인이 한 여자로서, 그 자체로 매력이 있지 않나. 할 말을 돌려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면모가 나쁜 점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 영화 속 수많은 정인의 독설 중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무엇이었나?
▲ 직장 상사 아내들 앞에서 정인이 '예의만 지키면 되고, 눈치는 안 봐도 되는 것 같다'라고 하는 부분. 사회 생활 중에서 가장 큰 공감이 가는 얘기다. 서열이나 나이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소중히 지키려는 정인의 신념은 굉장히 공감이 되더라. 대부분의 아내들은 꾹 참고 내조하니까 답답한 부분이 있을 거다. 정인을 연기하며 여자로서 속 시원한 부분도 있었다.
- 영화 속 하의실종 패션이 인상적이다.
▲ 시간이 없어 다리 하체 운동만 했다(영화 시작 한 달여전에 투입됐다). 촬영 틈틈히 운동을 했다. 하의가 안 입혀줘 어찌나 시원하던지 하하. 정인이가 엉덩이를 긁는다던가 하는, 노출 부분이 있으니 힙 운동과 다리 쪽을 틈대로 한 것 같다. 정인이가 비쩍 마른 느낌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비쩍 마른 몸은 정인을 살리는 데 도움이 안될것 같더라. 정인이가 요리도 잘 하고 아름답고 섹시한 여잔데. '나의 섹시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고민했다. 섹시를 위해서 몸매 관리를 들어가야 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영상을 보니 만족하나?) 짧은 시간에 비해서는 괜찮은 것 같다.
- 회사를 키이스트로 옮기고 첫 작품이다. 대표 배용준을 만났던 소감을 들려달라.
▲ 새 식구를 만나고 함께 일해서 좋다고 하시더다. 실제로 뵈면 자상하고 친근하고 굉장히 친절한 스타일이다. 인간미 넘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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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