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노출'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것도 모든 사람이 나의 몸을 본다는 것을 알게 되는 '노출'이란 어떨까. 아무래도 쉽지만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시대가 많이 자유로워지고 바뀌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여성의 노출에 민감한 우리 시대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우'에게 있어서 '노출'이란 어떤 의미일까. 약간의 망설임은 있을 수 있겠지만 만약 작품이 좋고 그 캐릭터가 배우의 마음을 흥분시킨다면 '노출'은 '연기'의 한 부분으로 보일 것이다. 그것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의 마음자세다.
영화 '후궁:제왕의 첩'에서 지난 25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OSEN과 만난 조여정은 '여자'이기에 앞서 진정한 '배우'였다. 노출보다는 감정연기가 걱정이 됐다는 말과 함께 '후궁'을 본 관객들이 '배우 조여정'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된다는 심정을 전했다.

"원래는 긴장을 잘 안하는 성격인데 지금 태평하지는 않아요. 긴장이 많이 돼요. 작품이 너무 좋은 작품이란 건 알기 때문에 저도 자신있게 권해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 '조여정'에 대해선 긴장되네요. 감독님 작품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고 메시지 자체도 너무 좋은데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어떻게 다가올지가 걱정이에요."
그는 노출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조여정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방자전'에 이어 또 다시 파격적인 노출을 하게 된 '후궁'에 출연하면서 자칫하다간 '노출하는 배우'라는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 그러나 조여정은 그런 걱정들보단 노출 연기를 하면서 감정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제일 컸다고 밝혔다. 천생 배우였다.

"이미지가 굳어질까봐에 대한 걱정은 안 했어요. 다만 노출신을 연기할때 '잘 할까'에 대한 그 걱정이 앞섰죠. '그 감정 연기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 걱정이 제일 컸어요."
조여정이 '후궁' 속 맡은 화연이란 인물은 궁궐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해야만 했던 비련의 여인이다. 순수한 사랑을 했던 소녀에서 독한 마음을 품은 여인으로 변하기까지 화연은 수많은 감정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 변화들이 절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조여정은 이것이 화연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제게 왔던 캐릭터 중 가장 위-아래로 변화가 길고, 많은데 크게 드러내면 안되는 인물이었어요. 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작품이었죠.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어요. 해내보고 싶었어요. 잘할진 모르겠는데 이걸 해내면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웃음)."
영화 곳곳엔 조여정의 연기력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배치돼있다. 특히 극중 화연이 아버지를 잃고 오열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 그 장면이 너무나 인상깊었다고 전하자 조여정은 촬영 당시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만큼 촬영 당시 그 감정에 몰입해 있었던 것.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제가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라 생각만으로도 '어떻게 될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 속에서 화연은 늘 꼿꼿하게 등장해요. 그런 화연이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장면이 바로 그 장면이죠. '만약 아버지를 잃는다면 어떤 상태가 될까, 사람이 동물에 가까워 지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상상했어요. 책을 받았을때부터 '오열하는 화연' 이렇게 써있는데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했어요. 지금껏 작품을 해오면서 오열하거나 운 적도 많았지만 거의 사랑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한 오열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엔 좀 차원이 다른 오열이었죠. 그래서 제가 해본 것 중에 가장 제가 잘 해내보고 싶은 '오열'이었어요. 관객분들이 저에게서 보지 못한 모습, 상상하지 못한 모습 그런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요."

조여정에게 '사극'이란 남다른 장르일터. 아무래도 '방자전'을 통해 대표작을 남겼기 떄문이다. 게다가 현대와는 다른 말투, 생소한 단어들로 '연기하기에 훨씬 어렵다'는 인식을 가진 사극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는 타이틀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 '방자전'이후 자신이 또 사극을 하게 될지 전혀 몰랐다는 조여정은 사극보다는 현대극이 더 어렵다는 마음을 전했다.
"또 사극 제의가 들어온다면 저도 제 마음을 아직 모르겠어요. 사실 '방자전' 끝나고 또 사극을 할 수 있을까 전혀 몰랐거든요. '후궁'을 선택할때 그냥 하고 싶은 작품이 생긴 것이지 사극이냐 현대극이냐 장르를 생각하지는 않았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현대극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구나 쓰느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대극에서 연기가 어색하면 금방 티가 나니까요. 사극에서는 발음으로 의미 전달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식을 하고 있어요. 안 쓰는 말을 쓸 때가 있으니까요. 사극 단어들을 할 때는 유독 신경을 쓰죠. 그 단어들이 제대로 들리게 해서 의미전달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후궁' 속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한 조여정은 아무래도 노출 장면을 위해 몸매 관리에 신경을 썼을 법했다. 그러나 막상 영화 촬영을 시작하면서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말을 전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조여정의 몸매는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기 때문.
"초반에야 당연히 준비를 하죠. 그리고 배우들은 노출이 없어도 작품 들어가기 전엔 다 준비를 하니까요. 그런데 촬영에 들어가면 그럴 시간이 없어요. 일단 밤을 새니까 잠을 자야하니 운동할 시간이 없는거죠. 촬영 들어간 다음부터는 고민과 예민함과 집중해야 될 것들에 대한 생각때문에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게 돼요. 평상시에 운동을 할 때는 쉽게 질리지 않는 저만의 노하우로 운동을 하곤 해요. 어느 날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가 또 어떤 날은 요가를 하고, 어떤 때는 자전거를, 어느 날은 수영을 하면서 질리지 않게 운동을 하는 거죠. 운동을 질리면 못해요."
'후궁'에는 가질 수 없는 화연을 원하는 비운의 주인공 성원대군 역 배우 김동욱이 출연한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찰떡호흡을 과시한 두 사람은 실제로 서로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여정은 노출 장면이 있어서 의지를 한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어서 의지를 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호흡은 최고였어요. 힘든 신을 찍어서 의지가 된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어서 의지가 된 것이에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의지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어요(웃음)."
그는 '후궁' 연출을 맡은 김대승 감독과의 호흡도 전했다. 조여정이 전한 김대승 감독은 그야말로 '멋쟁이'였다. 늘 조여정의 곁을 지키며 많은 힘이 돼줬다고. 촬영장에서 김대승 감독의 별명이 '화연 친오빠'였을 정도였다며 조여정은 김대승 감독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장서 배우사랑이 어머어마하시고 별명이 '화연이 친오빠'일 정도로 영화 내내 화연의 감정을 계속 따라가 주셨어요. 제가 울면 감독님도 가슴 아파해 주시고요. 멋진 분이세요. 현장에서 뜨겁고 열정적이고 정말 배우들을 사랑하시고 너무 아끼시고 늘 배우들을 살피시고. 이렇게 배려할수가 없어요. 감독님이 저에게 했던 첫 약속이 '힘든 길을 같이 가자고 해놓고 절대 혼자 힘들어하게 두지 않겠다'라고 하신 거에요. 저는 그때 말 자체로도 됐다고 감동이라고 했는데 정말 옆에 항상 감독님이 계셨어요. 다음 작품을 함께 하자고 제안 해주신다면 흔쾌히 할 거에요(웃음)."
'혹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조여정은 기다렸다는 듯 '백치미'를 외쳤다. 그런 구석이 은근히 있다며 '후궁' 촬영장에서도 주위 동료들에게 백치미 넘치는 역할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피력해왔다고.
"못된 애도 해보고 싶어요. 못됐는데 말투나 표정이 못된 것 말고 겉으론 안 그런데 못된 애 있잖아요. 무서운 사람이요. 아니면 백치미 넘치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후궁' 촬영하면서 선배님들한테 '저 백치미 넘치는 역할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그랬어요(웃음). 사실 저한테 그런 구석이 있거든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다 모르까 '그게 뭐야?'이러거든요(웃음). 대신 일 얘기할 땐 진지해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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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