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D-30] 최영래, 런던 향해 금빛 방아쇠 당긴다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06.27 06: 59

"원래 긴장을 많이 해서요. 지금도 손에 땀이 흥건해요".
인터뷰에 긴장한 내색이 역력한 동안의 사수는 두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하지만 손바닥에 배어난 식은 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손 여기저기에 자리잡은 굳은 살이었다. 하루에도 수 십, 수 백 번씩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국가대표의 꿈을 키웠던 최영래(30, 경기도청)는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긴장감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20일 충북 진천에 위치한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사격 올림픽대표팀 선수단 미디어데이에서 만난 최영래는 언론의 관심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듯 보였다. 경력 14년 차의 베테랑 사수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처음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에 처음으로 선발됐던 건 3년 전이에요. 하지만 그 때는 태극마크를 3개월 밖에 달지 못했죠".
남자 권총부문에 출전하는 최영래의 이름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대학시절 한국 사격의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남자 권총은 이미 진종오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었던 데다 또다른 한 자리는 이대명(24, 경기도청)이라는 걸출한 신예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최영래가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것은 2010년 여름이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겨냥한 하반기 국가대표 64명에 선발된 최영래는 진종오, 이대명과 함께 10m 공기권총 부문에 이름을 올리는 기쁨을 맛봤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최영래의 국가대표 경력은 3개월에서 끝났다. 태극마크를 연장하는 데 실패한 최영래는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손끝에서 화약냄새가 가시지 않을 정도로. 런던올림픽 대표 선발을 위한 국가대표 선발전은 그래서 최영래에게 있어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1차부터 6차까지 치러진 2012 사격 국가대표 선발전은 유례 없이 험난한 일정이었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 진종오조차 "힘든 시간이었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신적, 체력적 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2차 선발전 50m 권총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최영래는 6차 대회에서 합계 664.4점(본선 566점+결선 98.4점)을 쏴 다시 한 번 정상에 오르며 진종오와 함께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또한 10m 공기권총에서도 5차 선발전 1위(690.3점, 본선 588점+결선 102.3점)를 기록하며 이대명을 누르고 감격의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단 한 발에 점수가 달라지고 순위가 뒤바뀌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며 최영래는 몸무게가 6kg이나 빠지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긴장에 시달렸다. "그렇게 긴장되는 선발전은 처음이었다"고 돌이켜 본 최영래는 "주변에서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더라"며 웃었다.
이토록 어렵고 힘들게 따낸 태극마크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최영래의 선발이 결정된 순간은 곧 이대명의 탈락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50·10m 공기권총에는 단 2장의 쿼터가 배정됐기 때문이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에 빛나는 이대명은 선발전의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쉽게 국가대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태극마크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벌인 사이지만 동시에 같은 실업팀(경기도청) 동료이기도 한 후배의 탈락에 최영래는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는 좋았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같은 팀 동료기도 하고, 참 복잡한 기분이었죠".
진종오의 후계자로 불리는 이대명의 대표팀 탈락은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이대명에 비하면 최영래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도 아쉬움을 증폭시킨 요소였다. 최영래로서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최영래의 태극마크는 그가 노력한 대가이자 열심히 흘린 땀의 대가 그 자체였기에 기뻐할 자격은 충분했다.
이대명 역시 팀 동료이자 선배인 최영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영래는 "대명이랑 같은 방을 쓰거든요. 대명이가 많이 도와줬고 조언도 해줬어요. 여러 모로 복잡하기도 한 마음이었지만 저도 열심히 했으니까요"라며 이대명의 몫까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드러냈다.
  
최영래는 올림픽 예행연습으로 치렀던 뮌헨 월드컵 사격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하기 위해 부족했던 최소 기준 기록(MQS, Minimum Qualification Standard)을 통과하며 올림픽을 향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원래 긴장을 많이 해서요. 지금도 손에 땀이 흥건해요".
김선일 공기권총 코치는 최영래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선수다. 하지만 마음이 여려서 긴장을 잘한다. 최고의 컨디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긴장을 잘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서 경기에 임할 필요가 있다는 것. 최영래 역시 자신의 단점에 대해 "긴장할 때 빨리 풀지 못한다"고 답했을 정도다.
긴장을 풀어야한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만 갔다. 태극마크의 무게가 더해지자 긴장감은 연일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과녁에 집중하면서 최영래는 긴장감을 털어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 긴장을 받아들이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사격의 대선배 진종오와 김선일 코치도 최영래가 긴장감을 다스릴 수 있게 된 데 큰 역할을 했다. 선발전 이후 태극마크를 달고 뮌헨월드컵에 참가한 최영래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국제대회에 긴장을 풀지 못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헤매고 있는 최영래를 도와준 이는 바로 진종오. 국제대회가 낯선 후배를 위해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주고 배려해준 진종오에 대해 최영래는 감사의 마음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진종오 선배요? 대표팀 들어오기 전부터 꼭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보고 배우고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선배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랜 프로 생활에서 묻어나는 여유와 베테랑으로서의 노련함, 국제대회를 제패한 챔피언의 기량까지 갖춘 진종오는 후배들이 이구동성 '가장 닮고 싶은 선배'로 손꼽는 선수다. 최영래 역시 진종오의 자기관리와 노련함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자친구도 실업팀에서 사격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선발전 때 민감하고 예민해져서 신경질을 내고 해도 잘 받아주고 이해해줘서 고마웠죠. 대표 선발된 후에도 다른 말은 안 했어요. 가서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라, 제가 느낄 긴장감을 아니까 그렇게만 격려해주더라구요".
총을 손에 잡은 이후 최영래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최고가 되는 것.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두고 그 아래에 하나 하나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 매번 목표를 깰 때마다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한다는 최영래는 "그 동안 꿈이었던 국가대표가 됐고 올림픽에도 나가게 된 만큼 메달보다도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그리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선수이고 싶다"며 당당하게 올림픽 출사표를 던졌다.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각오로 금메달 사냥에 나선 한국 사격대표팀. 치열한 선발전을 거치고 살아남은 최영래가 런던에서 금빛 희망의 과녁을 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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