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몰아붙여 근성을 끌어내야 본연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잘 하고 있어’, ‘그렇게 쭉쭉 뻗어 나가자’라고 기를 북돋워 줄 때 더욱 힘을 내는 이도 있고 그 외에도 수많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개개인의 특성이 있는 만큼 행위에 있어 법과 도덕성의 기준을 어긋나지 않는 한 사람의 특징은 ‘옳고 그름’이 아닌 ‘다르다’라는 말로 판별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여기 한 때 팀에서 버려질 뻔 했던, 코칭스태프도 포기하다시피 했던 선수가 제 기량을 제대로 내뿜고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의 10년차 우완 노경은(28)이 그 주인공인데요. 올 시즌 팀의 셋업맨으로 시즌을 시작했던 그는 6월부터 팀의 선발진 한 자리를 꿰찬 뒤 선발로서만 6경기 3승 1패 평균자책점 2.45(9일 현재)로 맹활약 중입니다. 그의 현재 시즌 성적은 30경기 5승 3패 7홀드 평균자책점 3.03입니다.
8일 잠실 LG전에 선발로 나선 노경은은 6⅔이닝 동안 7피안타(탈삼진 5개, 사사구 4개) 3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5승(2패) 째를 수확했습니다. 선발 전향 후 6경기서 모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며 제 몫을 확실하게 해내고 있는 노경은은 한 때 ‘실패한 선발 유망주’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자칫 야구를 손에서 놓아버릴 뻔 했던 투수입니다.

▲ 부상과 수술, 제구 난조에 온라인 마찰까지
초고교급 유격수로 평가받던 박경수(LG, 공익근무 중)와 함께 성남고의 주축으로 활약한 노경은은 당시 광주일고 김대우(롯데), 동산고 송은범(SK) 등과 함께 투수 최대어 중 한 명으로 꼽혔습니다. 두산은 노경은을 1차 지명으로 선택하면서 3억5000만원의 계약금을 손에 쥐어줬고요. 그만큼 기대치가 컸던 유망주입니다.
2003년 3승, 2004년 20경기 2승을 올린 노경은은 2004시즌 후 병풍에 휘말려 공익근무 복무를 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경은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여부를 놓고 구단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선수 측은 수술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고 구단은 수술 없이 그대로 병역 의무를 해결하라는 방침이었습니다. 워낙 노경은이 강경하게 맞서 자칫 임의탈퇴 수순까지 밟을 뻔 했던 사건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대에 올라 재활 기간 동안 병역 의무를 해결한 노경은은 이후 4,5선발 후보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150km을 손쉽게 넘기는 빠르고 묵직한 직구가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 벗어나는 곳으로 날아가며 주자를 쌓고 투수코치에게 공을 건넨 뒤 고개를 떨구고 덕아웃으로 향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노경은입니다. 이는 대다수의 파이어볼러 유망주들이 제구력을 다잡지 못해 자주 겪는 일이기도 하고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노경은은 1군에서 3년 간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침체기를 걸었습니다. 여기에 2009시즌 도중에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 상에서 팬들과 설전을 벌이는 바람에 잠실구장에 그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경은은 그로 인해 다음날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2군에서는 타자들을 농락하는 활약으로 2009년 네덜란드 야구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했던 것이 그나마 노경은에게는 좋은 일이었네요.
2010년 노경은은 자신의 장점이던 묵직한 구위까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발목 부상 등으로 인해 자기 투구 밸런스를 잃어버리며 최고 구속도 140km를 살짝 넘는 경우가 많았네요. 시즌 막판에는 허리 부상까지 겹쳐 구단에서도 노경은에 대한 기대치를 거의 접었던 시점입니다.
그 기간 동안 노경은은 후위 선발 후보로 훈련해 오며 시즌 개막을 기다렸으나 정작 1군에서의 실적이 미약했습니다. 그를 어떻게든 1군 주전력으로 만들어보려고 다그치던 코칭스태프의 기대감도 한없이 0에 가깝게 수렴해갔고요. 다행히 2010시즌 후 방출은 면했습니다만 2011년 일본 미야자키 전지훈련 명단에 노경은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 우연한 기회와 은사의 1군행, 그리고 믿음
2011년 전지훈련 출발 직전 당초 합류 명단에 있던 우완 박정배(SK)가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제외되었습니다. 박정배를 대신해 이름을 올린 선수는 바로 노경은. 노경은은 전지훈련 기간 동안 다시 구위를 찾고 제구력까지 나아진 모습을 보이며 ‘계투 추격조로 쓸 만한 투수’라는 팀 내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5월까지도 안정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던 노경은은 6월서부터 추격조, 셋업맨, 마무리까지 도맡는 계투진 마당쇠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6월은 현재 두산 감독직을 맡고 있는 김진욱 당시 불펜코치의 1군 합류 시기와 맞물립니다. 김 감독은 노경은이 ‘2군용 투수’로 전락하는 듯 했던 시기 그를 다잡아 주던 지도자입니다.
수 년 전 두산 2군 훈련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끝나고 김 감독의 주도 하에 투수들끼리 1인 줄다리기식 ‘몸씨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노경은은 좌완 진야곱과 함께 손쉽게 승리를 따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두각을 나타냈는데요. 김 감독은 그 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야곱이가 어깨 힘이 좋다면 경은이는 몸 전체에 타고난 힘이 워낙 좋아요. 특히 손목 힘이 진짜 좋은 데 자기가 불리해지면 팔 스윙이 작아지면서 그냥 손목만 이용해서 던지려고 해요. 그러니까 계속 공이 엇나가는 거지. 마운드에서 자기 마인드를 컨트롤하는 능력도 더 보완해야하고”.
김 감독의 1군 합류 후 노경은은 팔꿈치 통증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할 때까지 계투진에서 분전했습니다. 그 해 성적은 44경기 5승 2패 3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5.17. 평범해보이지만 이기는 경우를 별로 접하기 힘든 하위팀의 전형적인 마당쇠 노릇을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김 감독 뿐만 아니라 다른 선후배들도 노경은을 다독이며 힘을 주고자 노력했는데 특히 팀 선배 이재우는 노경은에게 뜻 깊은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재우형이 그 이야기를 했어요. ‘내 공이 통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감이 확 올라온다고요. 그리고 그게 몇 년 간은 꾸준히 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믿어야지요. 그 이야기”.(웃음)

▲ 격려와 자신감, 당당한 선발이 되다
모든 구단의 코칭스태프들이 누구나 선수들의 기량 발전과 유지를 위해 힘씁니다. 이 가운데 노경은은 정명원 투수코치로부터 포크볼을 배웠습니다. 지난 시즌 후 김진욱 감독 체제로 재편된 뒤 넥센 퓨처스팀 감독직 대신 두산 투수코치로 야구인생에 도전장을 던진 정 코치는 노경은에게 “직구-슬라이더 투 피치 말고도 떨어지는 변화구를 갖춰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포크볼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지금 선발로 맹활약 중인 노경은의 새 주무기 중 하나는 바로 포크볼입니다. 지난 6월 29일 롯데전서 7이닝 1실점 선발승을 거둔 후 정 코치는 노경은에게 “그 정도 구위면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는 해야지. 뭐 7이닝 1실점했다고 인터뷰를 해”라며 웃었습니다. 엄한 아버지 이미지의 정 코치이지만 정 코치 또한 투수들을 유머러스하게 가르치는 지도자입니다.
그 말에 노경은은 방긋 웃으며 “정 코치님이 포크볼을 가르쳐주신 덕분에 이제는 확실히 던질 수 있는 공이 되었어요. (안)규영이도 지금 거의 포크볼 완벽 장착 단계니 기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코칭스태프에 대한 감사 뿐만 아니라 후배도 잘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인 노경은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는 노경은에게 제구가 되지 않는다고 엄하게 다그치는 분위기는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따끔하게 다그쳐서 선수에게 자극을 주는 방법도 분명 효과적이고 좋은 방법이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엄한 지도를 더 자주 볼 수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혼을 내기보다 “넌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높여주는 방안이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다르다’라는 개념 아래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교육론의 성공 예가 많아지는 이유입니다.
노경은의 경우는 압박보다는 격려가 더 큰 효과를 가져다주는 스타일의 투수로 볼 수 있습니다. 한 때 야구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 자괴감에 빠져있던 노경은은 자신의 구위를 칭찬하고 제구력과 마인드 컨트롤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위의 이야기에 점차 자신의 무기를 개발하고 더욱 자신 있게 공을 던지며 새로운 야구인생을 걷고 있습니다. ‘너는 틀렸어’가 아닌 ‘너는 남 다르다’라는 마음. 그를 격려한 사람들의 이 마음은 노경은의 야구 인생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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