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풀리는' 김연경 문제, 장기화?… 변수는 올림픽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07.17 09: 56

김연경(24, 페네르바체)이 흔들리고 있다. 이적 문제를 둘러싸고 심화된 갈등은 이미 루비콘강을 넘었다.
쟁점은 명확하다. 일차적으로는 이적 문제, 이차적으로는 원 소속 구단인 흥국생명과 관계에서 빚어지고 있는 마찰 때문이다.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두 가지 문제는 그동안 조용하게 숨죽이고 있던 여자배구판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둘 사이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일이었다. 한국배구연맹(KOVO)의 선수등록 마감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흥국생명은 "김연경에 대한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김연경이 원 소속구단인 흥국생명과 협의 없이 무단으로 에이전트를 통해 해외 이적을 추진하면서 현 KOVO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김연경의 에이전트사인 인스포코리아 측이 이틀 후인 4일 곧바로 반박에 들어갔다. 흥국생명 측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흥국생명과 김연경의 계약이 이미 종료되었기 때문에 흥국생명은 단지 '이전 소속구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김연경의 이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대한배구협회(KVA)에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을 요청한 것이다.
에이전트 문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결국 쟁점은 김연경의 현재 신분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 흥국생명 측은 김연경이 소속팀에서 6시즌을 뛰어야 자유계약선수로 풀리는 만큼 아직 김연경은 흥국생명 선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연경 측은 흥국생명과 계약기간은 6월 30일부로 만료됐으며 자유계약선수 자격 취득과 관련 흥국생명 소속으로 임대되서 일본과 터키에서 뛴 2시즌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되면 총 6시즌의 규정을 채울 수 있어 자유계약선수로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문제가 불거지자 갈등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서로간의 상치된 입장은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했고 주장을 물리지 않으며 공방은 끝도 없이 길어지고 있다. KOVO와 대한배구협회 역시 양 쪽의 눈치를 보느라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임태희 대한배구협회장은 "배구 발전과 국위 선양이 가능한 방향으로 김연경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KOVO와 대한배구협회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이번 김연경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6일 인스포코리아가 먼저 김연경의 페네르바체 계약 연장을 발표한 것이다. 인스포코리아는 "김연경과 터키 페네르바체가 계약기간 2년에 약 30억 원(연봉 15억 원)의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하며 "세계 여자배구 역사상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시즌 페네르바체에서 뛰며 CEV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터키리그 전승 우승을 일궈낸 주역인 김연경은 향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 "배울 수 있고 적응하기 좋은 구단에서 뛰고 싶다. 현재는 터키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말대로 결국 터키리그에 남고자 페네르바체 잔류를 선택한 것. 실제로 페네르바체는 구단 관계자가 직접 한국을 찾아오는 등 김연경의 재계약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또한 17일(한국시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김연경과 재계약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발빠르게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소식에 흥국생명은 곧바로 "김연경 선수의 터키 페네르바체행과 관련한 기사는 사실 무근이며 구단의 승인 없는 계약은 무효"라고 반박했다. 흥국생명의 입장은 "이는 김연경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프로배구 전체의 문제이며 능력을 가진 선수가 해당 구단 승인없이 해외에서 뛸 수 있게 된다면 지반이 약한 한국배구는 뿌리부터 뒤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흥국생명 측은 "앞으로 김연경 선수와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해외 진출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사실상 김연경 측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낼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갈등이 심화되면서 양측 모두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지만 어느 한 쪽도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한배구협회가 문제 해결의 키를 잡게 되면서 이번 김연경 문제 해결의 변수는 올림픽이 될 전망이다. 올림픽이 끝나기 전에 문제를 매듭짓는다면 김연경의 승리, 올림픽이 끝난 후까지 문제가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면 흥국생명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김연경으로서는 올림픽 개막 전까지 문제를 마무리짓는 편이 좋다. 마음 놓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자산'인 김연경을 위해서 대한배구협회가 국제이적동의서 발급에 협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36년 만의 메달을 노리는 여자배구대표팀에서 김연경의 존재감은 그만큼 압도적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여론이 김연경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점도 대한배구협회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선수가 편히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책임 의식은 김연경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명제로 이어진다. 김연경 역시 "런던올림픽 전에는 이적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가급적 올림픽 개막 이전에 문제를 매듭짓고 싶어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흥국생명은 문제를 길게 끌고 가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올림픽이라는 특별한 시기가 지난 후라면 김연경과 협상을 진행하는 데 있어 한결 수월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끝난 후라면 대한배구협회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가능성도 높다.
여자배구 올림픽 출정식에서 만난 김연경은 특유의 씩씩한 얼굴로 "협회 차원에서도 많이 걱정하고 있고 제 입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고 계셔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웃어보였다. 김연경의 말마따나 이미 문제 해결의 열쇠는 대한배구협회로 넘어간 상황이다. 양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조정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된 대한배구협회가 신속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연경은 17일 오후 1시 20분 비행기에 몸을 싣고 런던으로 떠난다. 그의 눈 앞에 있는 가장 큰 목표는 '어게인 1976'이다. 36년 전 메달을 따냈던 여자배구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목표와 책임감이 김연경의 어깨에 실려있다. 그러나 런던 입성을 앞둔 김연경의 마음은 현지 날씨처럼 한없이 궂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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