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운장' 전종구 대표, 축구특별시 대전의 부활을 이끈다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07.26 22: 27

고전 중의 고전 삼국지에는 "용장은 지장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이기지 못하며 덕장은 운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용감한 장수보다 머리 좋은 장수가 뛰어나고 머리 좋은 장수보다는 덕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장수가 뛰어나지만 결국 최고의 장수는 운을 제때 타고난 장수라는 뜻이다.
지난 5월 대전 시티즌에 새로 부임한 전종구 대표이사는 취임과 동시에 염홍철 대전 시장으로부터 별명 하나를 받았다. "전 대표는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럭키가이에요". 전 대표의 부임과 동시에 기나긴 부진에 빠져있던 대전이 강적 수원을 물리치고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대전의 시즌 초반은 암울했다. 개막을 앞두고 반드시 8위 안에 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초반부터 일이 꼬였다.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안팎으로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김광희 전임 대표와 '레전드' 최은성 간의 불화가 시발점이 되어 결국 최은성은 전북으로 팀을 옮겼고 김광희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 경기에서 서포터스의 마스코트 폭행사건으로 징계를 받았고 팀은 6연패의 수렁으로 굴러떨어졌다. 10라운드를 마친 시점에서 대전의 성적은 1승9패, 무승부조차 없는 승점 3점의 꼴찌였다.
김광희 대표가 물러난 자리는 공백으로 비어있었다. 공개모집을 통해 신임 대표를 물색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결국 2차모집까지 실시한 끝에 5월 24일 단독후보였던 전종구 목요언론인클럽 회장이 대전 시티즌 12대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취임일은 24일이지만 전 대표는 휘청거리는 대전을 살리기 위해 사실상 한 달 전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5월 5일 강적 수원을 홈에서 2-1로 제압하고 기적같은 승리를 거뒀을 때도 전 대표는 경기장 한쪽 구석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5월 11일 포항전 때는 직접 차를 몰고 포항까지 내려가 경기를 지켜봤다. 0-0 무승부였다. 전 대표는 이 팀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 시민구단의 맏형 대전, 존재 의의를 되새기다
"시민구단의 존재 의의는 두 가지다. 승패를 떠나 대시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프랜차이즈를 육성해 지역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다".
전 대표의 비전은 확고했다. 대전 출신으로 누구보다 지역 사회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는 구단 운영을 위한 사고의 기반을 시민구단의 존재 의의에서 찾았다. 시민구단은 어디까지나 시도민을 위해 존재해야하며 시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전 대표의 생각이다.
전 대표의 이러한 생각은 '축구특별시'로 불렸던 대전의 역사와도 맞닿아있다. 1997년 창단된 대전은 2006년 시민구단으로 전환되며 시민구단의 '맏형' 격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대전시민들의 축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대전월드컵경기장이라는 환경이 대전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겼다.
하지만 대전의 성적은 2001년 FA컵 우승 이후 추락 일로를 걸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해 승부조작에 휘말리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여기에 올 시즌부터 시행되는 스플릿 시스템은 대전을 포함한 시민구단을 한층 더 절박하게 만들었다.
전 대표는 "시민구단의 존재 의의는 어디까지나 시민을 위한 대시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기업구단과 시민구단의 격차가 너무나 크게 벌어진 이상 지금과 같은 스플릿 시스템에서 시민구단이 지향하는 목표는 '우승'이 아닌 '생존'이 될 수밖에 없다.
시민구단이 생존을 위한 성적 경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자연히 승패에 연연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전 대표는 시민구단의 존재 의의는 시민을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과학도시인 대전의 이미지와 대전월드컵경기장이라는 최고의 환경을 '놀이터'로 결합시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지역 인재 양성과 축구 발전을 위한 프랜차이즈 정책에도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유소년팀을 꾸준히 육성해서 지역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만들어야 '이웃집 스타'를 보러 오는 시민들이 늘어난다. 유소년팀에서 시작해 대전에 입단해서 활약하고, 은퇴한 후 다시 대전의 축구 인재들을 가르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이 확고한 만큼 정량적인 목표도 확실하게 세워뒀다. 현재 대전의 입장수익은 전체의 7% 가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3년 안에 입장 수익을 최고 30%까지 끌어올려 예산 구조에서 구단의 자립성과 재정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전 이사가 이끄는 대전의 목표다. 얼마 전 U-14 유소년팀을 창단한 데 이어 대전의 레전드 강정훈과 이관우 등을 불러모아 지역 유소년 축구 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 구단은 선수단을 위해 존재하는 지원 세력이다
"자율 경영, 책임 경영이 목표다. 각자 책임을 가지고 소신껏 일하라고 이야기했다.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책임도 져야 한다. 단단히 이야기해 뒀다. 구단은 선수단의 지원 세력이며, 모든 일은 선수단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전 대표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체육기자 출신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데 이골이 나있다. 그는 체육기자로서 쌓아온 경험과 인맥 네트워크를 통해 대전에서 '스포츠 외교'를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대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 대표는 구단 직원들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구단은 선수단을 위한 지원 세력이고 선수단이 중심이 되어야한다고. 책임을 가지고 소신껏 일하면 자신이 그들을 지원해 주겠다고 당부한 전 대표는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강조했다.
선수단 중심의 운영 방침은 확고했다. 시즌 초반 부진과 함께 경질설에 시달렸던 유상철 감독에게도 확실하게 언질을 줬다. "전투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 법이다. 내가 울타리가 되어주겠다. 해줄 수 있는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한 가지만 약속해 달라. 프로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이다.
전 대표가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프로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예로 든 전 대표는 "프로는 프로답게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잘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유 감독과 선수단이 해야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며, 선수들은 프로의 현장에서 프로답게 뛰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 대전은 추락하지 않는다, 잠시 주춤할 뿐.
"(스플릿이 갈리기 전까지)전반기 목표는 12등, 후반기는 9, 10등으로 마무리하겠다. 대전이 지금 다시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는 잠시 주춤할 뿐이다".
맹자는 명심보감에서 "스스로를 믿는 자는 남도 또한 그를 믿어준다"고 했다. 대전을 이끄는 운장 전 대표의 믿음은 그만큼 확고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 시련은 있을 수 있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뒷받침된 확신이다.
그런 그도 요즘은 간혹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유 감독이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경기를 보게 된다는 것. 대전은 지난 2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23라운드 경기서 원정팀 FC 서울에 0-2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대전은 5승4무14패(승점 19)로 1패를 추가하며 6경기 무승(2무4패)으로 최하위 탈출에 실패했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빠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의 악몽이 다시 찾아온 것만 같다. 5월 5일 수원전을 계기로 무패를 이어가며 상승세를 기록, 12위까지 올랐던 것도 잠시였다. 6월 27일 대구전 2-2 무승부를 시작으로 상주전까지 5경기 연속 무승(2무3패)에 시달리고 있다. 5, 6월의 상승세가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부진이다.
하지만 전 대표는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 대전의 컨트롤타워라고 자부하는 만큼, 전 이사는 팀이 패할수록 더욱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있다. 교통의 요지로 각광받으며 다양한 계층과 주변 도시가 밀집된 대전이라는 도시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축구특별시' 대전 시티즌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운장이라고 불러주면 나야 고맙지"라고 허허 웃은 전 대표는 "내가 온 게 대전에 운 좋은 일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대표이사로 있는 동안 헌신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공모로 들어온 최초의 전문인 대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대전 시티즌을 위해 일할 생각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힘든 계절을 보내고 있는 대전에 자신의 '운'을 불어넣겠다는 각오다.
'축구특별시' 대전의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고 스플릿 시스템이라는 혹독하고 가혹한 제도 하에서 시민구단의 존재 의의를 되새겨야하는 임무는 막중하다. 임기 3년을 이야기했지만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그러나 고군분투 중인 전 대표와 대전 시티즌의 미래가 풍성한 결실을 맺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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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티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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