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쇄살인, 그리고 남자들의 잔혹한 사랑…뮤지컬 ‘잭더리퍼’
OSEN 이은화 기자
발행 2012.08.07 10: 18

사랑에 눈 먼 남자는 무섭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살인자와의 거래를 시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뮤지컬 ‘잭더리퍼’다.
‘잭더리퍼’는 체코 공연 원작의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하지만 새로운 뮤지컬 넘버를 추가하고, 대본과 무대를 완전히 새롭게 꾸며 창작에 준하는 재창작 작업을 거쳤다. 실제로 연출진과 배우들 모두 이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그럴 만도 하다. 원작 체코 아티스트 팀도 국내 공연을 본 후 되려 이 무대를 체코에서 그대로 올리고 싶어했다고 하는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이 공연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바로 실제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데 있다. ‘잭 더 리퍼’는 1888년 런던에서 최소 다섯 명의 매춘부를 엽기적으로 살해한 연쇄 살인범을 가리킨다. 사실 ‘잭’은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이름이 없는 남성을 가리킬 때 쓰는 이름이다. 이 살인마가 살인을 하던 시기는 과학 수사가 도입 되기 전 시대였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뮤지컬 ‘잭더리퍼’는 수사관 ‘엔더슨’의 사건보고를 통해 사건을 따라가는 수사극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퍼즐 게임처럼 서서히 맞춰가며 사건과 범인을 파헤친다.
이식 연구용 시체를 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온 의사 ‘다니엘’은 시체 브로커인 ‘글로리아’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위해 살인마 ‘잭’과의 거래를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잭’을 쫓는 수사관 ‘앤더슨’과 그의 옛 연인인 ‘폴리’, 돈이 최고라 여기는 기자 ‘먼로’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살리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 그리고 그들을 쫓는 자의 은밀한 동행으로 극은 절정에 다다른다.
공연은 특히 무대만큼이나 다채로운 넘버가 돋보인다. 공연의 메인 테마 곡이라 할 수 있는 ‘런던의 밤’은 매춘부 분장을 한 앙상블의 현란한 의상과 함께 조화를 이룬다. 이 넘버는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에 활력을 가져다 주며 동시에 연쇄 살인이라는 공연의 어두운 이면과 대조를 이루어 살인마의 잔혹한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킨다.
 
또한 ‘다니엘’이 ‘글로리아’와 사랑에 빠져 친구들 앞에서 당당히 그녀와 함께 할 것이라며 자신의 사랑을 노래하는 ‘이봐, 친구들아’와 그에 대한 답가이자, 자신의 심경을 드러낸 ‘글로리아’의 곡 ‘바람과 함께’는 사랑에 빠진 남녀의 절절한 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희망이 크면 절망도 크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가사가 한 여자의 설렘과 믿기지 않는 마음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더욱이 이는 그 뒤에 펼쳐질 잔혹한 진실의 전주곡이 되어 이들의 사랑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여기에 대극장 공연장을 최대로 활용한 ‘2중 회전 무대’는 한 무대에 두 공간이 존재하는 듯한 빠른 장면 전환을 담아내 관객들을 쉴 틈 없이 그대로 무대에 빠져들게 한다. 연신 이어지는 유쾌하고도 때로는 어둡고 웅장한 넘버는 2중 회전 무대와 어우러져 빠른 무대 전환과 전개를 보이며 관객을 흡입한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완벽하다. ‘다니엘’ 역의 엄기준은 그간 뮤지컬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 연기력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발산하며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불운한 남자를 완벽히 연기한다. 이미 다수의 뮤지컬 무대를 통해 검증된 노래 실력은 그의 연기력을 뒷받침 하는 강한 힘이 된다. ‘글로리아’와 역의 소냐는 놀라운 가창력으로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며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누구보다 눈에 띄는 이는 살인마 ‘잭’ 역의 김법래다. 음성변조를 한 것은 아닐까 싶은 정도의 깊고 낮은 그의 목소리는 살인마의 모습을 소름끼치도록 완벽하게 살려냈다. 돌아가는 관객들의 귓가에 가장 멤도는 멘트는 바로 ‘잭’의 “재밌군. 재밌어”가 아닐까.
무대가 흐르고 공연은 마침내 짜릿한 반전을 선사하며 잔혹한 진실을 보여준다. 뮤지컬 ‘잭더리퍼’는 8월 2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되며, 오는 9월에는 일본 도쿄 아오야마 극장 공연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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