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간 팀에서 가장 강한 선발진이 구축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반기를 4위로 마쳤던 두산 베어스가 선두 삼성 라이온즈에 두 경기차까지 다가설 수 있던 데에는 부쩍 강해진 선발진이 그 바탕에 있다.
두산은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한 주간 4승 1패로 상승세를 타며 시즌 전적 53승 1무 43패(13일 현재)를 기록하며 2위에 올라있다. 선두 삼성과는 두 경기 차에 4연승으로 상승세를 탄 3위 롯데와는 1경기 반 차.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위치이지만 전반기를 4위로 마쳤던 팀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부쩍 올라왔다. 두산의 후반기 전적은 12승 5패로 뛰어나다.
특히 한 주 간 4승 1패를 거두는 데는 선발진의 수훈이 컸다. 4승 중 3승을 올린 경기에서 선발 투수들이 모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다. 7일 대전 한화전서 6이닝 4실점한 더스틴 니퍼트도 4회 집중타로 인한 3실점을 제외하면 투구 내용이 좋았고 10일 잠실 SK전서 6회 박정권에게 만루포를 맞고 패전투수가 된 김승회도 5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던졌다.

지난 2010시즌까지의 두산 야구와는 거리가 있는 경기 내용이다. 원투펀치 급 투수들 정도를 제외하면 선발 투수가 6회 계투에 바통을 넘기는 모습이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보다 더 많은 편이던 두산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으로 범위를 넓혀도 2002년 게리 레스-박명환(LG)-빅터 콜 원투쓰리 펀치를 구축했을 당시보다 양과 질적으로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2007시즌에는 34승을 합작한 다니엘 리오스-맷 랜들 원투 펀치 의존도가 높았다.
김진욱 감독도 취임 초기 선발진 강화를 목표로 하면서 “3~5선발급 투수들이 5회 승리 요건이 가까워지면 상기된 표정으로 동요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올 시즌 단편적인 경기 승패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시즌을 치르며 기본적인 선발 투수들의 이닝 소화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마음을 넌지시 비췄다. 계투진 약화도 이유가 있었으나 현재만이 아닌 미래를 위해 배워가는 선발투수들이 이닝 소화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결국 올 시즌 장기 레이스에서도 큰 차질을 빚게 되기 때문이다.
전반기 좌충우돌 과도기를 거친 두산 선발진의 현재 페이스는 뛰어나다. 올 시즌 두산의 팀 퀄리티스타트 횟수는 56회로 단연 1위. 유일하게 현재까지 시즌 퀄리티스타트 50회 이상을 달성했다. 11승을 올린 니퍼트가 퀄리티스타트 15회로 전체 투수 가운데 공동 2위이며 9승을 올리며 젊은 에이스로 거듭난 이용찬이 13회 퀄리티스타트로 전체 6위이자 국내 선발 가운데서는 류현진(한화, 14회)에 이어 2위다.
시즌 초반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던 김선우와 시즌 중 계투에서 선발로 전업한 노경은은 나란히 9번의 퀄리티스타트로 전체 15위. 다승 선두 장원삼(삼성, 12승)의 퀄리티스타트 횟수가 8번으로 김선우와 노경은보다 1회 더 적은 공동 19위인 동시에 5선발 김승회의 퀄리티스타트 횟수와 같다. 결과적으로 두산 선발 5인은 퀄리티스타트 상위 20걸에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타 팀 선발진에 비해 투수들이 골고루 제 몫을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재미있는 것은 니퍼트-김선우를 제외한 세 명의 선발 투수가 모두 단순한 구종의 계투 요원에서 변화구도 자신있게 던지는 선발로 거듭났다는 점. 2007년 1차지명으로 입단했으나 팔꿈치 수술과 어깨 통증으로 풀타임 시즌 시작이 2년 늦었던 이용찬은 최고 154km 직구를 던지던 마무리였다. 직구만 13개를 던져 1이닝 세이브를 올리기도 했던 투수가 이용찬이다.
9년차 시즌이던 지난해 노경은은 불펜의 마당쇠였다. 한때 선발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확실한 족적은 없었던 터라 본격적인 1군 활약은 지난해 마당쇠 역할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5선발 김승회는 2006시즌 롱릴리프 겸 셋업맨으로 151km의 직구를 굵은 땀방울과 함께 던졌으나 강속구를 뒷받침하는 변화구가 마땅치 않아 분식 회계 실점도 많은 편이었다. 전반적으로 세 명의 투수는 대체로 ‘많아야 투 피치’라는 평을 받았던 선수들이다.
그런데 올 시즌은 누가 뭐래도 당당한 선발진의 축들이다. 이용찬은 선배 김선우로부터 2011년 초 배운 변형 체인지업을 익힌 데 이어 지난 시즌 중반 싱커성 패스트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움직임이 뛰어난 포크볼을 장착하며 장타자들의 배트 중심을 피했다. 시즌 개막 후 91이닝 째까지 단 한 개의 홈런도 허용하지 않던 이용찬의 올 시즌 피홈런은 단 두 개로 뛰어나다.
노경은도 정명원 코치로부터 포크볼을 사사하며 선발로 우뚝 섰다. “정 코치께서 우리 팀에 오시자마자 ‘포크볼 확실히 익혀야 한다’라며 주문하셔서 많이 던졌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이 공이 내 무기가 되었다”라며 뿌듯해 한 노경은. 스피드만 보면 컷 패스트볼을 의심케 할 정도로 빠른 140km대 중반의 슬라이더와 150km대 광속구까지 곁들여지며 노경은은 어느새 주축 선발 투수가 되었다.
김승회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2007시즌 후 공익근무로 병역의무를 마친 김승회는 2010년 초 소집해제 후 팀에 합류했으나 근력이 확실히 올라오지 않아 팀이나 선수 본인이나 많이 애를 먹었던 케이스. 실전 공백으로 인해 투구 밸런스가 예전처럼 나오지 않자 커브-포크볼을 던지는 투수로 점차 변모했고 지난해 후반기부터 선발진에 힘을 보탰다. “내가 떨어뜨리는 공으로도 타자를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라며 흡족해 했던 김승회는 데뷔 첫 풀타임 선발로 나름 선방 중이다.
결과적으로 직구 믿고 던지던 투 피치 스타일의 투수들이 떨어지는 변화구를 장착하면서 수싸움에서 좀 더 여유를 갖게 되고 이닝 소화 능력까지 좋아져 선발로 자리매김 중이라고 볼 수 있다. 투 피치 투수는 선발로 나섰을 때 직구 구위가 떨어지거나 한 타순 돌면서 패턴이 읽히면 집중타를 맞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퓨처스 팜에서도 올 시즌 당장만이 아닌 다음 시즌 1군 선발 기회를 노리는 선수들이 많다. 4월 한 달간 에이스 노릇을 했으나 팔꿈치 부상과 슬럼프로 2군에 내려간 임태훈은 다음 시즌을 노리고 있으며 서동환-김명성-이원재-이현호 등은 후지카와 규지, 안도 유야(이상 한신) 등을 지도했던 구보 야스오 인스트럭터의 지도 아래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직구-슬라이더 투 피치 스타일이던 2년차 우완 안규영도 포크볼을 습득 중이며 현재 필승 셋업맨으로 활약 중인 홍상삼도 다음 시즌 선발 투수에 도전할 만한 선수다.
김 감독은 “향후 10년 간 상위권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을 팀을 만들어내고 싶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강한 선발진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했던 바 있다. 안방 잠실구장은 8개 구단 홈 구장 중 가장 넓은 만큼 투수들에게 더욱 유리한 구장. 현재 구축 중인 5선발 로테이션 외에도 미래 지향적 진화를 노리는 두산 선발진은 당장이 아니라 내일을 더욱 지켜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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