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환희의 순간보다는 고난과 역경의 순간이 길었다. 그래도 12년 동안 가슴 한 편에 자리한 두 글자에 대한 충성심은 변하지 않는다. LG의 우완 파워피처 이동현(29)이 올 시즌 다시 한 번 비상하고 있다.
2001년 1차 신인지명으로 LG에 입단한 이동현은 준우승을 차지한 2002시즌 LG를 대표하는 투수였다. 78경기·124⅔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2.67로 불펜진의 중심이 됐고 당해 포스트시즌에선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신예 투수의 150km을 상회하는 직구와 각도 큰 포크볼에 리그 최고 타자들도 속수무책이었고 4위로 포스트시즌 막차를 탄 LG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마지막 그 순간까지 전력을 다하며 희대의 명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이후 이동현에게는 끔찍한 수술과 재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4시즌 팔꿈치 부상을 당한 이동현은 2007년 말까지 세 번의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고 2009년까지 재활에 임했다. 약 5년의 시간 동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운 끝에 복귀 성공, 2010시즌 기적처럼 강속구를 되찾으며 다시 불펜진을 이끌었다. 그러나 완벽한 부활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2011시즌 구위저하로 고생하다가 시즌 후반에나 공에 힘이 붙었고 올 시즌도 초반에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다행히 6월을 기점으로 구위가 살아났다. 직구 평균 구속이 140km 중반대에서 형성됐고 포크볼과 슬라이더의 각도도 예전만큼 예리해졌다. 문제는 구위가 늘어난 만큼 출장횟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버렸다는 것에 있다. 6월 중순부터 LG는 팀 성적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매 경기 승부를 걸어야했고 그 순간마다 이동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승리와 패배에 관계없이 일주일에 3번 이상 나오는 경우도 많았고 7월 27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린 5경기에는 모두 출장했다. 결국 훌륭한 구위만큼이나 혹사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커졌다. 그럼에도 이동현은 태연하게 생각했다. 팔꿈치 수술 후 3년이 지난 만큼 스스로 팔꿈치 상태에 대한 관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많은 경기에 출장하고 있고 그만큼 걱정해주시는 분도 많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한 명만 생각할 수는 없다. 나 자신보다는 팀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 나 하나만 생각하는 순간, 팀 성적은 떨어진다. 요즘 팀이 지고 있을 때도, 혹은 팀이 이기고 있을 때도 마운드에 오르고 있는데 그만큼 팀 승리에 내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본다. 지고 있을 때는 추가실점을 최소화하고 이기고 있을 때는 점수를 내주지 않는 게 내 역할이다. 올 시즌 목표 자체가 지난 시즌보다 잘 하고 많은 경기에 뛰는 거였다. 팬들이 팔꿈치 상태를 특히 걱정하시는데 이를 관리하는 것 역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비록 현재 LG는 하위권에 자리하고 있지만, 올 시즌 비로소 지난 몇 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마무리 불안이란 난제를 풀었다. 시즌 내내 셋업맨 유원상과 마무리투수 봉중근이 경기 끝까지 LG의 승리를 지키는 중이다. 그러나 지난 13일 유원상이 팔꿈치 통증으로 엔트리에서 제외 됐고 자연스럽게 유원상의 자리에는 최근 9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 중이었던 이동현이 들어가게 됐다. 이동현은 유원상의 몫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16일 잠실 KIA전에서 2이닝 연속 삼자범퇴와 함께 2⅓이닝 무실점, 10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사실 몇 경기 연속 무실점이나 평균자책점 같은 기록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저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여전히 내가 팀이 이기는데 보탬이 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나가겠다고 생각했다. 원상이가 빠졌는데 시즌 초반에 내가 부진하면서 원상이를 도와주지 못했다. 지금 원상이가 없기 때문에 불펜 투수들이 더 분발해야 하는 상황인데 원상이한테 미안했던 만큼 내 역할을 다하고 싶었다. 또한 올 시즌은 지난 몇 년과는 다르게 원상이를 비롯해 투수진에 후배들이 많이 성장하고 있다. 어린 후배들이 내 모습을 보고 더 발전하도록 돕고자 코치님이 주문하신 볼넷 없는 공격적인 투구에 치중하는 중이다.”
오른쪽 팔꿈치는 수술자국으로 가득하고 투구 폼 역시 팔꿈치 상태에 맞춰 변화시켰다. 12년 전 처음으로 프로무대를 밟았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비슷한 부분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LG를 위해 뛰겠다는 마음은 그대로다. 2002년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자신의 역투를 여전히 많은 팬들이 기억하고 있고, 당시의 기억이 이동현 스스로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동현은 언젠가는 포스트시즌 마운드에서 투혼을 불사를 것을 다짐한다.
“세 번의 팔꿈치 수술을 하고도 LG 유니폼을 입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마다 내 팔꿈치는 LG에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일단 이제는 마운드에 설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하다. 12년간 LG에서만 뛰었는데 LG가 포스트시즌에만 나갈 수 있다면 팔꿈치가 끊어지더라도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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