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soul을 만나다] 디자이너 이상봉 “패션도 연극이다”
OSEN 황인선 기자
발행 2012.08.17 10: 52

“연극과 패션은 닮아 있어요. 나는 그 두 가지를 통해 변신합니다.” 
‘국가대표’라는 수식어가 딱 맞는 디자이너 이상봉. 지난 14일 올해로 3번째 ‘컨셉코리아’와 인연을 맺은 그를 직접 만났다. 직접 디자인한 태극 마크가 그려진 티셔츠를 멋스럽게 차려입은 이상봉 디자이너는 유쾌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컨셉코리아는 한국의 패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국내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글로벌 패션 프로젝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대구광역시,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후원하며, 오는 9월 여섯 번째 S/S 컬렉션을 미국 뉴욕에서 맞이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쓰이던 다섯 가지 기본색 ‘오방색(五方色)’ 파랑, 빨강, 노랑, 하양, 검정을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닌 5명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5명의 디자이너들은 각각 오방색 중 하나를 무대 배경에 사용하게 된다.
인터뷰는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진행됐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눈길을 끈 건 따뜻한 느낌이 나는 붉은색 천과는 대조적으로 차가운 느낌의 철 구조물로 완성된 소파였다. 혹시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는 ‘빨강’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붉은색 맞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양보와 화합,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로서 후배에게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되어 남은 것을 집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을 선택했다고 하기에 ‘빨강’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라는 수식어를 가진 이상봉 디자이너와 너무 닮아있다. 오행 가운데 빨강은 ‘불(火)’을 뜻하며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 ‘적극성’ 등을 뜻한다. 또한 옛 선조들은 붉은 빛의 황토로 집을 짓거나, 붉은색 염료로 부적을 그려 붙이거나, 궁궐이나 사찰 등의 단청에 붉은색을 사용하며 그것에 숨겨져 있는 ‘강한 힘’을 믿었다.
▲ 페루 여행에서 그가 본 것은...
지난 컬렉션에서 그가 보여준 콘셉트는 ‘한글’, ‘단청’, ‘돌담’처럼 지극히 전통에 입각한 사물이었다. 이번 컬렉션에서 역시 우리나라의 전통산물이 그의 오브제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 컬렉션에서 이상봉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 것은 ‘페루여행’이라 했다.
“페루의 패션위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양모나 캐시미어 원단 등이 발달되어 있는 나라의 특성상, 손뜨개 느낌이 나는 수공예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20~30년 전의 우리나라를 보는 듯 했습니다. 이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중심으로 ‘어릴 적 종이접기 하듯’, ‘추억 속 사진을 꺼내보는 듯’ 미니멀에서 탈피한 따뜻한 감성을 표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때문에 60~70년대 본인의 어릴 적 모습을 추억하게 됐다고.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통에 어려움을 느꼈으며, 혼자의 생활에 충실했습니다. 살던 동네에는 뒷산이 있었는데 항상 집-학교-뒷산-집 이런 식으로 혼자 지내는데 익숙한 편이였습니다. 당연히 친구도 없이 거의 혼자였습니다(웃음).”
▲ 연극과 닮아있는 패션, 1년에 2번 타인이 된 듯 변화한다
시쳇말로 어릴 적 이상봉은 ‘외톨이’였다. 현재의 이상봉과는 너무도 다른 정반대의 어린나날을 보낸 것에 대해 기자는 놀랐다. 그렇다면 각종 방송에서 그가 보여준 유쾌한 모습 뿐 아니라 연예계에서 소문난 인맥을 자랑하고 있는 지금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연극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소리를 뱉어내면서 몸 속 응어리가 밖으로 분출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간접적으로 타인의 삶을 경험하면서 점차적으로 내성적인 이상봉에서 지금의 이상봉이 된 것 같습니다.”
서울예대 출신인 이상봉은 실제로 한때 배우의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패션 디자이너 또한 배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패션도 연극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1년에 2번씩 다른 삶, 다른 생각에 빠지다보면 또 다른 내가 되는 넓은 의미의 연극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패션업계는 사계절을 크게 2개로 나눠 연례행사를 치른다. 봄/여름(S/S) 컬렉션, 가을/겨울(F/W) 컬렉션. 한 시즌을 앞당겨 겨울에 내년의 여름을 내다보고, 여름에 다가오는 겨울의 패션을 예상하는 건 지루할 틈 없이 신나고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이 있듯 매번 새로운 생각을 끄집어낸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정열에 취한 듯 살아가는 그에게도 진퇴양난의 시대는 있지 않았을까. 그가 선택한 나름대로의 해법은 ‘나이 고정’이었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오면 항상 37살이라 대답합니다. 무작정 가장 좋았던 시절이어서는 아니에요. 나이가 드는 것처럼 감성도 같이 무뎌질까봐 두려움이 생겼을 때죠. 매일 밤을 홍대 앞 록카페에서 보내던 37살의 어느 날 결심했습니다. ‘지금부터 내 나이는 37살로 고정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 이상봉이 말하는 ‘패션계에 필요한 것들’
그는 우리나라의 패션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컨셉코리아’ 디자이너에 벌써 3번째 선정됐다. 그야말로 대표 중에서도 대표인 것. ‘대한민국 대표’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진 않은가.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을 갖고,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늘 따라다니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이상봉은 6회째 열린 컨셉코리아 역사의 반을 함께하면서 후배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며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기성 디자이너와 신진디자이너는 분명 필요로 하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때문에 앞으로의 컨셉코리아 성장을 위해선 각 디자이너에게 맞는 ‘맞춤 지원’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신진디자이너에게는 명예보다도 비즈니스가 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옷을 만들었으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시작하는 디자이너에게는 ‘옷을 잘 만드는 것’ 다음에 해야 하는 ‘옷을 잘 파는’ 길을 여는 것이 힘든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기성디자이너 역시 마냥 여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모두가 위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기성디자이너는 수입 브랜드와 경쟁을 하며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의 고충을 겪고 있죠.”
대한민국 패션문화가 세계무대에 더욱 당당하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젊은이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디자이너가 인기유망직종이 되면서 패션산업의 성장이 본격화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세와는 다르게 실질적인 교육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직도 패션에 관심있는 이들이 혼자서 공부하기 위한 서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현실입니다. 전문가가 부족하다면 관련 서적 번역판이라도 제대로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insu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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