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자외선 차단제를 세 번씩 꼭 덧바르고, 특기는 ‘메이크업’인 독특한 남자. 여자처럼 선이 고운 얼굴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반드시 안경을 쓰며 ‘이미지 메이킹’을 잊지 않는 이 남자는 직업도 메이크업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 욕망을 노린 스타 뷰티쇼들이 늘어나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대중의 환상 또한 커져 가고 있다. 여러 연예인과의 두터운 친분, 방송에서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그들도 또 하나의 ‘워너비’가 되기도 한다.
온스타일 뷰티 프로그램 ‘겟잇 뷰티’ 및 각종 뷰티 전문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등장해 대중에게 친숙해진 메이크업 아티스트 황방훈을 그의 뷰티숍 ‘보떼101’에서 만났다. 아직도 ‘메이크업 하는 남자’에 대한 선입견이 심하면서도, 메이크업이라는 ‘예술’에 대한 판타지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가 사는 방식이 궁금했다.

그는 방송 출연이 잦아진 뒤 달라진 점에 대해 “신부든 일반 손님이든 메이크업을 마친 뒤에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메이크업에 대해 말할 때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황방훈 원장과의 인터뷰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는 이들이 알아야 할 것들과,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알려주는 기회였다.
★‘화장하는 사람’이 좋은 건가요, ‘화장’이 좋은 건가요?
황방훈 원장은 스스로를 ‘시골 출신’이라고 표현한다. 전북 김제 출신인 그는 “시골에서 자라면서도 늘 흰 옷을 입는 깔끔한 아이였고, 그림 그리기와 서예를 잘 했다”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그런데 그림과 서예에 재능은 있었지만, 재미는 정말 없었다고. 그러나 TV의 직업 소개 프로그램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접하고 관심을 가진 메이크업은 그에게 처음으로 ‘질리지 않는’ 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래도 단번에 메이크업을 ‘업’으로 삼기는 그 또한 힘들었다.
“메이크업은 해도 해도 질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고 2 때 본격적으로 메이크업을 배워보려고 했는데, 학원에 남자는 하나도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그만뒀어요. 그 뒤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 데 몇 년이 걸렸죠. SBS 아카데미 학원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메이크업을 배웠는데, 학원에 가서 여자의 민낯이 그렇게 무서운 건 줄 처음 알았습니다(웃음). 여자들이 얼마나 메이크업을 많이 하는지도요.”
황 원장은 국내 메이크업 아티스트 양성 과정에 대해 “학교나 학원 모두 잘 돼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학교나 학원이나 학생의 레벨에 맞춰서 지도해주도록 시스템이 잘 짜여 있어요. 나이가 많다고 해도 교육이 가능하고요. 하지만 그저 ‘전문가’를 넘어서, ‘감성적인 아티스트’를 키워낼 만한 환경은 아니죠.”
학교나 학원만 다닌다고 감성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까? 그는 감성뿐 아니라 또 다른 교육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만일에 제가 아티스트를 키운다면 대학 때까지 순수 미술과 외국어만 가르칠 거예요. 실무는 그 뒤에 하고요. 요즘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는 미술 교육을 통해 배운 감성뿐 아니라, 더 넓은 무대로 나가기 위한 언어능력이 꼭 필요해요. 그런데 언어의 장벽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화가는 캔버스에 그냥 그리면 되지만, 우리는 사람의 얼굴이 캔버스인 화가들이니 그 사람과 소통하는 게 필수거든요.”
그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메이크업이라는 ‘예쁜 것’에 도취되면 안돼요. 결과물이 아름다우니까 아티스트의 일상 또한 우아하고 아름다울 거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아티스트는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남의 얼굴에 있는 지저분한 피지에도 손을 대야 하고, 메이크업에 앞서 몇 시간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에요. ‘화장’이 좋은 게 아니라 ‘화장하는 사람’의 일상이 좋은 거라면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할 준비가 됐다고 볼 수 있겠죠.”
그 또한 ‘화장하는 사람’의 일상 체험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행복했다고. “처음 메이크업으로 돈을 번 것은 서울예전 졸업전에 나가는 학생들을 도와줄 때였어요. 5만원 받고 10명에게 메이크업을 해 줬는데, 메이크업으로 이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그 뒤로 저는 ‘나는 반드시 메이크업으로만 먹고 사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사는 법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는 과정에 이어, 어느 정도 입지를 쌓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생활이 궁금했다. 헤어-메이크업 숍에는 휴일이 없다. 휴일에 오히려 웨딩 촬영 및 각종 이벤트는 더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 원장은 숍 운영뿐 아니라 방송 출연과 대학 강의도 틈틈이 해야 한다. 그의 일상은 어떨까.
“자기 관리는 정말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그러지 않으면 휴일이 없는 일상을 버티기 힘들죠.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별로 몸이 튼튼한 편이 아니거든요. 약을 많이 먹는 편인데, 약마다 먹을 시간에 알람을 맞춰 둬서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려요.(웃음) 그리고 고통에 좀 예민한 편이어서, 조금만 아파도 빨리 알아차리고 치료하려고 하죠.”
휴일이 없는 일상을 버티는 방법은 ‘약’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분 단위 휴식’이라는 것이 있다.
“쉬는 날은 딱히 없지만, ‘나는 분 단위로 휴일이다’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여유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만큼은 철저히 쉬는 거죠. 어딘가로 이동할 때 길이 막히면 ‘피서지에 가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차 안에서 쉬기도 하고, 숍에서 일하다가도 10분이라도 남으면 불을 전부 다 끄고 가만히 쉬어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낮에도 한동안 불을 다 끄고 아무것도 안 해요. 이런 저의 휴식 스타일이 남들과는 좀 다른 점인 것 같네요.”
사람을 대하는 일인 만큼 외모 관리에도 철저하다. “자외선 차단제는 반드시 하루에 세 번은 덧발라 줘요. 귀찮으면 뿌리는 타입이라도 꼭 써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도 꼭 그렇게 하기를 권해요.”
사람을 만날 때는 반드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안경을 쓴다. 방송이나 인터뷰 등에서 안경을 벗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을 만큼 철두철미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항상 ‘내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운가’를 생각합니다. 메이크업은 나를 교수로도 만들고, 원장으로도, 아티스트로도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예요. 메이크업에 대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즐길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로또 당첨’이나 다름없는 것이거든요.”
메이크업을 거의 ‘종교’처럼 생각하며 즐기는 삶을 사는 아티스트라 해도 힘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그럼에도 가장 난감한 상황’을 묻자 황 원장은 힘들었던 경험과 함께, 메이크업을 원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언을 들려줬다.
“가장 어려운 것은, ‘누가 봐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메이크업을 원하는 분을 만났을 때예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너무 다른 거죠. 어울리지 않는 강한 눈화장이나 강렬한 레드 립스틱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강한 분들을 만나면 당혹스러워요. 물론 여성들은 누구나 아름다워요. 하지만 어울리는 것도 각각 다릅니다. 아티스트에게는 다들 변화를 꿈꾸며 찾아오시잖아요? 그 변화의 기준이 애매해지는 상황이 저희들에게는 가장 난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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