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후엔 크게 떠 있을 재목이니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할 연기자다. 찬찬히 걸어왔고, 순탄했지만 쉽진 않았던 연기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자 하는 서른 살의 배우 이시언을 최근 합정동에서 마주했다.
‘추억’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방성재 역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이시언. 이름 자체가 언밸런스한 것이 매력적이라 물었더니 “얼굴이 험상궂으니 이름이라도 여성스러워야 이미지 완화가 되지 않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웃음과 재치로 무장했지만, 쌓아둔 내공이 있어 그런지 대답이 달리 들린다.
‘배우’라는 말이 어색하다는 이시언은 이 단어가 자신에게 어울릴 때까지 멋지게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겸손의 ‘미덕’으로 한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는 듯, 시종일관 열정을 담아 대답하는 한 젊은 연기자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 “곽경택 감독님이 지어준 이름처럼..”
부산에서 학교를 나와 ‘응답하라 1997’에서 방성재 역할이 조금은 쉽지 않았을까 싶어 물었더니 이시언은 “복 받았다. 처음 연기할 땐 표준어를 구사하는데 ‘사투리’ 때문에 어려웠다. 그런데 오히려 도움이 되니 정말 복 받은 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데뷔한 까닭도 얘기했다.
“제가 정확히 말하면 2009년에 데뷔 했는데 부산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를 먼저 다녀왔어요. 그리고 서울예대에 진학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오디션에 합격해 데뷔했으니 늦은 건 아니에요. 어렸을 적부터 연예인이 아니라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드라마를 많이 할 줄 몰랐죠.”(웃음)
그런 그에게 데뷔와 함께 생긴 것이 바로 이름. 곽경택 감독이 영화 ‘친구’를 드라마화한 ‘친구, 우리들의 전설’로 데뷔한 그에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시언’이라는 이름이다. 이시언은 “곽 감독님과 전 소속사 사장님이 함께 제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이름에 많이 베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본명은 이보연이라서 제 카카오톡에 ‘시언보연’으로 이름을 올려놨다.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처럼”이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3년의 시간동안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이처럼 화제가 된 드라마는 없었던 것이 사실. 이에 데뷔 이래 가장 호시절인 것 같다고 물었다.
“같은 대본을 보고 소재가 너무 재밌고, 마니아층이 생기겠다고 정도였는데 이정도로 인기가 많을 줄 몰랐어요. 처음부터 호평을 받았는데 ‘진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출연 배우나 스태프, 감독님 등 모두 다 좋아서 망했어도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작품이었을 것 같아요.”

◆ 더딘 이시언, 수개월 걸려 만든 ‘명장면’
이시언은 ‘응답하라 1997’에서 촌철살인의 입담과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쉽지 않은 촬영이었단다.
“항상 기분이 공중에 떠 있어야 하는 상태에요. 수다쟁이 이기도 하죠. 그런데 전 대사를 외우는데 더뎌요. 극중 도학찬(은지원)이 전학을 와서 제가 그 매력에 빠져서 친구들에게 소개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대본 받자마자 외우기 시작해서 연극하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의견 수렴해서 멋진 장면을 만든 거에요.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또한 그는 “이 장면 말고도 학찬이가 만든 비디오테이프를 친구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엄청나게 길게 소개하는 장면이 있었다”면서 즉석에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이시언은 “이 장면을, 이 대사를 위해 피나게 연습했다. 제가 꼭 살려야 할 장면이라고 생각해서 죽기 살기로 했다”고 웃어보였다.
다소 느리더라도, 자연스럽게 배우의 길에 접어들고 싶다는 그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결코 잘생긴 얼굴은 아닌데 배우하기엔 좋은 얼굴인 것 같아요. 제 나이또래에 인기를 좀 얻으려면 솔직히 꽃미남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배역 맡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 나기도 해서 만족해요. 그런데 제 이미지랑 맡는 역할이 한정 돼 있고, 그래서 김인권 선배와 캐릭터가 자꾸 겹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저만의 무기를 만들 생각이에요.”

◆ 롤모델은 신하균, 황정민 같은 바보연기 ‘욕심’
배우로서의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손사래를 치면서 "배우라는 말이 너무 부끄럽다. 연기하는 젊은이로 소개하는데,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그 단어에 걸맞는 사람이 돼 있으면 좋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사실 제 롤모델은 신하균 선배에요. 연기를 똑같이 따라하고 싶은게 아니라 그 스타일이 좋은거죠. 모든 배역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그 역량이요. 그리고 그 집중력이 부러워요. 신하균 선배처럼 '내가 하지 못하는 역할은 없다'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요. 그 자질이 풍부하고 충분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지금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그에게 대체 못하는 연기가 뭐냐고 물었더니 재밌는 대답이 돌아왔다. 눈물을 흘리는 걸 잘 못한단다.
이시언은 "깨방정 캐릭터부터 수컷 냄새 나는 캐릭터는 잘 할 수 있는데 오히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잘 소화 못하겠더라"면서 "연기로 우는 것, 눈물만 흘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감정의 동기까지 제대로 되는 경우는 없다. 그걸 하고 싶다"고 욕심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그는 황정민이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보여줬던 눈물연기와 바보스러운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다면서 "함께 드라마를 찍은 후 친해진 김민준 씨가 잘 되면 동네 바보 형제 같이 하기로 했는데, 사채업자 캐릭터로 서인국 씨가 합류해 세명이서 드라마나 영화를 꼭 찍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응답하라 1997'을 통해서 많은 걸 배웠어요. 다음주 방송이 남았지만 그간 사랑해주신 시청자분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함께한 배우들 너무 고맙고, 지원이 형 빼고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인데 잘 어울려줘서 고마워요. 특히 아이돌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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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