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수집가’처럼 자신이 가지고 싶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고, 철저하게 연기한 배우가 있다. 그의 선택은 변신도 변신이지만, 영화판에서 조금 잔뼈가 굵어질 찰나 브라운관 복귀작으로는 조금 의외였던 것이 사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증명하듯 탁월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로 남았다.
가지고 싶은 이미지를 위해 오랜만에 드라마 출연을 결심했다는 배우 김강우를 최근 반포동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종영된 KBS 2TV '해운대 연인들’(극본 황은경, 연출 송현욱/ 박진석)에서의 열연이 가시지 않는 듯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과 극중 캐릭터의 분위기를 풍겨낸 김강우는 각종 논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연기했던 지난 3개월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자신이 연기하면서 목표했던 바를 이루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감사해했고, 달라진 드라마 녹화 현장을 얘기하면서 전에 없는 ‘재미’를 느꼈다고 말해 앞으로 안방극장에서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이 보여줄 모습들만 철저하게 보여주며 성공적인 종영을 마주한 그와의 진지하면서도 달콤했던 대화를 공개한다.

◆ 고생했던 만큼의 시청률..“심각한 드라마는 아니잖아요”
김강우에게 ‘해운대 연인들’을 선택한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영화에 많이 출연하면서 가지게 된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까불 수도 없고 억지로 할 수는 없었다. ‘해운대 연인들’의 대본을 받고 캐릭터 안에서 놀면서 밝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운대 연인들’에서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게 되는 강력부 검사 이태성 역을 맡아 좌충우돌 해운대 적응기를 그려냈고, 다양한 얼굴 표정과 자신만의 연기스타일로 ‘볼매’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시청률 1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마지막 회는 11.3%의 자체 최고 시청률로 김희선, 이민호 주연의 ‘신의’를 제치며 2위로 종영했다.
“이 작품을 하겠다고 선택한 순간 ‘겁’이 나진 않았어요. 고생한 것보다 시청률이 잘 안 나와서 처음에 힘이 빠진 건 사실이죠. 악재도 있었고, ‘신의’, ‘골든타임’ 등 경쟁작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아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믿음이 있었어요. 현장은 진짜 재미있었거든요. 시청자분들이 나중엔 알아주시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언급하면서 B급 정서를 논했다. 김강우는 “웃으시라고 만드는 드라마의 작품성을 논하는 건 어쩌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엔 전직 조폭이지만 서민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어요. 현실에선 있을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B급 정서의 드라마도 원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캐릭터를 보지 않고 보지도 않고 욕하는, 그런 점이 아쉬운 거에요.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욕하는 부분, 스태프들의 노력이 묵살되는 것 같은 기분이라 마음이 조금 상했죠.”
김강우에게 그래도 의외의 선택이었다고 말하니 그는 “해운대 연인들‘이 심각한 드라마는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캐릭터들이나 설정이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던 것도 인정하지만, ’강우 씨니까 괜찮아요‘라는 작가님에 대한 말을 듣고 믿음을 가지고 마음껏 연기했다”고 답했다.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해 연기했어요. 코미디를 할 때도 절실하게 해야, 보는 사람들이 따라 올 것 같았죠. 작가님이 저를 극 속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만들고, 모든 장르를 소화하게 만들었는데 그 연기를 해내는 것이 즐거웠어요. 현장에 나가는 순간도 너무 즐거웠고, 남해와 이태성을 오가며 심경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마저도 즐겼어요. 캐릭터가 말이 되던 안 되던, 대본을 받은 배우는 후회 없이 연기해야 해요.”(웃음)

◆ 날카로운 고등어 비늘의 추억..그리고 ‘영광의 상처’
김강우는 기억을 잃어 남해로 살아가는 극중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고군분투했다. 기자들 사이에선 원맨쇼라고 불렸을 정도. 그래서인지 목상태가 좋지 않아 그에게 건강상태를 물었더니 기관지염에 후두염까지 병을 달고 살았단다.
“첫 번째 촬영부터 멀쩡한 촬영이 하나도 없었어요. 물에 떨어지고, 기름 범벅이 되고, 다 쉽지 않았죠. 게다가 바다에서 고등어와 함께 건져 올려 졌던 장면에서 비린내는 말할 것도 없고 비늘에 베고 뺨까지 맞았어요.(하하)”
그리고 그는 태성에서 남해로 바뀌었을 때 옷, 헤어, 분장이 변화했지만 그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았다면서 목소리 톤의 변화를 꾀했고, 이로 인해 영광의 상처를 얻었다고 말했다. 김강우는 “남해를 연기할 때 촬영할 때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생소리’를 썼다. 그간 배우고 연기했던 발성법과는 완전히 달랐다”면서 “소리 지르는 신도 많았고 그래서 기관지염에 후두염까지 문제가 생기지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연기 포인트를 설명하던 그는 남해라는 캐릭터를 위해 찰리 채플린과 짐 캐리를 떠올렸다고도 했다. 김강우는 “남해는 인간미가 있고, 한편으론 안쓰러운 인물이었다. 약간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진한 페이소스를 남기기 위해 극적으로 연기해야 했다. 찰리 채플린을 가장 많이 떠올렸고, 짐 캐리의 캐릭터도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처음 기억을 상실하고 병원에서 나왔을 때 진심으로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모습으로 보여야 했어요. 그리고 정말 배고파야했고, 자신을 찾지 않는 소라가 밉기도 하면서 ‘이 사람밖에 없구나’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죠. 태성이 인간미가 없던 캐릭터라 의도적으로 표정으 안 쓰려고 노력했고, 반면 남해는 안 썼던 표정을 다 써서 감정표현을 했어요.”
◆ 김강우가 말하는 ‘해운대 스타일’ 논란 극복법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이만큼 각종 논란을 몰고 온 작품도 없었다. ‘해운대 연인들’은 부산 사투리부터 노출까지 다양한 논란으로 곤혹을 치러야했다. 김강우는 “다 지나간 일이지만 처음엔 작은 파도처럼 살짝 살짝 치다가 갑자기 커지더라”면서 “무서웠다. 그런 논란으로 연기자와 스태프들의 노력이 허사가 될 것 같았다”고 조심스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현장에서 저희끼리는 너무 열심히 했어요. 논란이 이는데 이걸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특히 티아라 소연이 출연 자체가 논란이 됐을 때 어떤 게 진실인지는 잘 알 알지 못하지만 참 안쓰럽더라고요. 그 친구는 그 친구 자체로 최선을 다했어요.”
그는 또 부산 사투리 논란과 관련해서도 “그냥 내가 옆에서 본 조여정 씨는 사투를 벌였다”면서 “대본이 워낙 늦게 나오는 건 어쩔수 없지 않나. 안쓰러웠고,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묵묵히 연기하는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참 대단하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정성 논란도 있었는데 처음부터 여름시즌에 시원시원한 드라마를 만드는 거였잖아요. 그런면에서 거부감을 느끼셨던 것 같은데 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 벗지도 않았어요.(웃음) 그리고 저희는 알고 있었어요. 저희가 진심으로 연기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거란걸요.”
이와 함께 김강우는 ‘김강우 나쁜손’이 검색어가 된 것과 관련해 “전 대본에 충실한 배우”라고 강조하면서 “대본에 가슴에 손을 올리라는데 배에 손이 갈 순 없었다. 이를 100% 이해해준 조여정이라는 배우에게 감사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이젠 해운대에서 나쁜 짓도 못해요”
KBS 2TV 월화극의 부진을 깼기에 방송사 쪽에서 칭찬 좀 들었냐고 물었더니 김강우는 “시청률 스트레스가 있어도 배우들한테 얘기는 안 한다”면서 “다만 올해 들어 처음 월화극 시청률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고 웃었다.
이와 함께 그는 달라진 드라마 제작환경과 분위기에 대해서도 얘기를 풀어냈다. 그는 2002년 영화 ‘해안선’으로 데뷔를 했고, 2003년에 ‘나는 달린다’라는 드라마로 브라운관에 데뷔한 바 있다.
“처음 주인공을 맡았을 때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시작을 했어요. 힘들었고, 방송국은 ‘내가 올 곳이 아니구나’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드라마는 테크닉이 없이는 갈 수 없는 장르인데 제가 준비도 되지 않았고, 능수능란하게 헤쳐나 갈 역량이 되지 않았던 거죠. 재미도 없었고요. 그런데 이제 영화하고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즐겁게 촬영했어요.”
김강우는 “장르도 장르지만, 드라마 촬영 현장이 많이 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스태프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내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었다. 앞으로 드라마 출연을 많이 하려고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김강우는 예상 외로 ‘해운대 연인들’에 악성댓글을 단 악플러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왜 악플을 다셨냐”라면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많이 봤는데 안 보신 분들이 악플을 많이 다신 것 같더라. 웃자는 드라마에 죽자고 달려드시는 분들 때문에 오히려 자극이 많이 됐다. 덕분에 핑계를 대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입 바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를 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너무 좋았어요. 해운대라는 공간에서 배우들, 스태프들, 작가님, 감독님과 똘똘 뭉쳐서 생활했던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해운대에서 3개월간 보냈던 이 현장은 정말 잊지 못할 거에요. 이제 해운대에선 나쁜 짓(?)도 못할 것 같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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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