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딱딱한 듯한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의 말투. 그러나 팬들의 마음에 감사하는 진심과 아직도 시행착오 속에 살고 있다는 겸손함. 그리고 팀의 중간급 선수로서 그동안 팀 후배들 일부가 보여주던 단점에 공감하며 현 위치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캐치볼도 할 수 없던 어깨 상태로 은퇴 위기까지 몰렸다가 재기 중인 LG 트윈스 8년차 좌완 신재웅(30)의 이야기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산고-동의대를 거쳐 지난 2005년 LG에 2차 3라운드로 입단한 신재웅은 2006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거 애틀랜타의 명 투수코치로 재임했던 레오 마조니 인스트럭터의 총애 속 기대를 모았던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06년 8월 11일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한화를 상대로 1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창단 첫 최하위를 기록했던 LG의 희망봉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지요. 그러나 그해 프리에이전트(FA) 박명환의 보상선수로 두산 이적한 뒤 야구인생의 침체기에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공은 빠르지 않지만 씩씩하게 던진다는 점에서 김경문 전 감독의 기대를 모았으나 캐치볼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의 어깨 부상으로 인해 두산 유니폼을 입고 1군에서 단 한 개의 공도 던지지 못했던 신재웅은 2007시즌 후 자유계약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무적(無籍) 상태에서 공익근무 입대한 신재웅은 다행히 차명석 투수코치의 권유 속에 데뷔팀 LG에 신고선수 입단했고 올 시즌 12경기 5승 2패 평균자책점 3.59(2일 현재)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네요. 18.44m 거리에서 공을 던지기는 커녕 팔도 들어올리지도 못했던 신재웅에 대해 그를 아는 야구인들은 “진짜 인간 승리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지난 9월 30일 두산전을 앞두고 잠실구장에서 만난 신재웅은 오히려 주변의 칭찬에 쑥스러워했습니다. “저만 아팠던 것이 아니잖아요. 아파서 야구를 그만두거나 쉬고 있는 선수들은 많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관건이지요. 저는 아직 이겨내고 배워가는 과정의 선수입니다”.
▲ 차명석 코치님, 내 인생의 은인
신재웅은 빠른 직구를 던지는 투수가 아닙니다. 그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3~4km 가량으로 팀 마다 150km대 광속구를 보유한 LTE급 유망주들을 의외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현대 야구임을 감안하면 말이지요. 그렇다고 변화구를 남발하는 투수도 아닙니다. 오히려 신재웅은 자신이 가진 직구를 공격적으로 던지면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고 호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빠른 공이라고 타자들이 다 못 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마운드의 투수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던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공이 빠르지는 않지만 ‘타자를 이길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고 던지고자 합니다. 포수 미트로 들어가는 제 공은 빠르지 않은 대신 ‘이길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이 전달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005시즌 후 LG의 호주 마무리훈련에서 신재웅은 마조니 인스트럭터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바 있습니다. 현장에서 흔히 말하는 예쁜 투구폼으로 씩씩하게 던진다는 점에서 마조니 인스트럭터는 신재웅을 총애했고 이후 팀에서는 신재웅을 ‘마조니 주니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네요. “유독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그분도 현역 시절 좌완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겨우 데뷔 시즌을 마치고 그렇게 칭찬을 받다보니 기분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그 낯선 기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1피안타 완봉승, 4개월 후 보상선수 이적. 그리고 어깨 부상으로 인한 방출을 겪으며 신재웅은 야구인생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2007시즌 후 군대에 가기로 구단과 이야기가 되었는데 얼마 안 있어 방출 통보를 받고 많이 충격을 받았습니다”라며 운을 뗀 신재웅은 어두운 터널 속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차명석 투수코치에게 더욱 고마워 했습니다.
“공익근무 중에도 차 코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아프지 않으면 다시 야구를 해보지 않겠냐고요. 그리고 소집해제 후 코치님을 찾아 공을 던지고 신고선수 입단하고. 그리고 지금은 1군에서 선발로 기회를 얻고 있네요. 주변에 감사한 분들이 많지만 정말 차 코치님은 제게 너무도 감사한 분입니다”.

▲ 감사한 팬 응원, 그러나 여기서 들뜨지 않겠다
지난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LG는 10년째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훈련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팀이 휴식기를 갖는 순간 먼저 훈련 일정을 짜고 마무리훈련에 박차를 가하는 팀이 LG입니다. 수년 전 직접 봤던 LG 마무리훈련의 강도는 김성근 감독 재임 시절 SK의 훈련에 버금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노력들은 호성적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이유들이 꼽히는 가운데 현장에서 꽤 납득이 가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어린 신예가 1군에 올라 기회를 얻는 빈도가 많은 팀이 LG다. 그런데 그 유망주들이 팬들의 응원과 관심도에 미리 도취되어 기량 성장을 게을리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팀은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는데 ‘우쭈쭈’하며 따뜻하게 바라보는 팬의 시선에 유망주가 이를 스타가 된 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타 팀에서 LG로 이적해왔던 한 베테랑 선수는 “연봉 2000만원을 받던 모 신인 선수가 첫 월급이 나오자 40~50만원하는 고가의 청바지를 살 생각부터 가장 먼저 하고 있길래 이를 보면서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야구 관계자는 “당시 막 1군 출장 기회를 얻었던 유망주가 여성팬들에 둘러싸여 헤헤거리고 거들먹거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저 녀석도 야구인생을 그르치는 구나’ 생각했는데 역시나 더 큰 선수로 성장하지 못하더라”라고 밝히더군요. 물론 모든 유망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변인으로서도 보기에 안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신재웅은 1982년생으로 이동현, 윤요섭과 동갑내기입니다. 우리 나이 서른 하나로 때로는 군기반장, 때로는 선수단 내 따뜻한 중간 관리자가 되어 베테랑 선배와 후배들의 가교가 되어야 할 위치입니다. 올 시즌 전반기까지도 힘든 2군 생활을 겪으며 많은 후배들을 봤던 신재웅인 만큼 현장에서 나왔던 그 이야기를 꺼내자 신재웅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팬 여러분들의 응원은 그 자체로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팬이 없다면 프로 선수가 없잖아요. 그렇지만 그 사랑에 너무 동요되고 들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팬들께서 더 많은 응원을 해주실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더욱 느끼고 더 노력해야 하니까요. 선수 개개인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자 노력 중이고. 다행히 올 시즌을 치르면서 이전에 비해 선수단 분위기도 훨씬 좋아지고 단합이 많이 된 것 같아요”.

▲ 내년 개인 몇 승보다 다 같이 잘 되어야
“지난해 동계 훈련부터 페이스가 좋았는데 몸이 안 풀린 상태에서 의욕 먼저 앞서다보니 탈이 나 시즌 시작이 늦었습니다”라며 시즌 중반부터 1군에 합류했던 이유를 밝힌 신재웅.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나온 단어는 바로 시행착오와 경험. 그리고 보완점이었습니다. 어렵게 오른 1군 무대에서 이제 겨우 기회를 얻고 있다는 스스로의 자평이었던 만큼 신재웅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함으로 가득했습니다.
“경기에 나오고 좌충우돌하면서 경험을 쌓고 제 부족한 부분을 계속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서 이기는 경기도 하면서 팀 분위기를 올리는 데도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뜻 깊게 이기는 경기를 거듭한다면 본연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올 시즌은 승리 수는 물론 이닝 소화 면(57⅔이닝)에서도 모두 신재웅의 커리어하이 시즌입니다. 희망찬 후반기를 보낸 만큼 내년 시즌 목표도 조금씩 욕심내 볼 법 한데요. 오히려 신재웅은 자세를 낮추며 개인보다 팀을 먼저 내세웠습니다.
“크게 목표를 잡은 것은 없어요. 오히려 경기를 거듭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지적해주는 보완점을 찾고 계속 메워가는 중이니까요. 지금 한 시즌 5승을 올렸다고 안주하기보다 성실하게 야구에 집중한다면 단순한 몇 승 이상의 목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LG 선수잖아요. 저 뿐만 아니라 모두 열심히 해서 팀이 하나가 되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다 같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와의 인터뷰 전 후배로부터 “정말 좋은 사람이다. 성실한 데다 착하고 스토리도 있는 선수라 사람으로서 꼭 잘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바 있습니다. 한때 끊어졌던 야구 인생을 땀으로 이어가고 있는 신재웅이 더 나은 성적과 많은 팀 승리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길 바랍니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인정을 받는 것이 진짜 이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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