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치'의 민병훈 감독이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수직계열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영화산업에 일침을 가했다. '행동주의자' 민병훈 감독은 "영화는 재미있어야 보는 게 아니라 볼 수 있어야 본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학파 출신인 민병훈 감독은 '포도나무를 베어라'(2006) 이후 6년 만에 만든 장편영화 '터치'의 오는 11월 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 4일 개막한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된 이 영화는 행복한 삶을 꿈꾸던 한 가족에게 닥친 예기치 못한 사건과 놀라운 기적을 그렸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영화대에서 수학한 민병훈 감독은 '벌이 날다', '괜찮아 울지마', '포도나무를 베어라' 등을 만들어 평단과 영화팬들에 그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그가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들로, 조금은 달라보이는 영화 '터치'를 들고 찾아왔다. '터치'는 민병훈 감독이 계획한 '생명 3부작' 중 그 스타트를 끊는 작품이다.

민 감독의 절친들인 배우 유준상, 김지영이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쳤다. 특히 극중 간병인 일을 하며 돈을 받고 몰래 환자들을 요양원에 입원시키는 아내 수원으로 분한 김지영은 '최고의 연기'라는 극찬 세례를 얻고 있다.
민 감독은 "지영이는 남다르다. 외모도 아름답지만 마음이 보석같은 사람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좋지만 너무 진실하다"라며 "이 진실한 사람이 왜 묻혀있지? 왜 맨날 아줌마 역할을 하는거지?란 생각을 했다. 한 번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라고 김지영에 대해 평했다.
유준상은 극중 전 국가대표 사격선수였지만 알콜 중독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중학교 사격부 코치를 하고 있는 동식 역을 맡아 연기했다. 민 감독과 유준상은 14년만에 다시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민 감독이 모스크바에 있을 때 드라마 '백야 3.98'의 촬영이 있었고, 민 감독은 톱스타 이병헌, 심은하보다는 단역 유준상에게 눈이 갔다고. "연민이 갔다. 왜냐하면 촬영감독이 계속 준상이를 쪼더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유준상의 가능성을 간파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KBS 2TV '넝굴째 굴러온 당신'을 통해 연기 잘하는 배우였던 유준상은 대중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민 감독은 "유준상의 시대가 오리라고 생각했다. 준상이는 정말 진실하고 성실하다. 헛소리를 하는 친구가 아니다. 성실한 친구라서 약간 재미는 없지만, 진실함 만큼은 최고다. 정말 한 번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준상이가 잘 돼서 내가 된 것 처럼 너무 좋다. 유준상은 눈을 다른 데 돌리지 않고 외도를 하지 않는다. 정도의 길을 걷기 때문에 큰 슬럼프도 없을 것 같다. 또 가장 다행인 것은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이다. 그게 신뢰가 간다"라고 칭찬했다.
두 배우와 같이 작업을 한 것에 대해서는 "이성의 틈이 없게 만들어주는 게 내 목표였다. 똑똑한 배우들이기 때문에 이성이 들어가면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라며 "영화를 다 찍고 나서 '내가 찍었나?'라고 할 정도로 안에 감성만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터치'는 메이저 투자배급사에 기댄 영화가 아니다. 민 감독 스스로 배급과 개봉의 돌파구를 찾아내고 있다. 그는 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영화구조가 기형적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수직계열이다. 관객들은 볼 권리가 있어야 한다. 나도 관객 중 한 명이니까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은데 추석 때 극장에 가니 두 개 영화만 걸려있더라. 사이즈가 작고 크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 우리 관객들을 만나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힘줘 말했다.
민 감독은 이어 "미국은 제작사가 극장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방송 채널권까지 갖고 있다. 이런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다"라며 "영화를 잘 만들면 사람들이 본다고? 절대 아니다. 볼 수 있어야 본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재미'만 의미있는 게 아니다. 재미있는 영화는 물론 있어야 한다. 하지만 90%는 재미있는 영화하고, 10%만 의미있는 영화에 기회를 주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기부차원에서라도"라고 덧붙였다.
민 감독은 단순히 개탄만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고자 하는 행동주의자다. 민 감독은 최근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100원을 내고 볼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복제 문제로 무산됐지만 한 발 나아간 생각임은 분명하다.
그는 "나도 내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 하고 싶지, 클릭하고 싶겠나. 하지만 새로운 배급 형태로 유통 질서를 흔들어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영화판은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노예나 다름없다"라며 "어떤 사람들은 '그럼 아트극장에서 틀면 되잖아'라고 하는데, 그게 더 나쁘다. 그 쪽으로 몰아넣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상황을 조금은 바꿔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안했다. "관객들은 죄가 없다. 영화를 보는 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으니까. 관객들이 주변에서 잘 찾을 수 없는 예술영화관에 가는 것은 쉽지 않다"라며 "교수든 영화평론가든 그 해 좋은 영화 10편을 선정해달라. 그 10편을 DVD로 만드는 거다. 그리고 전국의 학교, 대사관에 뿌리는 거지. 있으면 볼 테니까. 그 돈이 다해도 5억이 안 될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초 중 고등학교에서 틀어주고 미술관에서 수업을 한다. 현대 미술이 그래서 안 어렵고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관객들은 아직까지도 오락 영화와는 좀 다른 작품을 보면 '이게 뭐지?'라고 한다. 저변이 있어야 문화의 다양성을 접해도 충격이 안 오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접해야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영화 환경과 문화를 위해서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조목조목 펼쳐보였다.
실제로 영화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다양한 방식을 구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민 감독에게서 또 다른 가능성이 느껴졌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는 민 감독은 '터치'에도 그런 긍정의 마음을 담아냈다. 그는 "자살자가 정말 이렇게 많다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거다. 우리 사회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본다. 그걸 생명 3부작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라며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와 내가 던진 질문들에 대해 각기 다른 얘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민병훈 감독의 생명 3부작은 '터치'에 이어 '사랑이 이긴다', '설계자'로 내년 이후 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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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