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타격의 기본은 좋은 눈이다. 그리고 좋은 눈의 전제조건은 침착함이다. 롯데 타자들이 이 덕목을 십분 발휘하며 니퍼트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에 대항하는 니퍼트의 뚝심도 만만치 않았다.
니퍼트는 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2012 팔도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6이닝 동안 108개의 공을 던지며 6피안타 4볼넷 2탈삼진 3실점했다.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며 자신의 몫을 했다. 하지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경기 중반 롯데 타자들의 끈질긴 승부에 고전했다.
두산에는 좋은 선발투수가 즐비하다. 그런 두산이 가장 중요하다는 1차전에 내민 카드가 니퍼트였다. 벤치의 신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믿는 구석도 있었다. 니퍼트는 올 시즌 롯데전 5경기에 등판해 3승1패 평균자책점 2.13을 기록했다. 내용을 뜯어보면 더 좋았다. 피안타율은 1할9푼7리였고 27개의 삼진을 잡는 동안 볼넷은 단 5개였다. 삼진/볼넷 비율이 무려 5.4였다.

▲ 롯데의 눈, 니퍼트를 궁지로 몰아넣다
니퍼트가 유난히 롯데에 많은 삼진을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슬라이더였다. 130㎞ 초반대 형성되는 니퍼트의 슬라이더는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떨어진다. 워낙 타점이 좋고 속도도 갖추고 있어 제대로 골라내기가 힘들다. 특히 전반적으로 적극성이 강한 롯데 타자들은 이 슬라이더의 좋은 먹잇감이 되곤 했다.
양승호 롯데 감독도 경기 전부터 이 슬라이더를 잔뜩 경계했다. 양 감독은 “니퍼트가 힘으로 윽박지르는 투수는 아니다. 유인구를 많이 던진다. 바깥쪽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는 데 우리가 그 공에 삼진을 많이 당했다”라고 떠올렸다. 돌려 이야기하면 그 공만 잘 골라내면 니퍼트와도 좋은 승부가 가능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롯데가 준비한 무기는 ‘인내’였다.
니퍼트는 1·2회 주로 직구로 승부했다. 공 끝에 힘이 있었다. 서서히 페이스를 올리더니 최고 구속이 152㎞까지 찍혔다. 롯데 타자들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니퍼트가 본격적으로 변화구를 섞기 시작한 것은 3회부터였다. 주무기는 역시 바깥쪽 슬라이더였다. 그러나 롯데 타자들은 의외로 좀처럼 방망이를 내지 않았다. 공을 끝까지 보며 침착하게 니퍼트의 슬라이더를 골라냈다. 두산 배터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3회 조성환과 문규현, 4회 강민호는 모두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 나갔다. 모두 니퍼트의 슬라이더에 방망이를 내지 않은 결과였다. 결국 먼저 무너진 쪽은 니퍼트였다. 0-0으로 맞선 4회 2사 1,3루에서 황재균 문규현 손아섭에게 3연속 안타를 맞고 3점을 내줬다. 결정구가 통하지 않자 제구가 흔들렸고 특유의 몸쪽 승부도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다. 어느덧 니퍼트의 투구수는 4회까지만 82개. 롯데의 승리로 보였다.
▲ 니퍼트의 뚝심, 롯데를 역으로 찔렀다

4회 니퍼트가 위기에 몰리자 김진욱 두산 감독은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교체는 없었다. 포수 양의지의 어깨만 툭툭 두드릴 뿐이었다. 경기 전 “니퍼트가 에이스다운 책임감을 가지고 던져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한 김 감독은 니퍼트를 믿었다. 그리고 니퍼트는 거짓말처럼 되살아나며 그 믿음에 보답했다.
4회에 3실점한 니퍼트는 5회부터 다른 투구 패턴을 선보였다. 슬라이더의 구사 비율을 줄였다. 주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모험이었지만 니퍼트에게는 직구와 투심이 있었다. 투구수가 90개 이르렀음에도 니퍼트의 직구는 싱싱했다. 여기에 슬라이더보다는 커브와 체인지업을 적절하게 섞었다. 삼진을 잡기 보다는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쪽을 택했다.
직구가 눈에 들어온 롯데 타자들도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외야로 나가는 타구도 있었다. 하지만 멀리 뻗지는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5회 홍성흔의 타석이었다. 맞는 순간 장타를 예감하게 하는 파열음과 궤적이었음에도 타구는 힘을 잃고 좌익수의 수비 위치에서 잡혔다. 니퍼트의 힘이 롯데 타자들을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사이 두산은 5회 롯데의 실책에 편승해 대거 4점을 뽑고 경기를 뒤집었다. 힘을 얻은 니퍼트는 6회는 삼자범퇴로 롯데의 추격을 뿌리쳤다. 역시 구위는 살아있었다. 니퍼트는 4-3으로 앞선 7회 김창훈에게 마운드를 넘겼으나 후속투수들이 동점을 허용하며 승패 없이 물러났다. 롯데와 니퍼트의 포스트시즌 첫 대결은 그렇게 한 차례씩 펀치를 주고받은 무승부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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