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이지승 감독, "성폭력 장면 안 등장한 이유는.."[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2.10.20 19: 03

딸을 범한 악당을 쫓는 엄마. 이 사회는 그런 엄마를 단 한 순간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 엄마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화제를 모으고, 주연배우 장영남에게 첫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공정사회'가 주목해야 할 또 한 편의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외국 제목은 '아줌마'다. 왜 '아줌마'냐는 질문에 연출을 맡은 이지승 감독은 "왜 한국사람이면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냐고 (부정적으로)묻는 분도 계시더라. 하지만 항상 '아줌마'라고 불려지는 이 순수하고 순한 한국 고유의 단어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외국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면, '아줌마'라는 우리나라의 고유 명사를 알리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영화에서 장영남은 남자들에게 조롱 혹은 비아냥 조로 '아줌마'라 불리는 장면이 많다. 누군가에겐 엄마이자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아줌마인 그녀가 당하는 고통은 관객들의 가슴을 후려치며 감정을 강하게 몰입시킨다.

이 감독에게 '아줌마'란 제목이 더 낫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한국 제목으로 '공정사회'를 밀고 나간 것은, 실제로는 공정사회가 아니라는 아이러니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자칫 소재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벗고 영화를 빛낸 것은 아역배우의 인권을 지켜 준 장면 등이다. 
- 베테랑 프로듀서가 감독 데뷔를 한 이유는?
영화는 순제작비 5000여 만원으로 9회차를 찍었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과 돈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초 계획과 어긋난 것은 하나도 없었다. 55 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를 전부 다 찍었고 편집에서는 한 두 신 정도만 잘려나갔다. 그 만큼 촬영한 모든 장면이 알뜰살뜰 다 들어갔다. 하지만 장영남에게 첫 여우주연상을 안겨 줄 만큼, 그 성과는 몇 배로 크게 돌아와 당사자들도 놀라고 있다. 더욱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장본인 이지승 감독은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다.
"15년 정도 영화 프로듀서 생활을 했습니다. 가장 가깝게는 '통증'을 했고 그 전에 '해운대', '청춘만화' 등 총 7편을 했죠. 윤제균 감독과 세 작품을 했네요. 시작은 1998년 '투 타이어드 투 다이'였어요. 계속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활동했죠. PD쪽으로도 자부심이 있어요. 나이도 그렇고 작품도 많이 한 편에 속하니까요."
이미 영화판에서는 PD로서 굵직한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사실 영화계의 '로열 패밀리'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이다. 그는 일례로 임권택 감독에게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취화선'의 제작자다. 이지승 감독은 그렇기에 어린시절부터 영화와 영화인들을 자연스럽게 접해왔지만, 감독이 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임권택 감독님, 이장호 감독님, (강)수연이 누나, 안성기 선배님 등 영화계 인사들을 많이 뵜죠. 아버님이 활동하신 시기에, 88학번으로 학교(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갔고요. 사실 아버지 때문에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서, 약간 불편하긴 했어요. 반대하시는 어머니를 설득하면서 학교에 들어간 이유는 이론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죠. 졸업하고는 미국 뉴욕에서 공부를 이어갔어요. 그러다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준비하려고 할 때, 진원석 감독이 영화 찍는데 일을 해달라고 콜을 했어요. 그렇게 인턴으로 '투 타이어드 투 다이'에 참여하게 됐죠. 사실 그 때 공부가 힘들더라고요. 하하.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제가 한국 프로듀서들과 미국 프로듀서들의 중간 역할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프로듀서의 길에 들어선거죠."
베테랑 프로듀서로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가 감독으로 변신한 것에 대해 본인은 '우연이자 필연이었다'라고 설명했다. 
"10여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가 총 5000만원 있는데 제작자를 하고 싶다는 거에요. 처음에는 저와 프로듀서 계약을 하기 위해 시작이 됐는데, 결국 연출까지 하게 됐죠. 이 영화는 제자인 김형국 PD와 둘이 학교 수업에서 프리젠테이션 하던 것을 본격적으로 개발시킨 겁니다." 
이렇게 착수하게 된 '공정사회'는 이지승 감독의 도전 정신과 지인들의 협조, 도움 등을 통해 만들어졌다. "개런티도 다 필요없고, 도전적으로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된 경위는 제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있으니까 나름의 노하우를 알기에 가능했죠. 작은 영화를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나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에요. 제가 '우연이자 필연'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거에요. 결론적으로는 필연이 됐죠."
하지만 작은 규모의 영화라 하더라도 '소꿉장난'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이 감독은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허락치 않더라"고 말했다. "나름 잘나가는 프로듀서인데. 평생 쓸 수 있는 카드를 지금 한 번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마동석, 장영남 같은 훌륭한 배우들, 촬영을 해 준 황기석 촬영 감독, 편집 신민경 님 등 A급 스태프 친구들이 전부 도와줬어요. '내가 인생을 잘 살았으면 한 번은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한 번을 이번에 쓴거죠. 정말 고마운 것은, 그 누구도 잰 사람이 없고, '당신이 하는데, 당연히 도와줘야지'라고 말하더라고요. 나 역시 이 고마운 분들에게 최소한의 부담만을 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철저히 기획하고 스케줄을 짜서 만들었어요. 한 치라도 어긋나면 멘붕이 오는 스케줄이었죠." 다행이도 촬영 당시에는 날씨도 좋았고, 스케줄 역시 다 맞았다. 무리하게 밤을 샌 적도 없단다.
- '공정사회' 무엇이 특별한가? 인권 존중 눈에 띄어
영화는 시간과 상황을 스피디하게 오가는 독특한 편집이 눈에 띈다. 이 감독은 이에 대해 "내 영화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뭘 까라고 생각했죠. 참신하지 않은 소재를 어떻게 하면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어요. 골목에서 싸우는 모습과 취조실 안의 모습, 과거와 미래가 함께 들어오는 장면은 아예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랬어요. 상업적으로 투자를 받았으면 이런 구조는 힘들었을 것 같긴 해요. 독특하고 독립적인 영화여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무엇보다 '공정사회'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의 인권에 관련한 표현력이다. 영화에서는 피의자가 아이를 범하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문제의 순간,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도 한 장면 정도고, 아이는 눈을 가리고 있다. 이는 철저히 감독이 의도한 것이다.
"처음부터 의도했어요. 10살 짜리한테 그런 장면을 연기시키고, 보여주기 싫은거죠. 원래 시나리오에는 안대는 없었는데 '보여주면 안되겠다' 싶어서 안대도 하는 설정으로 바꿨죠. 만약 내가 딸이 있다면 못 찍었을 것 같기도 해요."
개인적인 취향으로 현실을 극하게 파고드는 리얼리즘 영화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 감독은 "'뉘앙스적으로 표현을 하자. 행위를 보여주지 않아도 리얼리틱하지는 않겠지만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죠. '이 장면은 직접적으로 절대 보여주지 않자'라고 의도했어요. 영화를 위해 아이를 이용하기는 싫었습니다." 이 감독의 말에서는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의 진심이 묻어나왔다.
캐스팅도 눈에 띈다. 배성우가 연기한 아버지 캐릭터가 너무 극단적이지 않냐는 질문에 이 감독은 "100% 그런 아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신경 쓴 게 남편 캐릭터였다"라고 대답했다. 비현실적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연예인 병에 걸린 사람. 자기의 명성이나 이미지, 이런 것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비열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비꼰 것이라고. 영화 속 아버지는 이 감독의 말을 빌리면, 명성과 이미지를 지키기 가장 소중한 것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게  바로 딸이다.
범인 역 황태광은 실제로는 꽃미남에 코믹한 이미지도 있는 배우다. 이 감독은 "처음 설정은 정말 딱 봐도 '범인같은 놈'이었어요. 깡마르고 누가 보더라도 끔찍한 일을 벌일 것 같은 사람 있잖아요. 몇 명한테 캐스팅 제의를 했었는데, '저한테도 캐릭터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란 말이 돌아왔죠. 범인이 그런 행동을 하는데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냐는 말이었어요. 사실 어떤 시나리오 버전에는 전사가 있기도 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피해자에게 '요만큼의' 동정도 주기 싫더라고요. 범인한테 도움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공정사회'는 아내와 딸에게 몹쓸짓을 한 악당에게 행하는 아버지의 복수를 그린 외화 '모범시민'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에 이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범사회'가 사회적인 시스템을 강조했다면, '공정사회'는 개인적인 복수와 카타르시스를 표현한 것"이라고 간결하게 설명했다.
치아고문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사회를 향한 직설적인 대사들도 눈에 띈다. "오글거리지만 하고 싶었어요. '넌 널 방치할거야' 같은 말은 철저히 문어체죠. 하지만 그런 말을 직설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이 감독은 영화계가 구조적으로 좋아져서 계속, 꾸준히 프로듀서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단다. 개인적으로 감독 커리어도 이어갈 예정.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그는 현재 차기작을 구상 중에 있다. "내가 상업영화 감독을 하더라도 태생이 프로듀서라서 좀 다를거에요. 감독이 그(프로듀서)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 아니냐는 차이가 있죠. 아무래도 어떤 작품을 하다보면 프로듀서로서 쌓은 노하우, 경험치가 도움이 되겠죠."
마지막으로 영화를 아버지께 보여드렸냐고 물었다. 이에 이 감독은 "아직 못 보셨어요. 조만간 보여드릴건데 되게 떨려요. 아주 신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들로서 보다는, 정말 대선배로서 코멘트는 많이 해주실 것 같아요. 분명히 그러실거애요. 그냥 '잘 봤다' 이러실 분은 아니니까"라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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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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