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성훈은 지난달 종영된 SBS 월화극 ‘신의’(극본 송지나, 연출 김종학 신용휘)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은백색 머리카락에 대금을 불며 홀연히 나타나 음공(音功)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흡사 컴퓨터 게임에서나 등장하는 캐릭터가 성훈이 연기한 천음자 역할이었다.
판타지 무협사극 장르를 표방한 ‘신의’에서 기술의 힘을 빌어 극대화된 상상력을 구현하는 역할이 바로 성훈의 몫이었던 셈.
“‘신의’는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공민왕과 최영 장군, 기철 등 역사 속 실존인물이 극을 중심에서 이끌도록 하고, 천음자 같은 가상의 인물을 이용해 판타지 매력을 살려 극에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 거죠. 처음 이 역할을 제안 받았을 때 배우 생활 하는 동안 언제 이런 가발을 써 볼까 하면서 흥미로워했던 기억이 나요. 혹시라도 나 때문에 드라마가 튀지는 않을까, 이질감이 생기면 어쩌지 싶었는데 나름 매력이 잘 묻어난 거 같아요.”

천음자는 가족에 대한 기억 없이 어린 시절부터 사부의 손에 길러지며 음공을 익히고, 오로지 사형제라는 세계만을 가진 폐쇄적이고 닫혀 있는 인물. 주변에 무심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캐릭터 설정은 흡사 사이코패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했다.
“캐릭터 설정을 보고 처음에는 좀 난감했죠. 그러다 다 버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주변에 대한 무관심을 표정으로 드러내 보자가 아니라 그냥 외면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인물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던 것 같아요. 또 천음자라는 캐릭터의 말 없고 내성적인 면이 나와 얼추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있어서 그 부분을 극대화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음파 무공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모습은 주로 CG로 구현됐고, 격렬한 격투신을 촬영할 땐 와이어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 같은 경험이 생소하지는 않았다고. ‘신의’를 촬영하기 전 중국에서 사극 작품의 주연을 맡아 미리 경험한 액션신이 도움이 됐다.
“와이어 타는 게 힘들다고들 이야기 하시는데 전 재밌었어요. 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하는데 딱 그 느낌이었죠. 액션신의 경우 초반엔 현장 무술감독님의 한숨소리가 많았지만 후반에 가서는 찍는 시간도 단축됐고 그러면서 스태프 전원에게 박수를 받을 정도로 잘 했다는 칭찬도 들었어요.”
천음자 역에 최적화 돼 성훈은 이처럼 성장했지만 생방송 촬영으로 진행된 일정 탓에 극 후반부 천음자가 음공을 쓰는 신은 거의 등장하지 못했다. 성훈은 “천음자의 활약을 충분히 보여드리지 못해 안타깝다”고 표현하면서도 ‘신의’를 통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연을 만들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일정이 빡빡했지만 그만큼 촬영장 분위기는 좋았어요. 배우들끼리 오히려 의지가지 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으쌰으쌰 하면서 힘내라고 격려한 거죠. 특히 기철 캐릭터를 연기한 유오성 선배님을 비롯해 신은정, 조인표, 최석진 같은 기철네 일파가 돈독했는데, 그 중에서 막내였던 저는 형들이랑 누나한테 예쁨을 많이 받았죠. 이분들 때문에 촬영장 나가는 것 자체가 즐거웠고, 좋은 스태프들을 만난 점이 제겐 ‘신의’를 통해 얻은 행복입니다.”
기철 일파의 막내로 예쁨을 독차지했다면, 김희선·이민호와는 또래인 만큼 말이 잘 통하는 친구로 돈독한 정을 쌓았다.
“민호는 친해지고 나서 저보다 나이가 어린 걸 알았어요. 이야기 하다 보면 어른스러운 면이 많이 느껴지는 친구입니다. 희선 누나는 주변 사람들까지도 환하게 만들 정도로 정말 밝은 성격을 지녔어요. 보통 사람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매력인 것 같은데 누나의 큰 장점이죠. 유오성 형님은 겉모습에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와 접근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매너 좋고 장난도 잘 치고 애교까지 있는 분이세요.”

‘신의’는 드라마계의 거장 김종학PD와 송지나 작가의 의기투합으로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은 프로젝트. 그러나 명성에 비해 ‘신의’의 이야기 구조는 빈약했고, 극 후반부 판타지 무협 사극 장르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은 멜로 전향은 산으로 간 스토리라는 지적과 함께 많은 아쉬움을 낳았다.
“작품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저는 ‘신의’를 통해 얻은 게 많아요. 우선 일인칭 시점에서만 작품을 보던 제 눈이 ‘신의’를 하면서 넓어졌고, 또 액션연기를 두 작품 연이어 하면서 액션 연기는 어느 정도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감이 붙었어요. ‘신기생뎐’ 할 때만 해도 선배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함께 연기한 분들이 대부분 선생님들이었다면 이번 ‘신의’를 하면서는 선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내가 가깝게 앞으로 연기할 역할을 지켜보는 경험도 했고요. 무엇보다 좋은 인연들을 만난 걸 빼놓을 수 없죠.”
지난해 임성한 작가에게 발탁돼 ‘신기생뎐’을 통해 데뷔한 성훈은 이번 ‘신의’를 하며 송지나-김종학 콤비에게 낙점되는 행운을 누렸다. 두 작품 모두 드라마계에서 자기 브랜드를 지닌 이름 있는 제작진이 성훈을 눈여겨봤기에 가능했던 특별한 기회를 누린 셈.
“운이 좋다고 말 할 수밖에요. 저야 배우 생활 하면서 반드시 작품 해보고 싶은 분들이긴 한데, 이분들께서 저를 선택해주신 점이 오히려 의문이죠. 임 작가님께는 확실한 캐스팅 이유는 듣지 못했는데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제가 닮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어요. 이번 ‘신의’ 같은 경우 김종학 감독님께서 제 얼굴에서 이중적인 매력이 있다면서, 그런 점 때문에 저와 같이 해보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었죠. 제 눈이 한쪽에만 쌍꺼풀이 있는데 그래서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곤 해요. 이중적인 매력은 아마 그런 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매일 거울을 보면서 느끼는 부분이긴 하거든요.”
‘신의’를 막 마친 성훈은 휴식 없이 또 다른 작품 출연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 작품과 중국 작품을 나란히 검토하며 배우 성훈을 담금질 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르고 있다고.
“작품의 흥행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제게 중요한 건 내가 맡은 배역이 어떻게 될까, 이 역할을 내가 정말 잘 소화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역할에 얼마만큼 흥미가 있는지 여부인 것 같아요. 정말 나쁜 악역이나 코믹한 연기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어떤 배역이든 그 역할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색깔이 많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sunha@osen.co.kr
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