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이경영, "한국서 못 사는게 아닐까 했는데.." [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2.11.20 11: 59

배우 이경영이 고문기술자로 분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역시 시대의 피해자란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남영동 1985'(22일 개봉)로 돌아온 이경영은 실제 역사 속의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바탕으로 한 이두한 캐릭터를 통해 기억에 남을 만한 입체적인 악역 연기를 보여준다.
'부러진 화살'을 만든 정지영 감독의 차기작인 '남영동 1985'는 1985년,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 간의 기록을 담은 실화로 故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래 제목은 '야만의 시대'였다. 타이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 만큼 괴물을 만들어냈던 그 시절, 어떤 이에게는 SF영화로 느껴질 법한 실화가 눈 앞에서 펼쳐진다.
이근안을 바탕으로 한 이두한 캐릭터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터. 하지만 이경영은 "배우라면 그 역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라며 배우의 입장으로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서 실명을 쓰지 않은 이유가 고 김근태 의원이나 이근안 경감이라 국한시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심플하게 접근할 수 있었죠. 일부러 이근안 경감에 대해 참고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참고했다면 사견이 들어가게 되고 어떤 동작이나 어느 부분을 닮아가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이두한 캐릭터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것 같았죠."
그는 이두한 캐릭터가 극중 추구하는 목표, 기본적으로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극대화된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에 힘을 실었다. 이경영은 "결과론적으로는 잘못된 애국심이긴 하지만 내가 그것을 극대화시키면 시킬수록 김종태(박원상)는 힘들 것이고, 그러면 정지영 감독님이 전하고자 한 울림에 진정성을 더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 목표를 위해 나 뿐만 아니라 같이 참여한 배우들 스태프들 혼연일체가 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캐릭터로 촬영에 임하는 과정에는 굉장한 고통이 수반된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배우도 인간이다 보니 고통스러웠죠. 감독님이, 그리고 우리가 고문신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잘 표현됐어야 해서 집중도를 높였습니다. 그래도 현장 카메라 뒤에서는 배우들끼리 농담도 하고 그랬는데, 집에 들어가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만약 현장에서 농담도 안 하고 분위기를 안 풀었으면 촬영을 못 끝냈을 겁니다. '컷', '오케이' 사인을 받으면 돌아서서 좀 전에 있었던 것을 다 지워버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다시 새로운 기억을 만들었죠. 하지만 이게 반복되다 보니 숙소에 가면 그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라고요. 그래도 감독님의 고통이 제일 컸죠. 고문하는 배우들, 피해자 박원상 양쪽이 다 아프니까. 우리는 한 가지 고통이라면 감독님은 두 가지의 고통을 이중 삼중 촬영하면서 느껴야 했죠."
이경영은 가장 안쓰러운 장면으로 박원상이 "밥은 언제주나요?"라고 묻는 모습을 꼽았다. 이경영은 "박원상이 진짜 안쓰럽더라. 점점 야위어 갔다. 스스로도 육체적인 표현을 하기 위해 굶었다. 레몬 디톡스를 했고, 밥 먹으러 가면 '형님들 다녀오세요' 이러더라. 참다 참다 배고프면 조금 먹고. 미안했다. 그래도 고문이 끝나면 마사지를 해 주고, 가려운 데 긁어주고 그랬다. 특히 나는 점점 '얘가 (묶여있으니까) 여기가 가려울 것 같다'란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 강도 깊은 촬영으로 부부 관계가 됐다고나 할까. 하하. 슛이 끝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그런 일이 언제있었냐는 듯이 했다. 아픈 영화이지만 즐겁게 찍었다"라고 촬영장을 회상했다.
또 그는 김종태 역을 맡은 박원상에 대해 "정말 정직한 배우"라며 "투박하지만 진정성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배우다. 테크닉 만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라고 칭찬했다.
김종태 역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이 질문에 이경영은 "'당신이 연기자라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겠냐?'란 질문에 연기자들의 답은 반반일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하나는 민주화의 대부셨던 그 분의 신념을 닮고 싶어서 고통스럽긴 하지만 견뎌보고 싶은 배우도 있을거고, 욕을 먹어도 배우로서 꼭 하고 싶은 성취도를 느끼고 싶은 사람 또한 있을 것 같아요. 박원상은 고귀한 그 분의 행동과 신념을 훼손시키지는 않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박원상을 김종태 역으로 한 게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투박한 정직성이 보이더라고요. 전 지인테 '나 김근태 관련 영화 하기로 했어'라고 말하니 '네가 이근한 역할이냐?' 너 정말 잘해라'고 하더라고요. 고춧가루 고문을 한 뒤에는 그 형한테 '내가 싫어져'란 문자를 보냈어요. 모니터를 하면서는 '나 이거 한국에서 살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기도 했죠. 농담 반으로 '이거 개봉하면 우리나라 떠나야 하는 거 아냐?' '이민 신청해야하는 거 아니야?'란 말도 했고. 그런데 영화를 본 후 오히려 안쓰럽다고 하는 관객 분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 시사 후에는 무대에 선 이경영이 눈물을 보이며 "죄송하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때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는데, 당시는 그 원인을 못 찾았어요. '죄송..' 하는데 목이 메어서 '합니다'가 울컥해서 나오더라고요.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여러 감정이 결합 됐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렇게 연기했구나'라고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오, 내가 저렇게 했어?'란 장면도 있고. 객관적으로 영화에 빠져 들어갔죠. 김종태가 고문에 못 견뎌 거짓 자백을 하며 자기 반성을 하는 그 때부터 눈물이 고였죠. 그리고 피해자 영상이 나오고. 고문 피해자 영상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아픔이 극대치로 와닿더라고요. 왜 극대치로 와닿냐하면, 앞에 영화가 있으니까요. 배역이었지만 시대 정신을 고문한 한 배우로서의 죄송함. 그복합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 분들이 피를 흘리면서 민주화를 지켜냈을 때, 실제 나는 주류에 들지 못하고 소극적이고, 동지의식을 갖지 못하고, 두려움이 많은 회색분자였다는 생각에 죄송했죠. 그렇게 저처럼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영화를 통해 그런 부끄러움도 반성하게 되고, 또 새로운 시대에는 다시 그런 불의가 생기면 이전과는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우로서 연기에 아쉬움이 없었냐는 질문에는 "왜 없었겠냐"라고 말하며 "(고문을) 좀 더 세게할걸. 세게 해서 고통의 깊이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라는 아쉬움이 있었죠. 하지만 감독님이 '이걸로도 충분한데, 너 한국 땅에서 못살려고 그러냐'고 하시더라고요."
또 이경영은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대해 "관객들에게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와 바람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아요. 간단하게 말하면, 아무리 거짓의 힘이 커도 작은 진실 앞에 무너진다란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나도 어떤 부분에서는 기회주의적인 것도 있고 진정한 가치를 외면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이런 영화를 통해 나랑 유사한 경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라며 "'남영동 1985'에 대해 '그거 SF영화 아니에요?' 이런 반응이 올 만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대선에 이 영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궁금증도 큰 요즘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후보가 다음 대통령이 되도 과오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같은 영향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고 김근태 의원을 상징하는 두꺼비가 촬영장에 나왔고, 촬영장에서는 귀신 소리도 들렸는데, 그 영혼조차도 고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나. 그 만큼 집중해서 아프게 찍었다는 반증이다. 울림을 주는 영화, 메아리가 있는 영화로 기록되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라고 바람을 내비쳤다.
이달 말 '남영동 1985' 외에도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 '26년'이 개봉한다. 이경영은 두 영화에 모두 주인공이다. 절묘한 우연이다.
"그래도 개봉이 3, 4주 차이는 날 줄 알았는데 배우 입장에서는 두 영화한테 다 미안하죠. 두 영화가 같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같은 소재이지만, 시대의 아픔을 그려내는 방법이나 접근방식은 되게 달라요. '남영동 1985'은 돌직구, '26년'은 웹툰을 영화화한 만큼 슬라이드나 구질이 다르죠. '남영동 1985'가 아버지라고 치면 '26년'은 어머니에요. '남영동 1985'가 동맥같은 굵은 줄기의 핏줄이라면, '26년'은 실핏줄이죠. 어쨌든 핏줄이란 것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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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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