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년’ 이정현, “광녀로 컴백은 싫었어요”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2.11.22 15: 41

[OSEN=정유진 인턴기자] 16년 전 소름끼치는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경악케 했던 ‘꽃잎’의 가녀린 소녀가 어느새 엄마가 돼 돌아왔다. 앳된 얼굴은 아직도 십여 년 전과 다를 바 없지만, “살아보니 내 계획대로 되는 건 없더라”며 담담하게 내뱉는 말과 눈빛에는 데뷔 16년차 가수 겸 배우만이 낼 수 있는 깊이가 있었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범죄소년’에서 이정현은 13년 동안 버려둔 중학생 아들 지구(서영주 분)를 처음 만나는 철없는 서른셋의 미혼모 효승 역을 연기했다.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가출한 그는 범죄소년이 돼버린 아들 지구와 다시 만나 함께 살면서 처음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느낀다. 중학생 범죄소년 아들을 둔 미혼모. 또래들보다 훨씬 동안인 이정현의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라 몰입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우려를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
“원래 저와 감독님의 목적이 그런 이질감이었어요. 13년 만에 아들을 만나는 미혼모라면 완전한 엄마보다 서먹서먹하고 뭔가 부자연스러운 게 현실적이지 않나요. 엄마 연기도 처음부터 효승과 지구가 처한 현실을 인지한 상태로 내가 효승이라 생각하고 연기한 거라 어려움은 없었어요.”
영화는 미혼모에서 범죄소년으로 사회의 무관심 속에 대를 이어 되풀이되는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그렸다. 미혼모들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하며 ‘범죄소년’에 출연한 이유를 밝히는 이정현의 눈이 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에 영화가 들어왔을 때는 미혼모 역할에다 노 개런티라는 말을 듣고, ‘절대 못 하겠다’ 거절했어요. 그러다 결국 영화를 하게 된 건 사회적으로 좋은 메시지 담고 있는 영화니 다시 생각해보라는 감독님의 설득도 있었지만, 정말 제 마음을 크게 흔든 건, 영화를 고민하면서 보게 된 미혼모 다큐멘터리 자료였어요. 미혼모들이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상태에서 아이와 함께 살려고 애쓰는 게 안타까웠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을 위한 사회적 보호가 몇 개월 안 되거든요. 교육도 받지 못한 미혼모들이 고생하면서, 가난이 대물림 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뭐가 되든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렇게 재능기부로 참여하게 됐어요.”
아직 개봉 전인 ‘범죄소년’에 대한 해외영화제의 반응은 뜨거웠다. 토론토국제영화제, 타이페이금마장영화제 등의 영화제에 초대된 데 이어 도쿄국제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특별상, 남자주인공 지구 역의 서영주가 최우수남우상을 받기도 했다. 이정현 역시 해외영화제 상영에서 “폭발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연기가 놀랍다. 영화 역사상 전례가 없는 어머니상”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영화가 이렇게 새로운 어머니상을 그려내는 데는 이정현의 공이 컸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캐릭터 분석력을 발휘, 주인공 효승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낸 것.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효승은 어둡고 슬픈, 신파적인 느낌이 강한 역할이었어요. 물론 힘든 삶을 사는 역할이지만, 그걸 똑같이 힘들게 표현하는 것보다 살려는 의지를 그려내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13년 만에 아들을 만나서 사랑하고 책임감을 배우는 역할이잖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의지를 더 내는 사람이라면 울상을 짓기보다 억지로 미소라도 지어 보이면서 간절히 애원할 것 같아요. 그래서 첫 촬영 때 감독님께 내가 만약 효승이라면 이렇게 심각한 것 보다 웃으면서 말 할 것 같다, 그만큼 살려는 의지가 강한 거라고 말씀드리면서 캐릭터를 설정하게 됐어요.”
이렇게 재능 있고, 욕심 많은 배우임에도 그동안 왜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던 걸까. 실제로 지난해 박찬욱-박찬경 감독이 연출한 ‘파란만장’을 제외하면 장편으로는 2000년 공포영화 ‘히피’ 이후 첫 출연이다.
“항상 스타트를 영화로 해서 영화에 대한 갈증은 있었어요. 음반은 저 혼자 힘으로 열심히 하면 혼자 만들 수 있지만 영화는 감독님, 제작사, 투자배급사, 좋은 시나리오까지 너무 많은 우연의 일치가 좋은 기회로 굴러 들어와야 하는 작업이라 어려웠던 부분이 있어요. 물론 시나리오들이 많이 들어오긴 했어요. 하지만 들어온 역할이 거의 공포영화 주인공이나 광녀 역할. 사실 그런 역할로 컴백하는 건 싫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박찬욱 감독님이 연락하셔서 ‘찍자’고 하셨죠. 그런데 역시나 무당(웃음). 그렇지만 시나리오가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요. 재미있는 판타지 영화였어요. 너무 좋아서 아이폰 단편이지만 출연을 결심했고 그게 계기가 돼서 강이관 감독님과도 함께 작업하게 됐고요. 박찬욱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죠.”
강이관 감독은 지난 9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범죄소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정현의 폭넓은 연기력을 칭찬하며 “‘꽃잎’ 이후에 연기를 하고 있나 생각했는데, ‘파란만장’을 보면서 그 해 나온 영화 중 가장 연기를 잘한 배우라 생각했다”라며 그를 영화에 캐스팅하게 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두 편의 영화를 찍고 또 새로운 영화를 준비 중이라는 이정현. 이제는 가수가 아닌 배우의 길을 가려는 걸까.
“연기도 음악도 둘 다 운명에 맡겨보려고 해요. 나는 음악만 하겠다, 연기만 하겠다, 한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스무 살 때부터 연기를 할 계획이었는데, 이번이 12년 만의 장편이에요. 계획대로 다 안돼요. 그냥 그 때 그 때 좋은 영화 들어오면 거기에 충실하게 하면서 모든 걸 운명에 맡기려고요. 결혼도 그렇고.(웃음)”
연기를 할 때는 배우 이정현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게, 음악을 할 때는 가수 이정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두 가지 모두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욕심 많은 이정현은 내년에 발표할 새 앨범도 준비 중이다.
“미니 앨범으로 찾아뵐 계획이에요. 타이틀만 결정이 아직 안됐어요. 아마도 미디움 템포 댄스곡이 될 거고요. 아이돌들과는 경쟁 안 할 것 같아요. 라이벌을 만드는 순간 지는 것 같아요. 앨범이 장수로는 국내 앨범만 10장 넘는데, 누군가와 경쟁을 한다기보다는 팬들과의 소통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저를 좋아하는 마니아층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음악으로 컴백하는 게 제 목표예요.”
화려한 퍼포먼스와 비주얼은 가수 이정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인터넷 게시판 사이트 등에서는 종종 ‘와’나 ‘바꿔’ 등으로 활동할 당시의 이정현을 레이디 가가와 비교하기도 했다. 실제로 친분이 있는 싸이는 특이한 퍼포먼스와 재미있는 뮤직비디오로 유투브를 통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부러움을 느끼거나,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은 없을까.
“(레이디 가가와의 비교에)감사합니다.(웃음)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만족해요. 물론 가끔 팬클럽 아이들이 ‘누나가 유투브 대중화 됐을 때 나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전 정말 지금 상황에 만족해요. 계속 음반도 만들 수 있고. 중국에서도 찾아주시고. 이렇게 한국에서의 연기활동도 다시 시작하게 돼서 감사하는 마음뿐이에요. 싸이 오빠도 너무 잘돼서 좋아요. 저도 오빠처럼 저만의 세계를 계속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차기작을 잘 찍고, 새로 준비하고 있는 음반 잘 마무리 지어서 내년 초에 공개하는 것. 짧지만 뭘 하든 최고를 이뤄내는 이정현이기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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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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