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일이다. 평소 생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을 뿐인데 ‘정글미인’, ‘건강미녀’ 등의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라진 모습은 없었지만 변한 건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SBS ‘정글의 법칙 in 마다가스카르’를 통해 전혜빈은 그야말로 ‘호감연예인’으로 탈바꿈했다. 400m 허공에 매달린 공중현수교를 전력질주로 건너고, 괴물장어를 잡겠다며 팔을 걷어붙이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나무를 탔을 뿐인데 그 건강함에 사람들이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신기한 듯 전혜빈은 “사랑 받으니 얼떨떨하고 신기하다”며 얼굴을 붉혔다.
“여자 혼자 정글에 들어가서 살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사실은 상상이 안 됐어요. 그러다 출국일이 와서 정글로 떠났는데 당당해 보였던 겉모습과 달리 사실 걱정스러웠죠. 아무래도 극한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내 속에 있는 안 좋은 모습이 돌출될 수도 있고, 직업도 직언인지라 못 씻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영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정글에 다녀온 이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가 착각 속에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간 드라마로 사랑 받고 싶어서 아등바등했던 것 같은데 기대도 못 한 분야에서 사랑 받으니 실감이 안 나요.”

‘정글미녀’로 사랑받기까지 전혜빈은 JTBC 주말드라마 ‘인수대비’, SBS ‘왕과 나’ 등에 출연하며 배우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주로 맡은 배역은 사약을 받고 명을 달리한 폐비 윤씨나, 욕망가인 희대의 요부 장녹수 등 ‘정글’ 속 이미지와 달리 새침하다 못해 악독한 캐릭터가 대부부분이었다.
“드라마 속 역할이 악역이거나 차가운 캐릭터가 많아서 저의 실제 모습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나서 보니 그런 이미지가 의도치 않게 반전효과를 극대화시킨 것 같기도 해요. 전복적인 이미지가 시너지 효과를 낸 건데, 그런 걸 보면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같아요.”

대중의 큰 사랑이 얼떨떨하지만 사실 마다가스카르 오지 탐험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제작진에게는 식사가 주어졌지만 ‘병만족’ 7인에게는 화면에 나온 그대로 손수 음식을 구하기 전까지 아량이란 없었고, 편하게 몸을 누일만한 잠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솔직히 정글에 가기 전에는 먹을 걸 정말 안 줄까 내심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보셔서 아시겠지만 24시간 카메라가 돌고 있고 마음대로 되는 건 없으니까 정글 생활은 그야말로 절실함이 밑바탕이 돼요.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동물을 봐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먹을 수 있을까’였고, 열매만 보면 무조건 입에 넣기부터 했죠. 또 씻지도 못하니까 정글에서의 저희들은 그야말로 짐승이었어요.”
23일간을 이렇게 보낸 탓에 전혜빈은 입국 뒤에도 한동안은 정글에서의 버릇을 버리지 못해 지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고.
“땅에 떨어진 음식을 나도 모르게 주워서 입에 넣었는데 친구들이 기겁을 하는 거예요. 정글에서는 당연한 건데. 혐오음식도 원래 못 먹었는데 이제는 다 가능할 것 같아요. 고슴도치, 야생오리, 장어, 뱀 까지 다 입어 넣어 봤는데요 뭘.”
웃으며 이야기 하는 추억이 됐지만 정글 생활이 남긴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주린 배에 낯선 음식물을 섭취하다 보니 위장에 무리가 생겼고, 귀국한 뒤 받은 내시경 검진에서는 내장병의 기미가 생겼다는 의사 소견이 뒤따랐다.
오지 생활로 인해 온몸이 받은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았다. 도시 보다는 개발되지 않은 지역을 주로 택했기에 연신 빨간 흙먼지를 들이마셔야 했고 그러다 보니 온몸은 황토팩을 한 것 마냥 매번 검댕을 뒤집어 써야 했다. 코를 풀면 나뭇가지가 나왔고,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불에 탄 듯한 느낌을 주는 식물들을 헤치며 다녀야 할 때도 여러 번이었다. 비포장도로를 이틀씩 달리는 과정에서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소음과 덜컹거림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 생각도 있고 의지도 작용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황폐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사람이 단순해져서 ‘배고프다’, ‘쉬고 싶다’ 같은 생각만 하게 되는 거예요. 그곳에서 깊은 고뇌를 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또 한 번 정글을 찾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 됐다. ‘정글’이 시즌2를 마감하고 새 시즌을 시작하며 전혜빈의 재합류 여부가 이슈로 떠올랐지만 큰 사랑에도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나이도 있는지라 함부로 갔다가는 진짜 골병들어서 올 것 같아요(웃음). 저희 프로그램을 보신 분들 중에 오지 탐험을 한 번씩 떠올리는 분들이 계시던데 경험자로서 쉽지 않다는 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그 고생스러운 경험 뒤에도 문뜩문뜩 한 번씩은 정글 생활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는 점이에요.”
정글 생활을 통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경험 역시 전혜빈이 고생이 담보되는 여정에 한 번 더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그는 이번 정글행이 자신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것에 대해 적지 않은 놀람과 함께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감을 갖게 됐다는 심정을 털어놓았다.
“정글 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시청자들에게 저를 진실 되게 보여줌으로서 저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을 한 순간에 녹아내릴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얻게 된 점이예요. 이 경험을 통해서 앞으로 저에게 닥칠지 모를 더 어려운 일들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얻게 됐죠.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보다 더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이 같은 수확을 기반으로 전혜빈은 대중과 더욱 긴밀히 호흡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작품 활동으로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원래 올해 목표는 남자친구를 만드는 거였는데 정글 생활 이후 방향을 수정했어요. 지금은 연인으로부터 받는 사랑이 아닌 다른 데서 오는 사랑을 일을 하는 데 쏟아 붓고 싶어요. 지금 같은 경험이라면 제가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대중이 ‘쟤 원래 그런 애 아니야’라고 여기실 거라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신뢰를 준다는 게 이렇게 좋고 기쁜 일이구나 하는 걸 지금 경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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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