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남자들한테 실망 많이 했어요. 몰라도 되는 부분까지 다 알게 돼 버려서 그런 것 같아요.”
리얼한 주부 연기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던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배우 김정은의 리얼한 드라마 조영소감이다. 극 초반 영혼체인지로 극중 고수남의 영혼이 깃들어 ‘남성’의 연기를 펼쳐야 했었던 김정은은 신현준과 함께 결코 가볍지 않은 얘기들을 풀어내야 했고, 결국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답게 궁극의 연기력으로 극의 무게중심을 잡아가며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약 3개월이란 시간동안 KBS 2TV 월화극 ‘울랄라부부’의 나여옥을 연기한 김정은은 캐릭터에 완벽하게 빙의됐던 지난 시간을 추억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들려줬다. 촬영을 마친 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김정은은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에너지가 가득했다.

◆ “코미디를 표방했지만 그 깊이는 끝이 없었죠”
김정은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했다. 여옥의 캐릭터는 물론이고, 수남(신현준)의 영혼이 깃든 모습에서부터 전생으로 돌아가 게이샤가 되기도 했다. 다양한 변신의 뒤엔 항상 고충이 따르기 마련.
“한 드라마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연기를 보여 드릴 수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어요. 서로 몸이 바뀐 상태에서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기도 하고 옷매무새, 메이크업 까지 전부 다 바뀌는 거라서 힘들었지만 진정성 있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보는 사람은 심각한데 코미디는 진짜 원 없이 한 것 같아요.(웃음)”
그런 그는 ‘울랄라부부’의 극의 흐름이 극 초반 코미디에서 후반 다소 진중한 이야기로 흘러간 것과 관련해서도 얘기를 들려줬다. 김정은은 “밝은 이야기라서 출발했는데 너무 슬퍼져서 배신당한 느낌”이라고 농담을 던지면서 “여옥이의 감정을 따라가려고 했다. 극이 코미디였지만 그 깊이는 끝이 없었다”고 말했다.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으면 연기가 잘 안 나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님이 극에 새로운 것들을 공급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세련미가 넘치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이런 얘기를 꼭 한 번 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좋은 얘기라고 생각했고, 믿고 따라갔죠. 물론 숙제였던 부분도 있어요.”
김정은이 말하는 자신의 숙제 같았던 ‘울랄라부부’의 몇몇 장면은 이렇다. 남편의 외도를 직면했고 자신 역시 첫 사랑인 현우(한재석)를 만나 사랑을 키웠지만 수남에게 간 이식을 받았던 장면이다. 그는 “저 정말 그 장면 찍으면서 화가 많이 났었던 것 같다”면서 “병원에 입원한 고수남을 보고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예상컨대 남자들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여자들은 화가 났었을 거다”라며 웃어보였다.
인터뷰 내내 남자와 여자의 상반된 심리를 적나라하게 얘기한 김정은은 그 자체로 ‘울라라부부’에 혼신을 쏟았던 연기자임을 인증했다.
“정말 남자들한테 실망 많이 했어요. 몰라도 되는 부분까지 다 알게 돼 버려서 그런 것 같아요. 인간이라는 게 외로운 존재 이니까 평생 친구처럼 같이 걸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하는 것은 맞는데 저는 정말 이번에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졌어요.(웃음)”

◆ “신현준, 한재석은 최고의 파트너”
김정은은 ‘울랄라부부’에서 연기 호흡을 맞췄던 신현준에 대해서 “서로 합을 짜지도 않을 정도로 최고의 호흡이었다”면서 “최고의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부부의 무언가를 넘어선 느낌이었죠. 사랑의 감정을 주고 받고, 내가 그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이 내가 되는 희한한 상황이었잖아요. 눈빛만 봐도 저 사람이 뭘 원하는지를 아는 것 같았어요.”
김정은은 이번 드라마가 자신에겐 “액션드라마 같았다”고 말하면서 신현준과의 환상적인 호흡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는 “처음에 제가 고수남의 영혼이 들어와서 합방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여옥이가 거부해서 침대 밑으로 슝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장면이 있었다”면서 “구르고 장난이 아니었다”고 웃었다.
“신현준 씨와 몸을 부딪치는 장면이 많았는데 서로 정말 원 없이 그 역할에 몰입해서 ‘어떻게 쌍코피를 흘려야 터질까’ 함께 고민했어요. 브래지어를 풀어달라고 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카메라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어요.(웃음)”
이와 함께 그는 주부들의 팬터시를 채워졌던 현우 역할을 맡았던 한재석에 대해서도 “훌륭한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여옥이 현우를 선택하지 않고, 결국 수남을 선택한 결말에 대해서도 얘기를 풀어냈다.
"저희 엄마도 '수남이 간은 이식받고 현우랑 그냥 가면 안되냐'고 하시더라고요. 저야 아직 평화와 안정보다는 모험과 사랑이 더 좋으니까 현우를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하지만 아들 기찬이가 여옥이의 발목을 잡았을 것 같아요."
그는 “여옥이는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여서 그랬던 것 같다. ‘간' 때문이 아니라 모든 건 기찬이 때문이었지 않을까. 완벽하게 공감하진 못했지만 이 역시 사랑의 한 종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리고 고수남의 성장도 있었다. ‘여옥이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누가 인정해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 시월드 가상체험..“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졌어요”
김정은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가상 시월드를 경험했다. 극 초반 여옥은 가족들의 타박을 받는 가정주부로 혹독한 시월드를 경험했다.
그는 “남편에, 시동생에 시어머니까지. 공교롭게도 세 배우가 모두 닮았다”고 웃으면서 “코믹하게 풀기는 했지만 마음만은 무거웠다”고 말했다.
“‘아 이럴수가 있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견뎌냈어요. 일상적으로 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렇게 밥 차리는 것도 힘들지만 구박까지. 어느덧 이것이 일상이 된 나여옥의 모습을 연기하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런 그에게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드라마 전후 어떻게 변화했는지 묻자 재밌는 답이 돌아온다. 김정은은 “‘이래서 결혼이 쉬운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면서 “인간이라는 게 외로운 존재니까 평생 친구처럼 같은 길을 걸어가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제 나여옥을 놓고 차기작을 찾는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원래 그랬듯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선택할 예정이란다.
"다음 작품은 결정된 게 없어요. 제가 생각보다 주어진 상황 등에 따라 충동적으로 결정하거든요. 꽂히면 막 두려움 없이 하고요. ‘울라라부부’도 이제 밝은 걸 하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었는데 이제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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