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채원 “모험이 곧 보답이라 생각했어요”[인터뷰]
OSEN 조신영 기자
발행 2012.12.04 07: 56

작품 보는 눈도 있는데 모험을 즐길 준비가 돼 있는 연기자다. 일희일비 하지 않는데다 대찬 면도 보였고, 시간이 더해지니 연기에 몸을 맡길 줄 아는 배우가 돼 있었다.
종영된 KBS 2TV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극본 이경희, 연출 김진원, 이하 착한남자)에서 서은기 역을 맡았던 배우 문채원을 최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작 ‘공주의 남자’를 통해 약 1년 전 만났던 문채원은 1년이라는 시간동안 훌쩍 성장해 있었고, 보기 드문 생각 있는 여배우라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다. 엉뚱해 보이지만 진중한 성격은 자신이 배워야할 점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 그리고 배우로서 시청자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줄 아는 똑똑한 배우였다. 알고 보니 ‘착한남자’도 그런 의미에서 선택한 작품이었다.

◆ 모험 같았던 ‘착한남자’..“어려움 없으면 재미 없었죠”
문채원은 이번 서은기 역으로 처절한 사랑과 복수의 변주곡을 그려나가며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동안 사극에서 보여줬던 절절한 감성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독기 어린 서은기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해내면서 멜로드라마 여주인공들의 전형을 깨버리기까지 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작품을 선택할 때 멜로부분이 독특하거나 아니면 캐릭터를 봐요. 두 가지를 충족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착한남자’는 온전히 은기 캐릭터에 반해서 바로 선택했던 작품이죠. 은기는 어쩌면 남자 주인공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고 남자 주인공 마루(송중기)는 여자 주인공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정말 해 보고 싶었어요.”
그는 연기자로 발을 디딜 때부터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이 맡았던 캐릭터를 꼭 연기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었고, 줄곧 남자들이 하는 캐릭터를 탐내왔었다고 고백했다.
문채원은 “사람을 못 믿고 후계자로 길러지고, 보통은 여자가 남자한테 반하는데 이번 캐릭터는 완전 반대였다. 옷만 남자 옷을 입으면 전형적인 남성 캐릭터 였다”면서 “제가 앞날을 못 보고 안타까워했었는데 그런 캐릭터가 제 눈앞에 나타났으니 당연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단번에 하겠다고 했던 그도 덜컥 겁이 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있었다. 소속사 김민숙 대표가 김진원 감독과 이경희 작가를 만나고 오는 차 안에서 ‘너 어떻게 하려고 하냐’고 말했던 때였단다.
“어려운 캐릭터지만 하고 싶은 것들이 녹아있었고, 어려움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표님 말을 듣고 나니 덜컥 겁이 났어요. ‘다 해놨는데 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하면 어떻게 하냐’고 말했지만 모험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기억을 잃기 전과 후의 은기 캐릭터가 두 개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제 선택과 도전을 끝까지 믿고 지켜봐 주셨기 때문에 지금처럼 웃을 수 있는 것 같아요.
◆ “해피엔딩 결말 만족..송중기는 일관성 있는 배우”
순애보 적이었던 여느 멜로 주인공들처럼 문채원이 맡았던 서은기 역시 사랑 앞에선 한없이 순수했지만, 격한 감정으로 복수도 할 줄 알고 좌절하거나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느 멜로드라마 여주인공과는 다른 매력을 뽐냈다. 그리고 특이하게 극중에서 기억을 잃으면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처음부터 기억상실 코드로 나왔으면 모르겠지만 상반된 모습을 보여드려야 했잖아요. 깊이를 더해가는 느낌이 아니라 딴 옷을 입어야 하는 거였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서 9-10회를 기점으로 앞에 은기와 굿바이를 했고, 그 이후의 은기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 문채원에게도 마음을 달리 먹게 만든 시간이 있었다. 극 초반 일본에서의 촬영 당시 많은 것을 느꼈단다.
“시험대에 올라간 것 같고, 점수를 매길 것만 같고 그래서 대본을 못 놓겠더라고요. 자기 전까지 계속 대사를 외우고 일어나서부터 대사를 하고, 자다가도 불안하니까 연기해보고. 그만큼 애정은 있는데 나랑은 다른 것 같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 그런 준비를 하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바람도 쐬고 간간이 생각을 달리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었던 것 같아요. ‘아 어렵다’ 느끼지만 했을 때는 재밌을 거고, 어느 순간 설레일 거고, 자신감이 어느 순간 붙을 거라 생각했죠.”
선배 류승룡의 대본을 본 이후 그의 모습을 본받아 보통 대본에 밑줄은 기본이고 형광색 펜까지 써가며 공부하듯 대사를 외운다는 문채원은 후반부의 기억을 잃은 은기를 연기할 때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제가 2008년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 출연했을 때 우연찮게 류승룡 선배님 대본을 본 적이 있어요. 자로 잰 듯 꼼꼼하게 밑줄이 쳐져 있었고, 예쁘게 대본에 여러 표시가 돼 있었죠. 그래서 (문)근영이 대본인 줄 알았는데 류승룡 선배님 대본이었어요. 어떤 선배님의 대본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느낀 게 많아서 그 이후론 소중하게 대본을 아끼고 많이 표시하면서 대사를 연습해요.”
그런 꼼꼼한 문채원에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대사가 외워지지 않았던 것.
“대사가 초반에 진짜 많았는데 잘 외웠었거든요? 그런데 기억을 잃은 이후에 정말 대사 외우기가 어렵더라고요. 제가 마치 은기가 된 것 처럼요. 기억을 잃은 은기는 생각나는 말을 툭툭 하는데 저는 기억을 잃지 않았으니까 어려웠던 거에요. 중기 오빠가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자지 그러냐는 얘기까지 했을 정도였죠. 그런 어려움이 있었는데 정말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 그에게 끝까지 완주한 소감을 물으며 결말에 대해 만족하냐고 물으니 “해피엔딩을 원했고 아무리 초반에 이런저런 사건과 메시지가 있어도 멜로는 크게 흔들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통영에서 마지막 장면을 찍으면서 ‘아 완성이 됐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 그 감동이란. 이경희 선생님은 진짜 선생님이구나 생각했어요. 마지막 회에서 수술을 한 뒤 마루가 기억을 잃고 은기와 다시 사랑에 빠져 청혼반지를 건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고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요. 대본에 그 반지를 받고 은기는 단순히 ‘미소 짓는다’만 표시돼 있었어요. 느끼는 대로 하라고 하시면서 제게 맡기셨는데 마루를 향해서 ‘기억이 있었던 마루가 아닌 척 한 걸 안거야?’라는 느낌으로 처리했죠. 놀라웠어요. 그런 연기를 해볼 수 있게 해주신 두 분께 너무나 고마웠어요.”
그는 또 상대배우였던 송중기에 대해선 “6개월 동안 촬영하면서 느꼈던 건 정말 가식이 없고 꾸밈이 없는 솔직하고 소탈한 배우라는 것”이라면서 “작품의 처음과 끝이 일관성있는 연기자 였다”고 칭찬했다.
◆ 상복 많은 문채원이 시청자에게 보답하는 법
문채원은 지난해 영화와 드라마의 연이은 흥행으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비롯해 KBS 연기대상 최우수 연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말 그대로 상복도 많은 배우다.
“데뷔한 이후 상에 관심을 두거나 욕심을 낸 적은 없어요. 영화제 때였나. 배우는 늘 수상소감을 준비해야한다고 했을 때도 저는 상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아서 준비안한 티가 났었요. 상을 지난해에 많이 받아서 상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긴 것도 아니고요. 상에 대한 의미는 똑바로 가지려고 해요. 상이란 건 어쨌건 칭찬을 해주시고 기쁜 일이지만 제게 더 용기 있게 하라고, 그 꿈을 꾸라고 주시는 거라 생각했어요. 모험을 해야 하는 게 보답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똑똑한 대답을 한 문채원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착한남자’ 이후 영화를 세 편 연달아 보면서 다시 영화에 대한 목마름을 느꼈다고. 그는 “함께 연기했던 동료들이 막 끝낸 영화를 연속으로 봤다. ‘늑대소년’, ‘내가 살인범이다’, ‘광해’를 봤는데 다들 너무 빛나더라”면서 “지금은 영화 한 편을 너무 찍고 싶다”고 말했다.
“‘착한남자’를 끝내고 몸이 너무 안 좋았는데 끝나도 끝난 느낌이 아니었어요. 6개월 동안 연기자를 비롯해 스태프 분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시간은 아쉬울 정도로 빨리 갔어요. 정말 모든 분들께 감사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경희 작가님께 한 마디 하고 싶어요. 매회 대본을 받으면서 믿고 연기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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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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