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사람의 성별은 자궁 안에서 난자에 정자가 착상되는 순간 결정된다. 그리고 임신 3개월쯤 되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의 성기가 형성된다. 여기까지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생물학적 지식이다.
그런데 어떤 보고에 의하면 태아는 임신 6주차가 지나기 전까지 확실한 남녀의 성별이 구분되지 않는다고 한다. 동성애자의 경우 이 시기 때의 영향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가 뭐래도 현재 전 세계적인 여론과 법을 주도하는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과 이데올로기 혹은 보편적인 현상을 기준으로 삼고 그 기준에서 어긋나면 이단으로 취급한다. 종교가 가장 대표적이라면 소수성애자에 대한 편견도 비근한 예다.

지난 4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은 마약사범으로 오해받은 억울한 경험을 밝혔다. 경찰이 그를 마약 수사 대상으로 분류해 불시에 집으로 찾아오는가 하면 심지어 주변에 있는 그의 후배들까지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하면 검사를 할 정도로 동성애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했다는 것.
동성애자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홍석천을 초청한 사회자 이경규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애초 게스트로 홍석천이 거론됐을 때 출연을 반대했다고 고백했다. 그 이유는 홍석천이 어떤 얘기를 던질지, 또 여기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물론 이경규 자신이 홍석천이란 동성애자 자체를 싫어한 게 아니라 홍석천을 바라볼 시청자의 시각을 우려했던 것이긴 하지만 여기에서도 아직도 이 사회에 만연한 동성애자에 대한 거부감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리는 커밍아웃은 3단계로 분류된다. 1차는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 2차는 자신과 가까운 이너서클 지인들에게 고백하는 것, 그리고 3차가 우리가 흔히 커밍아웃이라 얘기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고백이다.
홍석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커밍아웃 연예인이다. 이미 스스로 고백하기 전부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동성애자인 그였다. 그럼에도 그는 새삼스럽게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렸다.
그런데 홍석천은 이 커밍아웃 이후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 그 스스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비밀을 털어놓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곧이 곧대로 봐주지 않고 색안경을 끼고 이단시 했으며 이로 인해 무엇보다 그 자신이 큰 정신적인 타격을 받았다.
일단 방송일이 끊겼다. 동성애자가 방송에 나오면 사회적 미풍양속이라도 해치는 양 방송관계자들은 그의 출연을 금기시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당당히 우뚝 섰다. 생활고를 이겨내고 외식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업가로 거듭 났다. 그리고 이제는 커밍아웃 이전보다 더욱 거물이 돼 연예계의 러브콜을 받고 컴백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를 삐딱하게 보는 사회의 시선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커밍아웃은 사실 용기랄 것까지도 없다. 죄나 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일 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비뚤어진 아전인수식 심리 혹은 이기심은 안타깝게도 다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왜곡된 정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까지 갖고 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눈이 하나인 생명체가 지배하는 행성이 있다고 가상한다면 그곳에 가면 우리가 장애인이다. 그래서 조금 색다른 소수에 대한 다수의 거부감에서 발생하는 편견으로 인한 무형의 폭력이 소수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동성애가 죄는 아니다. 남들 다 하는 사랑을 하는 것이지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미풍양속을 해치는 변태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천하에 알려 사전에 있을지도 모를 오해와 착오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커밍아웃은 지극히 정상적인 자기표현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 만연된 편견과 아집은 동성애자 등 소수성애자 혹은 소수집단을 오물 바라보듯 쳐다본다.
'나와 다르면 기형'이고 다수가 오랜 관습으로 만들어놓은 규칙에 어긋나면 이단으로 취급한이다. 한마디로 다수가 모인 집단의 정치성향에 안 맞으면 역적이고 그 집단의 종교가 다르면 사이비로 비하한다. 이게 이 사회의 통념이라는 무서운 아집이 소수를 억누르는 보이지 않는 검은 기운이다.
물론 튼튼한 2세를 낳아서 종족을 보전해야 하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사람도 이성애가 보편타당하다.
하지만 사람은 동물과 다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한다. 반드시 이성끼리 사랑해야 한다는 억지스런 도덕적 고집은 우리 조상들도 한때는 동물이었고 그래서 그런 이성애의 형태가 당연한 것으로 오랫동안 개념이 정리된 것이지 오로지 이성애만 존재했고 그것만이 정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기원전 로마제국 시대부터 뛰어난 장군들이 미소년과 사랑을 나누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동성애를 더럽게 치부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육체적 행위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행위는 반드시 육체적 관계가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 사랑에 더 큰 값어치를 부여하는 게 진정한 사랑의 조건이다. 사랑의 행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감 속의 공감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지, 다수가 만들어놓은 일방적 규칙은 그저 편한 이치를 즐기는 보수의 고집일 뿐이다.
소수성애자들은 우선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방황에서 갈등하고 그것을 이겨내 세상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을 즈음에는 사회적 고정관념의 색안경 때문에 위축된다. 하지만 이념과 개념은 세월과 문화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기 마련이고 21세기 현시점에선 동성애자도 장애인도 다수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아가고 사랑할 권리와 주장을 갖는다.
왜냐면 사랑은 자신들이 모든 동물들 중 가장 우월하다고 맹신하는 사람들이 동물들과 차별화하는 가장 진보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