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원 '지고지순 순애보' Vs 수애 '악녀의 끝'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2.12 07: 31

[유진모의 테마토크] 사람이 동물보다 우월하고 동물과 차별화되는 요소나 현상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감정은 이성간의 사랑이 아닐까? 동물에게 플라토닉 러브라는 것은 없지만 사람에게는 존재한다. 동물은 단순히 종족보존을 위해 교미하지만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베이스로 해서 섹스를 한다.
물론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 유이하게 보노보 원숭이와 함께 종족보존의 목적이나 사랑의 애틋한 감정 없이 단순한 육욕으로 성관계를 갖기도 하지만 역시 사람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감수성을 갖고 있기에 동물과 차별화될 수 있다. 그래서 통속소설이나 TV 드라마에서 사랑이라는 소재를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MBC 월화드라마 '마의'의 강지녕(이요원)의 사랑은 전형적인 아름다움 숭고함 고귀함을 보여주는 사랑인데 반해 SBS 월화드라마 '야왕'에서 주다해(수애)가 보여주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오로지 돈과 출세에 눈이 먼 최대한 추악한 욕망일 뿐이다.

공교롭게도 두 드라마에서 사랑을 이어주는 소재는 한 짝의 신발이다. 지녕은 거리의 부랑아이던 어린 시절 떠돌이 천애고아인 백광현(조승우)이 자신의 한쪽 발에 신겨준 짚신을 잊지 못하는 가운데 성인이 돼 역시 어렸을 때처럼 한쪽 신발이 찢어지자 그 발에 광현이 신겨준 짚신을 고이 간직하며 죽었다고 알려진 광현의 생존을 굳게 믿으며 하염 없이 그를 기다린다.
다해는 백학그룹 입사시험을 보러가는 날 아침에 전날 하류(권상우)가 사준 비싼 하이힐을 신고 지하철을 탔다가 그만 한쪽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한다. 시간에 쫓겨 그 구두를 되찾지 못하고 맨발로 시험장에 들어가지만 때마침 지하철 안에서 다해를 보고 한 눈에 반한 백도훈(정윤호)이 그 한쪽 구두를 고이 간직했다가 며칠 뒤 다해에게 건네줌으로써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다해의 구두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다. 무도회장에서 통금시간에 쫓겨 그만 잃어버린 한짝의 유리구두가 바로 다해가 지하철에 남겨둔 한짝의 하이힐이다. 그 구두는 왕자님(도훈)의 손에 들어갔고 그 구두를 발에 되신은 다해는 왕자님을 따라 신분상승의 급행열차를 타게 된다.
그에 비해 지녕의 신발은 지고지순한 사랑과 희생의 구두이다. 천한 신분의 광현은 양반 신분의 지녕의 가죽신이 찢어진 것을 보고 그 한쪽 발에 자신의 초라한 짚신을 신기지만 지녕은 그 신발을 더럽다거나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정인을 지키고자 하는 광현의 소중한 희생정신을 높이 사고 진실한 사랑을 더욱 굳게 다진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를 엄청나게 고마워한다.
다해가 하류의 희생을 귀찮은 짐, 지우고 싶은 낙인처럼 생각하는 것과는 천차만별이다.
지녕의 사랑에는 이성간의 사랑에서 갖춰야 할 온갖 아름다운 덕목이 모두 담겨져 있다. 지녕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강도준의 엄청난 재산을 모두 물려받은데다 당대의 세도가 이명환(손창민) 수의의 수양딸로서 권력과 재산의 양날을 손에 쥔 양반가의 규수다.
이에 반해 광현은 천민 출신으로 천한 마의에서 간신히 의생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지녕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희생적이었던 이 순수한 청년의 진심과 사리사욕 없이 오로지 의원으로서 환자를 고치고자 하는 숭고한 책임감, 그리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직함을 높이 사고 그런 인간미에 한 없이 빠져드는 자신의 감정을 굳이 조절하려 하지 않는다. 사랑 앞에는 그 어떤 장애물도 국경도 없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지녕과 광현의 사랑을 위험하다며 만류하지만 지녕은 그에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서 단 둘이 살자'는 광현의 말에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랑 앞에서 기득권도 미련 없이 포기할 줄 아는 순수한 여인이다.
이명환의 음모로 광현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명나라로 흘러들지만 모든 사람들은 광현이 죽은 줄 안다. 하지만 지녕은 굳은 신념으로 그의 생존을 믿고 하염 없이 기다린다. 이는 전형적인 한국 여인네들의 정인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의 기다림에 기인한다.
여자가 정인을 기다리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정서는 아니다. 포르투갈의 전통가요 파두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네들의 정서에서 탄생했다.
게다가 지녕은 질투할 줄도 모른다. 칠거지악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다.
숙휘공주도 지녕과 동시에 광현을 사랑한다. 광현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는 지녕과 달리 숙휘는 깜찍하게도 그와 결혼까지 할 마음이다. 광현이 승승장구해 어의가 됨으로써 신분의 균형이 맞춰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희망사항이다.
그리고 왕명에 의해 억지로 시집갔다가 남편을 잃고 청상이 된지 한참 지난 시점에서 명나라에서 활약한 광현이 금의환향해 현종으로부터 벼슬을 하사받자 숙휘는 화려한 의복을 광현에게 선물로 내린다.
그 선물꾸러미를 든 광현은 지녕 앞에서 어색해하며 숨기려 들지만 지녕은 대담하게 그 선물의 존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광현은 무슨 여자가 질투할 줄도 모르냐며 투덜대지만 지녕은 대범하게 허허롭게 웃어 넘길 따름이다.
이런 대범함과 광현에 대한 믿음은 예전부터 있었다. 지녕은 숙휘의 심부름으로 광현을 불러내 숙휘와 몰래 만나게 해줬으며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충분하게 해냈던 것. 이는 숙휘에 대한 우정도 있었지만 광현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녕은 광현과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인 이명환과 등을 돌리고 심지어는 그의 반대편에서 대립각을 세운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기득권도 포기하고 한 없이 기다릴 줄 알며 희생하고 믿어준다. 이런 완벽한 사랑은 별로 없다. '사랑은 자기희생'이라는 톨스토이 식 사랑이다.
반면 다해의 사랑은 철저하게 동물적 감각만이 지배하는 천박한 사랑, 아니 사랑을 가장한 이기적인 욕심이다.
다해는 어린 시절 양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자란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벼랑 끝으로 떨어진 그녀 앞에 보육원 시절부터 자신을 각별하게 아껴준 하류 오빠가 나타나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주고 먹고 잘 곳을 마련해주며 심지어는 호스트바에 나가 번 돈으로 대학에 보내주고 미국유학까지 보내준다.
다해는 자신이 최고로 어려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하류에게 푹 빠지고 자신이 먼저 하류를 유혹한다. 그리고 그와의 사랑의 결실로 이른 나이에 딸 은별까지 낳지만 대학 졸업 후 백학그룹 입사과정에서 만난 백학그룹 회장의 외아들 도훈을 발판 삼아 상류사회로 진출할 결심을 한다.
미국의 신디 하잔 박사는 '사랑의 감정이란 대뇌에서 도파민 페닐에치아민 옥시토신의 세 가지 물질이 분비돼 서로 칵테일처럼 섞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환희에 젖어 그가 없으면 죽을 듯한 사랑은 길어봐야 2년 반'이라고 경고했다.
딱 다해의 사랑을 콕 집어서 한 말 같다. 다해는 백학그룹 입사직후 그동안 하류가 자신의 학비를 호스트바에서 벌었음을 알게 됨과 동시에 도훈이 자신에게 관심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냉정하게 하류에게 등을 돌린다.
예전에 자신이 죽이고 하류와 함께 암매장한 양아버지의 사체가 발견되자 하류에게 '은별이를 내가 키울 테니 죄를 오빠가 뒤집어 써라'고 제안하는 다해는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하류의 희생을 전혀 고마워할 줄 모르는 팜므 파탈이다.
도훈의 누나지만 사실은 엄마인 백학그룹 실세 백도경(김성령)이 다해의 속내를 알아채고 도훈에게서 그녀를 떼어 내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다해는 더욱 독해지고 가증스러워진다.
다해는 도경에게 등을 돌리고 자신을 아껴주는 도훈을 꼬옥 껴안고 위로해주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 눈물은 사랑도 감동도 순정도 참회도 죄책감도 전혀 없는 눈물이다. 마치 먹이를 먹으며 눈에서 액체를 분비하는 악어의 눈물일 따름이다. 하품과 동시에 흘리는 눈물은 눈물이 아니다. 자신의 뜻대로 자신에게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깊게 빠져드는 도훈을 보며 자신의 목표가 가까이 오고 있음에 만족해 하는 눈물이다.
두 여배우는 이렇게 극과 극의 상반된 사랑의 모델을 그려내는 터라 상반된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 이미 딸 하나를 둔 아이 엄마인 이요원이지만 이번 역할로 그녀는 모든 남자들이 소망하는 지고지순한 여신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스펙 외모 마음씨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완벽한 여자가 보잘 것 없는 천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대가 안 바라는 무조건적 사랑을 쏟아붓고 있다.
그래서 이요원은 천사로 보인다.
하지만 수애는 악마도 그런 악마가 없다. 출세를 위해 자신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과 희생을 쏟아부은 한 남자의 인생을 철저하게 짓밟으면서도 조금만치의 죄책감도 없이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를 더욱 짓밟는다.
자신의 실수로 은별이가 사망했음에도 그 더러운 욕망은 수그러들줄 모르고 더욱 발버둥친다. 그녀가 더욱 무섭고 더러운 것은 그녀의 최종목표가 도훈이 아니라 거기서 한 번 더 도약한, 대통령이라는 데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살아가는데 있어서 거추장스러운 감정의 부스러기일 뿐이고 남자란 하나의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밟아야 할 계단일 뿐인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은 명품가방을 살 때 딸려오는 거창한 포장지일 뿐이다. 그래서 한번 쓰고는 바로 버리는 것.
수애는 '야왕'으로 예의 그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쁜 여자'로 본의 아니게 욕도 먹고 있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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