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소이현은 지난달 종영된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극본 김진희 김지운, 연출 조수원)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자기 욕망에 솔직한 청담동 사모님 서윤주 캐릭터를 만나 원 없이 상류층 생활을 누렸지만 동시에 그러한 삶이 언제 사라질까 두려워하며 인생역전의 소망을 담은 롤러코스터의 현기증 나는 운행을 마쳤기 때문이다.
배역이 꿈꾸는 소망은 결국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졌지만, 배우 소이현은 달랐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공감을 자아내는 캐릭터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데 이어 실감나는 연기와 더불어 물오른 미모라는 칭찬까지 이끌어내며 의미 있는 마침표 찍었다. 데뷔 경력 10년차에 찾아온 복이었다.
◆ 청담동 룩의 비결은

- ‘청담동 앨리스'를 마친 소감은?
“종영했지만 큰 실감은 안 난다. 드라마 콘셉트로 화보를 찍고 인터뷰를 다니느라 윤주의 삶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난주 ‘돈의 화신’이 방송되는 걸 보고 아, 우리 작품 끝났구나 싶긴 했다.”
- 윤주의 청담동 패션이 화제가 됐다
“감독님께 시놉시스를 받으면서 화려하게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화사하게 보이도록 의상과 메이크업에 신경을 많이 썼다. 또 3살 어린 문근영 씨와 동갑으로 나와야 하는 만큼 피부 관리에도 신경 썼다(웃음).
- 메이크업과 의상 준비에 소이현의 의견이 반영된 건가?
“스태프들과 함께 한 지 10년째라 궁합이 잘 맞는다. 또 워낙 잘 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와 의견 조율이 잘 됐다.”
- 청담동에 가면 윤주 같은 사모님이 살 것 같더라
“생각보다 많은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지인들로부터 반응이 좋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촬영하는 내내 기분이 좋더라. 첫 등장할 때 입은 레이스 원피스가 가장 고가의 의상인데,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에서 협찬 받았다. 600여만 원의 워낙 고가고 소재도 매우 얇아 협찬이 잘 안 됐는데 우여곡절 끝에 착용할 수 있었다. 윤주의 화려한 삶을 표현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던 의상이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 공감을 원해

- 윤주는 다소 속물적이면서도, 애처로운 인물이었다.
“공감이 많이 가는 인물이었다. 처음 캐릭터 회의를 했을 때 감독 및 작가님들께 윤주의 과거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아이라는 걸 이해했다. 아마 그런 전사(前事)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표현하는 데 도움을 받았을 거다. 예전에는 세경이(문근영 분) 보다 더 못살았던 친구고 그러다 보니 기를 쓰고 청담동에 들어온 거다. 가여웠다.”
- 그런 윤주에 몰입하기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보통 드라마 같았다면 내가 맡은 역할은 한 가지 감정을 가지고 여주인공을 괴롭혔을 거다. 복수나 미움, 질투 같은 감정인데, 그에 반해 윤주는 세경이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면서 내 사랑도 지켜야 했고, 청담동 생활에 한 편으로는 신물도 느끼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 배역을 맡는다는 게 일단은 흔하지 않아서 좋았고, 연기하는 입장에서 재밌었다. 신기한 건 시청자들이 그런 윤주를 보면서 미워하거나 얄미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윤주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게 연기자 입장에서는 뿌듯하다.”
- 인화에게 무릎 꿇고 용서해달라고 비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잘 하면서 살았는데 결국은 그런 수모를 당했다. 연기하면서 최선을 다해 진짜 굴욕을 느끼도록 해보자 다짐했었다.”
- 윤주를 연기하면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공감을 얻고 싶었다. 보통 여자들이 자기 자신을 세경이와 비슷하게 여기는 면이 있는 것 같은데, 다분히 속물적이고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윤주 같은 면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 극 후반부에 윤주는 청담동을 뛰쳐나온다. 그 뒤로 어떻게 살았을까?
“내 생각에 윤주는 예쁘게 다시 꾸며서 좋은 남자를 만나는 데 매진하지 않았을까? 타미홍과도 친하게 됐는데 그를 통해서 다른 남자를 만났을 것 같다(웃음).”
◆ "정말 잘 해" 보다 탐나는 건

- 2002년 데뷔 이후 쉬지 않고 연기했다
“작품 욕심이 많다. 나는 연기하는 게 재밌고 현장이 좋다.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장에 있다 보면 어느새 적응하고 거기서 얻는 게 쉬는 것보다 많다는 걸 느낀다. 나는 연기자를 꿈꿔오다 데뷔한 게 아니라 우연찮게 된 케이스이기 때문에 초반엔 이쪽 일이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다보니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을 보면 부러웠는데, 나는 그걸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같은 선생님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하며 충족했다.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 배우는 게 많다.”
- 데뷔 10년차다
“10년차라지만 사실은 아무 느낌이 없다. 우연찮게 이 시기에 ‘청담동 앨리스’를 통해 좋은 반응을 얻고 그로 인해 좋아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스타가 될 거야 하는 마음을 이제껏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덤덤한 편이다. 내 꿈은 나문희·고두심 선생님 같은 세월이 묻어나는 연기자가 되는 거다. 데뷔 때 주목 받은 신인이었지만 나는 그게 얼떨떨하고 무서웠다. 또 그런 순간이 한순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계획대로 되고 있는 편인가?
“시작할 때 꾸준히 일하고 사람들한테 거부감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걔 그거 정말 잘 해’ 라는 말 보다는 ‘곧잘 하지’, ‘안정감 있지’ 라는 말을 탐냈었다. 내 바람은 사람들 눈에 익숙한 배우가 돼 미니시리즈에도 일일드라마에도 어울리는 포지셔닝을 갖추는 거다. 근데 이런 거야말로 욕심이라고 하더라.”
- 서른 살이 됐다
“음력설이 지나니까 마음이 착잡해지더라(웃음). 서른부터는 멋진 여자가 됐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십대까지는 모자라도 귀엽게 볼 수 있는데, 삼십대부터는 어깨에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서른 맞이 기념은 아니지만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 아빠가 통기타 치는 걸 좋아하셔서 그런지 마냥 멋있어 하는 마음이 있다. 또 ‘슈스케’나 ‘K팝스타’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사람도 정말 부러워 더 배워보려고 한다. 요즘 쿡티비에 기타 레슨이 있어서 열심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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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