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희, "눈치없고 천진난만한 이성계가 좋았어요" [인터뷰]
OSEN 전선하 기자
발행 2013.02.24 09: 45

이달 초 종영된 SBS 수목드라마 ‘대풍수’(극본 남선년 박상희, 연출 이용석)에서 이성계는 매력적인 군왕이었다. 조선을 개국하기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마다 가장 선봉에 선 용맹한 장수이자,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끝까지 책임지는 등 인간적으로나 조직의 수장으로서도 주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걸출한 위인이었다.
이성계를 이토록 매력적인 인물로 연기한 지진희는 “열심히 한 만큼 미련이 남기 보다는 시원하다”는 말로 작품을 끝마친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첫 방송이 나가기에 앞서 5개월이나 일찍 촬영을 시작하며 10개월여 동안 걸치고 있던 캐릭터의 옷을 벗어던진 그의 후일담에선 자기 배역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났다.
◆ 작품이 후졌으면 스트레스 받았겠지만

“작품 흥행이 잘 안 되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죠. 그런데 중요한 건 작품이 후졌으면 끝나도 힘들었을 테지만 ‘대풍수’은 그런 작품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용석 감독의 의도에 충실했기 때문에 아쉽지는 않아요. 시청률이야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분야고, 열심히 달려왔다면 성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편이라 후련한 마음이 크죠.”
지진희를 통해 만들어진 이성계라는 캐릭터는 극이 전개되는 36부 동안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 주인공이었다. 극 초반 파격적인 분장과 기운으로 기존에 근엄하게 각인된 이성계라는 역사 속 위인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이는 고려말 국운이 쇄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대풍수’의 어두운 분위기에 한줄기 빛과 같다는 평까지 얻어냈다.
“전혀 임금이 될 것 같지 않은 인물을 지도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대풍수’를 하는 동안 가장 즐거웠어요. 이것 때문에 제가 ‘대풍수’를 택하기도 했고요. 특히 동물 가죽 탈은 워낙 독특해서 계속 쓰고 나오고 싶었지만 2회 만에 벗게 돼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요. 아무래도 드라마가 도사들의 활약상을 그리는 작품이었던 만큼 이성계 캐릭터에 더 이상 욕심을 낼 수 없었죠.”
이성계 캐릭터에 대한 이 같은 묘사는 역사 속 약 2년의 시간 동안 그에 대한 기록이 빈 것에서 착안한 것으로, 대신 이를 채운 건 제작진과 지진희의 무한한 상상력이었다. 동북지방 토호로 너른 초원을 달렸을 당시 반듯한 무관의 모습 보다 야생의 습성이 강할 것이라는 생각에 동물 가죽을 뒤집어썼고, 주색에 능하며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에도 익숙한 천하 망종으로 재탄생 시킨 게 바로 지진희가 연기한 이성계 캐릭터였다.
“후반부에 가서 이성계가 달라지지만 사실 연기하는 맛에 있어서는 초반 야생성이 강한 모습이 훨씬 재밌었죠. 인물 설정이 이러다 보니 대본에 써있는 ‘그래?’를 유행어 ‘고래~?’로 바꿔 집어넣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눈치는 없었지만 천진난만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강한 이성계가 좋았어요.”
이성계가 고려의 현실을 자각하고 새 나라의 주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부분부터 캐릭터에도 변화가 찾아왔지만, 여기에는 아버지 같은 최영 장군(손병호 분)에 대한 애틋함이나 그를 따르는 우야숙·이지란 등 식솔과도 같은 부하들에 대한 의리 등 이성계 캐릭터의 진솔한 매력이 부각되며 ‘대풍수’의 황량한 분위기에 따뜻한 정서를 불어넣었다.
“아무 것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믿음을 줬다는 건 아마 이성계가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제 생각엔 엄청난 리더십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데, 알아보니 이성계는 전투할 때 절대로 뒤에 서지 않았다고 해요. 가장 앞에 서서 제일 먼저 적의 장수를 저격해 군사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그게 안 된다면 높이 날아가는 매라도 떨어뜨려 수하들의 기분을 북돋아 주는 등 사람들을 끌고 가는 힘이 있었던 거죠.”
◆ 지성·송창의·김소연·이윤지에게서 배운 열정
유난히 춥고 폭설도 잦았던 올겨울 지진희가 ‘대풍수’ 36회 여정을 힘내 건널 수 있었던 데는 동료 배우들의 영향 또한 컸다. 풍수지리대가로 이성계의 책사 노릇을 한 지상 역의 배우 지성을 비롯해, 깊은 원한으로 지상 및 이성계와 번번이 부딪쳤던 이정근 역의 송창의, 그리고 여걸로 변신한 반야 역의 이윤지와 윤해인 캐릭터의 김소연까지 열정으로 똘똘 뭉친 배우들의 기운이 그를 자극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지만 배운 게 많아요. ‘대풍수’는 팀워크가 유난히 좋았는데, 그게 바로 이들의 열정 덕이었죠. 그러다 보니 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자극이 되고 그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막판엔 세트 촬영이 많아서 우리끼리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종종 생겼는데 그러면서 친해졌죠. 특히 지성 씨의 경우 배역이 이성계의 조력자다 보니 개인적으로도 애정을 많이 주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열정을 회복한 것 역시 ‘대풍수’가 가져다 준 수확이다.
“어린 친구들인데도 불구하고 열정이 넘치고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태도를 보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고민하는 태도를 보면서 역시 사람은 누구한테든 배울 게 있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저 스스로가 다행이다 싶었어요. 요즘은 멈춰버리면 도태되는 시대고 나는 연기자로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나 의지 등이 뒤떨어지면 안 되는데,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며 열정을 다시 품은 것 그 자체로 성장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배우 아닌 지진희는
지진희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운동과 레고 만들기,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낸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두 아이의 아빠인 만큼 아들과 놀아주는 것도 자연인 지진희가 일상을 보내는 방식 중 하나다.
“아이랑 산에 가고 싶은데 아직은 추우니까 발을 못 떼고 있고, 날이 좀 따뜻해지면 바로 실행에 옮길 차비를 하는 중이에요. 사진은 어디에 내놓을 수준은 아니고 우리 아이 사진 만 찍는 정도에요. 데뷔 전 약 2년 동안 포토그래퍼의 어시스트를 하긴 했는데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보다 사진을 찍기 전 카메라를 조작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요. 집안 문패도 레고로 만들 정도로 뭔가를 만지는 걸 사랑하죠. 아이랑 같이 만들어 문 앞에 걸어뒀는데 마음 같아서는 문 전체를 다 레고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손을 움직이고 그걸 실생활에 활용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간간이 출연한 예능프로그램마다 이른바 '깨방정' 캐릭터로 인기를 얻는 것과 관련해서는 어떤 책임감도 영향을 준다는 답을 내놓았다.
“‘런닝맨’에 두 번 출연했는데 제가 두 번 다 우승을 차지했죠. 당시 개리 씨가 하차선언을 했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땐데, 대신해서 고정으로 출연하고 싶다고도 이야기해서 많은 분들을 웃겨드렸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저의 그런 모습에는 사실 웃겨야 한다는 책임감도 작용해요. 예능에 나갔는데 나로 인해 프로그램이 재미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니까 약간 오버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런닝맨’에 나간 기억은 정말 좋았어요. 유재석 씨를 비롯해 멤버들이 정말 잘 해주셨고, 정말 좋아하는 수지도 봤으니까요.”
 
sunha@osen.co.kr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